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협상 ‘막판 조율’ 돌입
구윤철·김정관·여한구 등 고위급 연속 방미
백악관 예산관리국(OMB) 접촉도
최종 문구 조율 국면 진입
한미 관세 협상이 사실상 막판 조율 단계로 접어들었다. 15일(현지시간) 구윤철 경제부총리가 워싱턴DC에 도착해 미 재무부와 접촉을 시작했고, 16일에는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합류한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미 선발대로 미국에 들어가 후속 협의 채비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10월 말 경주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이전 타결을 목표로 '총력전'에 돌입했다는 평가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우리 대표단이 16일 오후(현지시간) OMB(미 백악관 예산관리국)에 방문한다. 이에 따라 협상이 '최종 문구 확정·절차 검토' 단계에 들어섰다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OMB는 연방정부의 예산과 규제 심사를 총괄하는 핵심 기관으로, 대규모 재정·투자 약정의 문안 검토와 행정 절차를 담당한다. OMB 접촉은 산업통상부가 제안한 것으로 전해지며, 정부 안팎에서는 "한미 간 MOU 문안의 세부 조항을 OMB와 최종적으로 싱크를 맞추려는 단계"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김 실장은 이날 한미 관세협상 후속 협의를 위한 방미길에 기자들과 만나 "우리 장관들이 미국 워싱턴D.C.에 갔고, 여러 갈래 논의 이뤄지고 있는 만큼 협상에 박차 가하면 좋겠다고 해서 (미국으로) 가게 됐다"면서 "(한미 관세협상 후속 협의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미 관세협상이 마무리 단계에 있다는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의 발언과 관련해 "그간 미국 내 관련 부서들이 긴밀하게 소통하는 인상을 안 보였었는데, (최근에는) 미국 상무부가 아주 긴밀하게 소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언급한 '한국의 3500억달러 선불 투자' 발언과 관련해선 "여러 가지 내용을 가지고 협상 테이블 위에 논의하는 과정 중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번 방미의 초점은 두 가지다. 먼저 3500억달러 규모로 알려진 대미 '투자 패키지'의 구체적 실행 구조 수정안을 미측에 확정 제시하고, 이에 연동된 상호관세(25%) 경감의 적용 범위·시점을 최종 확정하는 일이다. 구 부총리는 "협상은 빠른 속도로 조율하는 단계"라고 공항 도착 직후 밝혔고,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15일 "세부 내용을 손보고 있으며 10일 내에 뭔가 있을 것"이라고 타결 임박 신호를 보냈다.
투자 패키지의 자금 성격과 배합도 변곡점을 맞았다. 당초 미국 측은 현금성 직접투자 비중을 높게 요구했지만, 최근 2주 사이 보증·대출 등 비현금형 수단을 병행하는 한국 측 수정안에 대해 "의미 있는 진전"이 있었다는 김용범 실장의 대통령실 브리핑 발언이 있었다. 베선트 장관도 "이견이 해소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외환시장 저변이 얇은 한국이 현금 일괄 투입을 피하면서도 미국이 원하는 '시장성·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려면, 비현금형 수단과 단계적 집행, 조건부 트리거가 핵심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구 부총리도 앞서 국회 국정감사에서 "현금 일괄투자는 감당하기 어렵다. 우리 외환상황을 미국 측에 설명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투자 집행에 따른 외환시장 충격을 최소화하고, 민·관·정책금융을 아우르는 다층형 조달 구조로 리스크를 분산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관세 파트의 세부 조정은 품목·인하율·시행시점·예외 규정 등 네 갈래가 동시 병행되고 있다. 철강·자동차·반도체 등 주력 업종은 품목별 관세 경감 폭과 발효 시차가 다를 수 있고, 미국의 비관세장벽(표준·인증·조달·조세)과의 '교환 비율'을 맞추는 문제가 막판 변수다.
그럼에도 '타결 임박' 신호는 짙다. 김용범·김정관·여한구의 동시 방미, 재무부·상무부·OMB로 이어지는 미 정부 핵심 라인과의 '트라이앵글 조율'은 통상 협상에서 보기 드문 총동원전이다. 다만 정부는 APEC 정상회의 이전 합의 도달을 공식 목표로 삼고 있으나, '시한보다 내용' 기조를 반복 확인하고 있다.
협상 타결 이후 과제는 명확하다. 먼저 투자 실행의 로드맵이다. 금액, 수단, 감액·증액 조항 등 금융기술적 조항을 명확히 해야 기업·정책금융이 실제로 돈을 움직일 수 있다. 또 시장 충격의 관리다. 단계적 집행·헤지·통화스와프 등 안전판이 설계돼야 '투자, 관세' 교환의 순기능이 온전히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치 일정 변수의 최소화도 관건이다. APEC 전후 정상외교 이벤트에 스포트라이트가 쏠리는 만큼, 합의문 문구·부속서의 실효성을 정치적 연출보다 앞세워야 한다.
김정관 장관은 APEC 계기 관세협상 타결 가능성에 대해 "특정 시기를 예단하고 하는 건 아니다"라며 "APEC은 두 정상이 만나는 기회기 때문에 양국 협상단 간에 이 기회를 활용하자는 공감대는 있지만, 국익과 국민의 이해에 맞게끔 가는 게 훨씬 더 중요한 이슈"라고 말했다.
세종=강나훔 기자 nahum@asiae.co.kr
워싱턴D.C.=이동우 기자 dwlee@asiae.co.kr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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