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형성 등 사회적 타당성 없는 행위
법적 보호하지 않는다는 민법 원칙 재확인
향후 특유재산 원칙 선례 작용 여지
'최태원·노소영 이혼소송' 상고심의 핵심 쟁점은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300억원이 SK그룹 성장의 '종잣돈' 역할을 했다고 본 항소심 판단을 대법원이 받아들이느냐였다. 대법원은 불법자금은 혼인 중 공동 기여로 볼 수 없고 법적 보호 가치가 없다며,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16일 법조계는 이번 판결을 "뇌물 형성 등 사회적 타당성이 없는 행위를 한 사람을 법적으로 보호하지 않는다는 민법 원칙을 다시 명확히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법원이 항소심의 법리오해를 지적하며 파기환송 결정을 내리면서, 향후 고액 자산가나 경영인 부부의 이혼소송에서 상속재산 분할 범위가 다시 좁혀질 가능성이 커졌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노 관장 측이 제시한 노 전 대통령 비자금 300억원이 SK그룹의 초기 자본 형성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다고 판단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자금의 유입 경로와 사용처가 특정되지 않았고, 불법성이 제거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유·무형적 기여'로 인정한 2심 판단은 법리를 오해한 것으로 본 것이다.
"불법자금, 공동재산 기여 아냐"
이번 판결은 비자금 등 불법자금이 부부공동재산 형성에 기여했다고 보려면 그 자금이 합법적 경로를 통해 실제 자본 형성에 사용됐다는 점이 입증돼야 함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단순한 자금 유입 정황만으로는 재산분할 근거로 삼기 어렵다는 것이다. 불법성 부분은 파기환송의 핵심 근거가 됐다. 대법원은 "노태우의 행위(300억원 금전 지급 사실)가 법적 보호 가치가 없는 이상 이를 재산분할에서 피고(노 관장)의 기여 내용으로 참작해서는 안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례가 유지해온 "특유재산(부부 중 한쪽이 혼인 전부터 보유한 고유재산이나 혼인 중 자기 명의로 취득한 재산)은 원칙적으로 분할 대상이 아니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대법원은 1990년대 이후 "혼인 전 재산이나 상속·증여로 취득한 재산은 원칙적으로 재산분할 대상이 아니다"는 특유재산 보호 법리를 일관되게 유지해왔다.
무형적 기여 인정 범위 좁아질 듯
법조계는 이번 판결로 '무형적 기여'의 인정 범위가 다소 제한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혼 소송 사건을 주로 맡는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불법자금과 특유재산을 구분해 법질서를 유지하려는 판단으로 읽힌다"고 말했다. 가사사건을 주로 대리하는 한 변호사는 "대법원이 사회적 평판·정치적 배경 등 무형 요소를 기여로 인정한 항소심의 접근을 제어한 셈"이라며 "앞으로는 이혼 소송시 구체적 행위와 인과관계가 입증된 경우에 한해 재산 형성의 기여가 제한적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한편 대법원에 올라간 가사소송 대부분이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처리되는 것과 달리 이번 사건은 재산 규모가 방대하고 법리 구조가 복잡해 '세기의 이혼 소송'으로 불리며 장기 심리가 이어졌다. 이 사건은 지난해 7월8일 대법원 1부에 접수된 이후 1년 3개월여 만에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지난달 17일 전원합의체에 회부되지 않기로 결정됐으며, 이날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小部)에서 선고가 이뤄졌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허경준 기자 kjun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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