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권력 집중·정당성 약화·재정 경직 등 동시 압박
위기 극복 여부, 적응력에 달려 있어
적응 실패하면 조용히 조금씩 무너질 것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임하면서 미국 정치만 바뀐 게 아니다. 그의 복귀는 '미국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스트레스 테스트'를 불러왔다. 헌법, 전략, 기술, 재정, 시민 사회의 안전장치들이 동시에 압박을 받고 있다. 미국이 이 상황에 잘 적응하느냐 아니면 표류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미국 제도의 모습이 결정될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압박은 헌법과 관련된다. 초기 행정명령들에서 대통령에게 권한이 매우 강하게 집중됐다. 감시 역할을 하던 공무원들이 해임되고 독립 기관의 수장이 교체됐으며 대통령에 대한 면책 특권 관련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런 조치 중 몇 가지는 연방 대법원에서 심리 중인데, 이에 대한 판결은 앞으로 오랫동안 대통령, 의회, 법원 사이의 권력 균형을 결정할 것이다.
사실 행정부의 권력이 강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남북전쟁, 대공황 시기 뉴딜 정책, 9·11 테러 이후에도 대통령에게 권한이 집중되면서 국가 제도적 구조가 재편된 적이 있다. 이번 상황도 그만큼 큰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적법 절차 원칙도 위협을 받고 있다. 이민자 단속 방식, 교육 정책 변화, 정치적으로 계산된 시점의 기소 등이 문제로 지적된다. 역사적으로는 수정헌법 제5조와 제14조가 법적 방화벽 역할을 해왔다. 이 조항들이 얼마나 잘 작동하느냐가 견제와 균형이 여전히 살아 있는지 보여주는 척도가 될 것이다.
또 다른 압박은 전략적 의존성이다. 미국은 최근 우크라이나와의 광물 협정을 통해 티타늄, 리튬, 흑연 같은 자원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 또 중국 희토류 의존도를 줄이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 충분히 투자하지 않으면 미국은 여전히 외국 공급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들은 외부 환경의 불안정과 맞물려 있다. 중국은 핵심 광물 자원을 장악하고, 인공지능(AI)과 양자 기술에서 경쟁하며, 해양에서의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그와 동시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속하고, 비동맹 국가들은 새로운 외교적 위치를 찾아 움직이고 있다.
이런 외부 압박은 내부 문제를 더 심화시킨다. 전략적 유연성이 줄어들면 국내 정책 결정도 어려워지고, 이에 따른 국내 분열은 불확실성을 키운다.
미국의 해외 정책은 긴장이 고조되는 시기에 들어섰다. 우크라이나 지원, 가자지구와 이스라엘 갈등, 대만 해협과 남중국해 문제, 그리고 중동과 '글로벌 사우스' 지역에서의 동맹 재편까지 미국의 외교 역량이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해외에서 갈등이 길어질수록 재정 부담이 커지고 행정부와 입법부의 관계가 악화하며 국민 단합도 약해진다. 전략적 '과잉 확장'은 과거 강대국들이 쇠퇴할 때 늘 등장했던 문제였다. 미국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워싱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연방 정부와 주 정부 간 관계도 점점 틀어지고 있다. 이민 단속, 교육, 선거 관리, 신기술 규제 등에서 서로 다른 정책이 부딪치며 법적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이 상황에서 연방 기관이 조율을 잘할 수 있을까, 아니면 분열이 더 심해질까 고민해봐야 한다.
시민 사회의 문제도 중요하다. 예전에는 선거의 공정성을 의심하는 말이 주로 야당의 비판에서 나왔지만 지금은 정부 안에서도 나온다. 정당성이 약해지면 다시 신뢰를 쌓는 것은 매우 어렵다.
기술 변화는 또 다른 압박을 더 한다. AI 시스템이 고용, 금융, 형량 결정, 행정 절차 등에 들어오고 있다. 유럽연합(EU), 영국, 미국의 규제 기관들은 AI 안전장치를 만들고 있지만 제도에 대한 대중의 신뢰는 여전히 부족하다.
과거 원자력 에너지나 유전자 조작 식품이 반발을 산 이유도 과학이 틀려서가 아니라 정부의 투명성과 책임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신뢰가 없으면 정치적 후퇴가 일어난다. AI도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다.
재정 문제도 심각하다. 미국의 연방 부채는 37조달러를 넘었고 매년 이자만 1조달러 이상이다. 이는 국방비보다 많은 금액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인프라, 제도 현대화, 혁신에 투자할 여력이 줄어든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민들의 역량이 매우 중요하지만 종종 간과된다. 제도가 변화에 적응하려면 국민의 신뢰와 참여가 필요하다. 하지만 연방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25% 아래로 역사적 최저 수준이다. 양극화는 심화했고, 허위 정보는 사회의 균열을 더 깊게 만든다. 시민 역량이 약하면 (위기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지고, 결국 표류하게 된다.
미국은 과거에도 제도적 위기를 맞은 적이 있다. 남북전쟁 이후 재건 때 연방 정부의 역량과 정통성이 약해져 거의 한 세기 동안 차별과 지역 갈등이 발생했다.
반면 뉴딜 정책과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경제·사회·지정학적 충격을 버틸 수 있는 튼튼한 제도가 탄생했다. 이런 성공은 법에 근거한 신중한 개혁 덕분이었다.
이상의 헌법적, 전략적, 연방적, 시민적, 기술적, 재정적, 지정학적 압박들은 서로 연결돼 있다. 행정부로의 권력 집중은 법적 제약을 가중하고, 전략적 의존은 외교 자율성을 제한하며, 연방 정부와 각 주 간 분열은 정책 실행을 어렵게 한다. 아울러 정당성의 부족은 (국민이) 규정을 준수하는 것을 약화하고, 기술의 불투명성은 신뢰를 떨어뜨리며, 재정 경직성은 선택지를 제한한다. 외부 적대국은 이 모든 약점을 동시에 이용하려 든다.
미국은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압박을 받는 구조적 상황에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한 가지 개혁만으로는 부족하고, 서로 얽힌 문제들을 통합해서 다루는 적응력 있는 대응이 필요하다.
지금의 위기는 전통적인 의미의 위기가 아니다. 갑자기 무너지기보다는 점점 쌓이는 압력과 서서히 진행되는 변화의 과정이다. 공학에서는 이를 '시스템에 하중이 커질수록 보강을 통해 적응하거나 내부에 보이지 않는 균열이 쌓이다가 붕괴한다'고 표현한다.
제도가 자리를 잘 잡는다면 미국은 지정학, 기술, 재정 등의 도전을 견딜 수 있는 더 강한 구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적응에 실패하면 처음에는 눈에 잘 띄지 않게 조금씩 변할 것이다. 규칙이 주변부에서 왜곡되고, 감독 기능이 약해지고, 해외 의존이 고착되고, 신뢰가 약해지고, 재정 여력은 줄고, 시민 역량도 약해질 것이다. 그러다가 이런 변화가 생활 속에서 느껴질 때쯤에는 근본적인 구조 자체가 달라져 있을 것이다.
미국은 과거에도 위기를 겪어왔다. 하지만 이번처럼 여러 가지 부담을 동시에 겪은 적은 드물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압박의 크기가 아니라 미국이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이다. 이번 시기가 미국의 회복력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될지, 아니면 조용히 무너지는 시작이 될지는 미국의 적응력에 달려 있다.
마수드 아민 미네소타대 명예교수
이 글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의 칼럼 Will the US republic survive stress test of Trump's presidency?를 아시아경제가 번역한 것입니다.
※이 칼럼은 아시아경제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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