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의 범죄자소굴에 우리 청년들이 갇혀있다. 일자리를 구하러 캄보디아에 갔던 한 대학생이 범죄조직의 은신처에 감금되어 강제 노동과 고문 폭행에 시달리다가 결국 죽임을 당한 사건이 발생한 뒤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구조요청이 봇물 터지듯 이어지고 있다. 피해자 대부분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꾐에 빠져 우리나라를 떠난 20대 청년들이다. 조직의 감시를 피해 목숨 걸고 구조요청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지난 8월까지 330건에 이르며 최근 폭증하는 추세라고 한다.
국민을 보호하는 일은 정부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이다. 외국에서 벌어지는 일이기에 우리 경찰력이 직접적으로 개입하기 쉽지 않다는 한계를 고려해도, 한둘도 아니고 이렇게 많은 국민들이 지옥에 갇혀있는데 왜 구해오지 못하냐는 질책은 당연한 일이다. 국민의 분노는 이런 비극이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증폭된다.
르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캄보디아 현지를 직접 취재하고 실제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담은 방송을 여러 번 내보냈다. 인기 프로그램인 만큼 적지 않은 반향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의 예방책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이렇게 시끄러워진 뒤에야 캄보디아 정부와 전담 부서를 만들기 위해 논의하고, 국제 경찰기구와 합동작전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정작 현지 당국과 협력해야 할 캄보디아 대사는 3개월째 공석이다.
현지 범죄조직이 점령하고 있는 근거지는 원래 호텔이나 카지노로 건설되었다가 버려진 곳들이다. 범죄조직 우두머리 대부분은 중국 출신이며 이곳에 잡혀있는 피해자들은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서 온다고 알려져 있다. 캄보디아는 대체 어떤 나라이길래 이런 일들이 가능할까? 캄보디아의 역사를 통째로 공부하긴 부담스러우니, 일단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변곡점만 짚어보자.
196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보다 더 잘 사는 나라였던 캄보디아는 미국과 베트남 간의 전쟁에 휘말리면서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공산주의 정권 크메르루주는 도시를 모두 파괴하고 농업사회를 건설하겠다는 허황한 목표를 추진하며 자국민을 집과 일터에서 내쫓았다. 이때 학살이나 폭행 질병으로 사망한 사람이 수백만 명에 이른다. 전국 곳곳에 이 시체들을 매장한 곳을 '킬링필드'라고 불렀고 지금은 추모 공원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캄보디아의 현대사를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들에겐 같은 제목의 영화 '킬링필드'를 추천한다. 너무 오래된 영화가 보기 불편한 분들에겐 배우 앤젤리나 졸리가 감독한 영화 '그들이 아버지를 죽였다'를 대신 권한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는 '그것이 알고 싶다'의 캄보디아 특별판 2부작이 이해를 도울 것이다.
나는 '킬링필드(Killing field)'의 나라에 '크라임필드(Crime field)'가 생겼다고 현재 상황을 요약하고 싶다.
캄보디아 정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범죄조직 일당을 검거했다는 외신을 봐도 대대적인 소탕 작전과 거리가 멀고 보여주기식에 불과하다. 도리어 캄보디아 여행에 우려를 표한 우리 대통령에게 관광과 범죄도 구별 못 하냐며 국민 교육에 힘쓰라는 모욕적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현지 당국이 이런 식이라면 우리 정부가 관례보다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지옥 같은 크라임 필드에 우리 청년들이 갇혀있다. 구출 소식이 잇따라 들려오기를 간절히 빈다.
이재익 SBS 라디오 PD·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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