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정책실장 16일 방미…美상무장관과 대면 협의
두 달간 협상 교착상태 지속…김 실장 "서로 격한 말도 오가는 상황도 있었다"
외환시장 충격·국민 납득 불가 등 입장 담아 수정안 전달
"어려웠던 시기 사신으로 갔던 우리 역사 많이 반추하게 됐다" 소회 전하기도
김용범 정책실장이 10월 들어 한미 관세협의 후속 협상에 유의미한 진전이 있다면서 16일 오전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미국 워싱턴D.C.로 출발해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 등 핵심 관계자들을 만나 대면 실무 협의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달 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진행되는 한미 정상회담까지 관세협상을 마무리하도록 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김 실장은 15일 삼프로TV와 인터뷰에서 "APEC이 되면 (7월31일 한미 관세협상 타결 이후) 3달이 되는데, 정상 간 합의안 관세 협상이 마무리되도록 실무 협상을 잘 이어가고 있다"면서 "(관세협상 종료의) 데드라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두 정상이 만나는 계기가 그렇게 자주 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APEC이 실질적으로 큰 목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 측이 최근 2주 사이에 상당히 의미있는 반응을 보였고, 이에 따라 추석 연휴 기간 여러 번 내부 회의를 했다고 설명했다. 한국과 미국은 지난 7월 말 관세 협상을 타결했으나 3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 패키지의 세부 운용 방식을 두고 이견이 발생, 협상 교착 상태에 빠졌다. 미국은 대부분 지분 투자(에쿼티), 즉 현금 투자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한국은 외환시장 안정성, 국내총생산(GDP) 규모 등을 고려해 대출·보증 등 방식으로 투자 한도를 채우는 게 합리적이라며 수정안을 보냈다.
김 실장은 "미국이 우리가 보낸 수정 대안에 대해 미국이 상당히 의미 있는 반응을 보였고, 새로운 대안이 왔다"며 "이번 주 우리 협상단이 가서 실질적으로 대화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측이 보낸 수정안과 관련해서는 ▲외환시장 충격이 불가피하고 ▲한국 국민들이 납득할 수 없는 조건이며 ▲특별법과 국회 동의안이 필요하다는 점 등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미국 쪽에서 정치적 수사라고 생각하지만 '선불'이라는 용어가 나와서 우리 입장에서는 그런 상황까지도 감안해야 했다"며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납득 가능하게 설명했고, 우리 국민들이 이해 가능한 조건이어야 할 텐데 어떤 내용이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지도 설명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이 패키지가 실제 집행되는 단계에 가면 특별법도 필요하고 국회 동의안도 받아야 하는 기술적인 부분도 필수적"이라며 "국회에서 심의할 때 납득할 만한 내용이 돼야 한다는 부분을 잘 정리해서 전달했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미국도 굉장히 난감했을 거고, 그렇다고 한국이 말하는 걸 무시할 수도 없었을 것"이라며 "막무가내로 하면 우리로서는 감당이 안 되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서로 격한 말도 오가는 상황도 있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7월 말 관세협상 타결 직후에는 대미 투자 펀드가 통상적인 프로젝트처럼 진행될 것으로 예상했다고 했다. 통상적으로 사업체를 만들 경우 출자를 해 자본금을 만들고, 대출과 보증 함께 일으켜 본격적으로 사업을 진행한다. 미국이 일본과 했던 모델을 가져와 협상을 진행한 만큼, '팩트 시트'를 근거로 사전에 일본 정부와도 상세하게 소통했다고도 했다. 결국 미국은 한국 정부의 예상을 크게 벗어난 요구를 한 것이다.
김 실장은 "일부에서는 '희망 회로'라는 말도 하던데, 그 당시로는 합리적 기대였다"면서 "8월 초에 미국에서 MOU가 왔는데 우리가 예상한 것과는 다른 형식으로 돼 있었다. 항목별로 세세하게 설명하는 분위기가 아니었고 대출, 보증 등을 구별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관세협상 과정에 대해 "역사를 많이 반추하게 됐다. 우리 한반도 역사에서 어려운 시기에 사신으로 갔던 사람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문전박대를 당하고 모욕도 받았던 그 심정이 요즘 많이 떠오른다"면서도 "중요한 한미 동맹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상호 호혜적으로 미국 제조업 부흥을 제대로 도와줄 수 있는 최적의 나라는 한국"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중국과의 관계는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 실장은 한국의 미·중 '가교' 역할론에 대해 "'혐중'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고, 안타깝기도 하다. 2001년 이후 서로 도움을 받은 가장 가까운 이웃이자 경쟁자이기도 하다"며 "중국이 국가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우리의 몫을 잠식하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 나은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문화적 교류를 비롯해 정부 부처 간 관계도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고 했다.
APEC을 통해 한국 정부가 기대하는 바에 대해서는 "한미, 한중 관계의 미래를 포함해 다자주의 복원이라는 측면에서 한국의 기여가 매우 크다고 본다"면서 "경주는 동서양을 연결하는 도시로 '연결(Connectivity)'이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모두가 으르렁거리는 최악의 국면에서 화합의 장이 경주라는 무대에서 이루어지는 것인 만큼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말했다.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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