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유통 카르텔…애그플레이션의 누명
귀농 6년차 청년 농업인의 절규
불투명한 농산물 유통구조, 생산비도 못 건져
이상기후·작황 문제와 별개…경매價 책정 불신
#장마가 한창이던 지난해 7월17일 서울 송파구 가락동 농수산물종합도매시장. 충남에서 상추 농사를 하는 이경민씨(43·가명)는 청과부류 경매에서 4㎏ 중량으로 포장한 청상추를 박스당 8만8300원을 받고 넘겼다. 같은 해 5월부터 12월 사이 출하한 상추 가운데 가장 높은 경매가였다. 직전 경매에서 박스당 9800원이던 상추 낙찰가격이 하루 만에 9배나 폭등한 것이다.
이 시기는 집중호우와 무더운 날씨가 교차해 상추 수율(생산품 대비 정상품 비율)이 떨어지고, 출하량도 부족해 가격이 폭등할 것이라는 전망이 컸다. 하지만 이후 보름간 낙찰가는 2만원 안팎 수준으로 형성돼 최고가보다 3~4배 이상 떨어졌다. 이씨는 "농산물 가격이 해마다 요동치는 근본적인 원인은 이상기후보다 불합리한 농산물 유통구조에 있다"고 지적했다.
생산비 본전도 못 뽑는 '귀농의 허상'
이씨는 올해 귀농 6년 차 청년 농업인이다. 서울에서 10년 이상 회사원으로 일하다가 2020년 농사일로 전향했다. 전원생활에 대한 로망과 함께 자기 손으로 농지를 일구고, 땀 흘려 수확한 농산물로 소득을 추구하는 일에 매력을 느껴 30대 후반의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결심했다. 청년 귀농 지원금을 받기 위해 100시간에 달하는 교육을 이수하면서 자신감도 생겼다.
딸기를 재배한다는 선배 농업인의 강연을 통해 661㎡(약 200평) 규모의 하우스 3개 동을 운영하면 연간 7000만~8000만원가량 소득을 올릴 수 있고, 제반 비용을 제외하더라도 50% 이상은 수익이 남는다는 구체적인 사례를 접하면서다. 이 정도 소득이라면 넉넉하지 않아도 농촌에서 생활하는 데 크게 부족하지는 않겠다고 판단했다.
이씨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이겨내고 200평 규모의 상추 하우스 3동을 일궈냈으나 최근 들어 농사에 대한 회의감이 커졌다. 젊고 진취적이라는 점을 무기로 스마트팜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열성적으로 매달렸다. 하지만 공들여 재배한 상추가 제값을 받지 못하고, 가격 등락 폭도 심해 수입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그는 "밖에서는 이상기후로 작황이 좋지 않아 채소가격이 폭등한다는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정작 농민들이 상품을 출하해서 높은 가격을 받는 경우는 1년에 손에 꼽을 정도"라며 "사실상 영세 농업인들에게 유일한 판로인 도매시장에서 정해지는 가격표를 보면 화가 치민다"고 했다.
실제 본지가 입수한 최근 1년간 이씨의 출하내역서를 보면 등락을 반복하는 경매가격과 정부가 정한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청년 농업인의 열악한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비슷한 시기 수확한 상추인데"…고무줄 낙찰가
이씨가 키운 상추는 지난해 7월10일 박스(4㎏·특)당 1만2500원에 낙찰됐다. 이날 이씨는 7박스를 경매에 부쳐 8만7500원을 받았다. 이튿날 상추 낙찰가는 박스당 1만5500원으로 올랐지만, 수확량이 5박스(총 20㎏)에 그쳐 이씨의 하루 수입은 7만7500원을 손에 쥐었다.
더 큰 문제는 경매 낙찰가격의 변동성이다. 7월12일 이씨의 상추는 박스당 3만5900원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다음날 낙찰가는 9800원으로 고꾸라졌다. 이씨는 "비슷한 시기 수확한 상추가 상품성에서 얼마나 차이가 나겠느냐"라면서 "위 사례처럼 하루 이틀 시차로 경매가가 반토막 나거나 그보다 더 떨어지는 일이 부지기수"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도매법인에 이의제기를 하면 '상추에 물기가 너무 많다'거나 '이파리가 얇다'는 등의 트집을 잡고 '불락(낙찰에 응하지 않는다는 뜻의 경매 용어) 하겠느냐'라는 식으로 고압적인 자세를 취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반면 해당 기간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상추 소매가격은 변동 폭이 크지 않았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운영하는 농수산물 유통정보 '카미스(KAMIS)'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중순부터 보름간 상추 소매가(청상추 상품 기준)는 100g당 최저 2035원에서 최대 2540원으로 시세가 형성됐다. 도매시장 경매 중량인 4㎏으로 환산하면 8만1400원에서 10만1600원에 팔리는 것으로 격차는 2만원 남짓이다.
농산물 도매가는 책정 이후 대략 1주일에서 열흘 정도 시차를 두고 소매가에 연동된다. 경매가를 결정하고 소상공인에게 상품을 판매하는 중도매인 시세도 같은 기간 최저 4만2940원에서 최대 5만8200원으로 격차는 1만5000원에 불과해 변동 폭 그래프가 완만했다. 게다가 7월 하순으로 갈수록 중도매인 판매가는 조금씩 떨어졌는데도, 소매가는 보름 전보다 오른 시세를 유지했다.
도매시장을 거친 상품이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과정과 이에 붙는 유통비용이 동일하다고 전제하면, 결국 생산자로부터 싸게 사들인 상추를 소비자에게 비싸게 판매한 셈이 된다. 농민 입장에서는 경매가만 큰 폭으로 등락을 반복하고 소매가는 일정 수준으로 상승한 시세가 한동안 유지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차액은 어디로 흘러 들어가는 건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씨는 "하루 이틀 경매가가 높게 나오면 이후 며칠간 (경매에서) 의도적으로 가격을 낮게 매겨 '단가 키 맞추기'를 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했다.
올해 경매 정산금 1280만원…월수입 90만원 최저생계비에 못 미쳐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8개월간 이씨가 생산한 농산물을 경매에 부쳐 정산받은 금액은 약 1280만원. 지난해 5월부터 12월까지 8개월간 책정된 1540만원보다 16.9% 감소했다. 이마저도 경매를 주관하는 도매법인에 지불하는 4~5%대 수수료와 도매시장까지 상품을 보내는 운송비, 하역비 등을 제외하면 실제 손에 쥔 돈은 1080만원, 월평균 90만원 수준이다. 올해 1인 가구 최저생계비(143만원)에도 못 미친다. 여기에는 상대적으로 단가가 높은 콜리플라워 재배를 병행해 판매한 금액이 포함됐다. 주력인 상추로만 국한하면 올해 8개월 동안 경매를 통해 받은 금액은 총 959만원이었다.
같은 기간 이씨가 출하한 상추의 수량은 누적으로 1004박스였다. 박스당 평균 9552원이 책정된 셈이다. 그는 "경매를 거쳐 정산받은 금액도 온전한 수입이 아니고, 생산비와 출하를 위해 고용한 작업자들의 인건비 등을 여기서 또 제외해야 한다"며 "이들 비용까지 고려했을 때 박스당 1만5000원은 받아야 본전이라도 찾을 수 있는데, 현실은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9월 청년 농업인과의 현장 간담회를 통해 "청년농들이 어려움을 딛고 도약해 K농업의 주역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귀농인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 3월 발표한 2024년 귀농·귀촌 실태조사에 따르면 귀농 첫해 소득은 평균 2796만원이고, 5년 차 소득은 3621만원으로 31.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농업소득뿐 아니라 농업 외 소득과 정부 지원금 등 이전소득, 일시적으로 얻는 비경상 소득을 모두 합친 금액이다. 농업만을 주력으로 해서 얻는 연 소득은 1600만원으로 월평균 133만원 수준이다. 이것만으로는 귀농인의 월평균 생활비인 194만원을 감당할 수 없다.
청년 농업인, 부업에 비용 절감으로 버티기…희망 대신 한숨만
이씨도 상추 농사뿐 아니라 드론과 지게차, 굴삭기, 전기기능사 등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해 부업으로 수입을 벌충한다. 지역단위 농협에서 농산물을 분류하는 아르바이트도 병행하고 있다. 농산물 재배로는 생산비를 맞추기 어려워 상추를 수확할 때 지인들의 도움을 받거나 상대적으로 임금이 싼 외국인 노동자를 최소한으로 고용하면서 비용을 줄이고 있다.
그는 "청년농들은 그나마 온라인을 통한 정보 습득에 익숙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사업을 수시로 모니터하고, 보조금으로 농업 관련 추가 수익사업을 기대할 수 있어 사정이 조금은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빚에 허덕이는 경제 상황은 여전하다. 당장 농지 구입과 하우스 등 인프라 설치를 위해 받은 3억원 상당의 귀농 지원금 상환이 부담이다. 금리 1.5%에 5년 거치, 10년 상환 조건으로 대출한 지원금의 원금 상환이 도래해 내년부터는 매달 270만원가량 갚아나가야 한다.
이씨는 "귀농 이전에도 농산물 가격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분노하는 농민들의 모습을 뉴스 등으로 접했지만, 막상 현실에 부딪히니 생각보다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며 "활로를 찾기 위해 온라인 판매나 일본 등으로 수출도 모색해봤으나 개인이 헤쳐 나가기에는 벽이 높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경매가 사실상 유일한 판로인데, 지금과 같은 구조가 지속된다면 향후에도 귀농인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막막하다"며 "농사일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이 크다"고 덧붙였다.
<날씨는 죄가 없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
꼭 봐야할 주요뉴스
"일본여행 가지 말라고?" 수십만명 항공권 취소하...
마스크영역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회사 왜 다녀요, 여기서 돈 많이 주는데"…부자 옆으로 갑니다 [세계는Z금]](https://cwcontent.asiae.co.kr/asiaresize/269/2025112510574730672_1764035867.png)











![[초동시각]국운을 건 AI 예산, 성공의 조건](https://cwcontent.asiae.co.kr/asiaresize/269/2025112809132824307A.jpg)
![[기자수첩] 하늘로 오른 누리호, 환호 뒤에 남은 단가의 그늘](https://cwcontent.asiae.co.kr/asiaresize/269/2025112811125441579A.jpg)
![[일과 삶]](https://cwcontent.asiae.co.kr/asiaresize/269/2025112811180247756A.jpg)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