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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창궐' 악명서 '미래도시'로…"투명인간이 몰고 가나" 400대 달린다[규제없는도시, 메가샌드박스]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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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로 시작해 400대 '완전 무인' 자율주행
정부가 판 깔면 지자체가 기업들 지원사격
도시·규제·인프라 열리니 로보택시 현실화

중국 후베이성 우한 시내에서 운전자가 없는 완전 자율주행 로보택시가 주행하고 있다. 장희준 기자

중국 후베이성 우한 시내에서 운전자가 없는 완전 자율주행 로보택시가 주행하고 있다. 장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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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석이 텅 비었는데 택시가 움직이는 걸 보고 인싱런(隱形人·투명인간)이 몰고 온 줄 알았어요. 처음에는 거북이 차라고 불렀는데 이제 일반 차량을 추월할 정도로 잘 달립니다."(리하오·22·대학생)


그가 웃으며 들려준 말은 코로나19 확산의 진원지로 봉쇄됐던 우한의 과거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사람의 발자국이 끊기고 구급차 사이렌만 울리던 도시, 중국 우한은 이제 완전히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거리를 따라 운전석이 비어 있는 흰색 로보택시들이 줄지어 달렸다. 신호가 바뀌면 차가 부드럽게 멈췄고, 교차로의 센서가 속도를 조정했다. 차량끼리 데이터를 주고받으며 정해진 간격을 유지했고, 시민들은 그 옆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다. 물류 트럭과 무인 배송차가 뒤따르고, 도심 전역에 설치된 5G 통신망이 이를 실시간으로 제어했다.


우한은 더는 멈춰선 도시가 아니라 데이터로 호흡하는 거대한 실험장이 됐다. 정부는 이곳을 자율주행 시범도시로 지정했고, 바이두와 둥펑 등 기업들이 실제 도로에서 기술을 시험 중이다. 멈췄던 도시의 길을, 기술이 다시 달리게 만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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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 자율주행 실험도시로 변신…2년 만에 로보택시 5대가 400대로

우한에서 자율주행은 더는 낯선 기술이 아니다. 출근길 시민들은 스마트폰으로 무인택시를 호출해 타고 내린다. 바이두의 로보택시 '아폴로고' 400대가 도심 전역을 오가며 이미 일상의 교통수단이 됐다. 불과 2년 전인 2022년 5월, 우한의 도로를 달리던 로보택시는 고작 5대뿐이었다. 두 해 만에 80배 가까이 늘었다는 건 기술보다 제도의 속도가 더 빨랐다는 뜻이다.


바이두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아폴로고 로보택시는 우한을 포함한 16개 도시에서 1400만건이 넘는 승차 서비스를 제공했다. '규제프리' 환경이 열리자 변화는 순식간이었다. 택시뿐 아니라 관광버스·물류까지 자율주행이 파고들었다. 중국 자동차기업 둥펑의 자회사 둥펑웨샹은 관광객이 탄 로보버스를 주요 명소마다 순환시키고, 택배회사 중퉁콰이디는 물류센터에서 아파트 단지까지 '무인 배송'을 일상화했다.


"중앙은 청사진, 지방은 실행…우한이 보여준 정책의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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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 차량들이 처음부터 도로 위를 마구 달린 건 아니었다. 2016~2018년 '초기 실험'으로 10㎞ 구간 시범운행을 시작했고 정부와 기업의 점검을 거쳐 해마다 운행 구간을 늘렸다. 자율주행을 가능케 한 스마트도로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 화리즈싱(華礪智行)의 런쉐펑 부사장은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정부에서 매년 새로운 조례와 규범을 만들었고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상용화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불과 10년도 되지 않아 '무인 택시'가 실제 상용 서비스로 정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장에서 본 우한은 단순한 규제 테스트베드가 아니었다. 제도와 도시, 기술이 맞물린 '통합 실험실'에 가까웠다. 중앙정부가 큰 그림을 그리고 판을 깔면 지방정부는 인프라를 깔고 기업이 움직일 수 있도록 손발을 맞춘 것이다. 제도의 문이 열리자 기업은 곧바로 속도를 냈고, 도시는 첨단 산업 실험의 장이 됐다. 산업의 속도를 가른 건 기술이 아니라 정책 의지였다.


중국 중앙정부는 전기·수소 같은 신에너지와 스마트커넥티드카(ICV)를 자동차 산업의 미래로 정하고, 법과 제도를 통해 자율주행 실증의 기반을 마련했다. 지난해 제정된 '스마트커넥티드카 촉진 조례'에는 자동차에 에너지·정보통신·인공지능(AI)을 결합한 기술 개발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지방정부가 자율주행 산업을 지원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도 포함됐다.


이에 따라 우한시는 과감한 속도전을 펼쳤다. 도시 전역에 5G 기지국을 전국 최초로 설치하고, 차량과 도로·사물이 정보를 주고받는 차량사물통신(V2X) 네트워크를 촘촘히 깔았다. 고정밀(HD) 지도도 전 구간에 구축됐다. 2020년 28㎞에 불과하던 자율주행 시범도로는 1년 만에 106㎞로 늘었다.


스마트 신호등과 센서는 10초 이내에 장애물을 감지해 차량에 전달한다. 런 부사장은 "5G 통신 속도가 빨라지면서 로보택시 운전석에 있던 안전요원이 사라지고 클라우드 시스템으로 원격 지원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이처럼 지방정부는 산업단지 조성, 기업 유치, 인프라 투자 등에서 폭넓은 재량을 발휘하며 중앙정부 정책을 실행에 옮겼다.

"우한에서 중국 전역으로…신산업을 일구는 중국식 협력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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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에서 '로보택시 상용화' 테스트가 성공하면서 중국 정부의 자율주행 실험은 가속도가 붙었다. 2021년 4월 처음 지정된 스마트커넥티드카 시범도시는 베이징·상하이·우한 등 자동차 기업들이 위치한 도시 6곳이었다. 불과 3년 만인 2024년 7월에는 20곳으로 3배 이상 늘었다.


당시 중국 정부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이 사업에는 공업정보화부·교통운수부·공안부 등 관계 부처가 대거 참여했다. 각 시범도시는 사업계획을 신속히 구체화해 관할 부처에 정식 제출해야 했고, 시범사업이 실질적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자금 등 지원 조치를 강화해야 했다. 또 각 지역의 성급 주무부서는 시범도시에 대한 정책 지원을 확대하고, 후속조치와 평가를 강화할 '의무'를 부여받았다.


한국이 여전히 시범운행 단계에 머물러 규제 문턱을 넘지 못할 때 중국은 실제 도로에서 실험을 거쳐 상용화에 도달했다. 기술이 아닌 제도와 결단의 차이가 결국 산업의 속도를 갈랐다는 분석이다. 우한의 사례는 신산업을 향한 열린 정책과 실행력이 도시의 미래를 얼마나 빠르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이런 변화가 기업의 요구에 따른 '일방적 지원'이 아니라 정부가 산업과 도시를 함께 성장시키는 전략적 협력의 결과라는 점도 인상적이다.


우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중국의 주요 산업 도시들이 잇따라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 현지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지린성 창춘은 국영 자동차기업인 제일자동차그룹(FAW)의 본거지로, 자동차 산업이 도시 경제를 이끄는 곳"이라며 "도시가 각 기업에 미래 발전 방향을 먼저 제시하고 칩(Chip·반도체)과 도로 지도를 제공하며 기지국 등 인프라를 직접 구축해 발전의 길을 터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치 체계가 공산주의라 해서 산업 정책까지 일방통행인 건 아니다. 발전을 위해 정부와 기업들이 같은 눈높이에서 머리를 맞댄다. 런 부사장은 "정부, 완성차 기업들, 화리즈싱 같은 스마트 솔루션 기업, 각 지방 정부 등이 주기적으로 모여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필요한 제도를 제정한다"며 "무엇이 문제인지 논의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인지 토론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제도와 기술, 도시가 함께 움직이며 중국식 속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우한(중국)=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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