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오버 더 모빌리티](35)
도요타의 미래 모빌리티 전략
전 세계서 1000만대 팔며 수년째 글로벌 1위
올 상반기 영업이익률 9.2%…하이브리드 덕분
도요다 회장, 전형적 외향형 리더…경영 스타일은 보수적
미래도시에 14조원 투입…일본식 혁신 모델 재정의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기술력뿐만 아니라 전략으로 승부가 갈리는 무대다. 급변하는 판세를 먼저 읽고, 상대의 수를 빠르게 예측하는 기업만이 살아남는다. 전략 수립의 출발점은 경쟁사 분석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변화의 흐름 속에서 어떤 무기를 꺼내들지 결정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을 심층 분석하기 위해서는 경쟁사의 현주소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 3회에 걸쳐 글로벌 시장에서 현대차를 위협하는 주요 경쟁사 3사(도요타·테슬라·BYD)의 전략을 차례로 분석해본다.
'세계 1위' 도요타는 현대차가 넘어야 할 가장 강력한 경쟁자다. 도요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제너럴모터스(GM)를 제치고 글로벌 판매 1위로 올라섰다. 이후 폭스바겐에 잠시(2016~2017년) 자리를 내어준 것을 제외하면 2020년 이후 꾸준히 왕좌를 지켜오고 있다.
도요타의 경영철학을 집약한 '도요타 생산 방식(TPS)'은 1990년대 세계 제조업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TPS의 핵심은 △기계가 자동으로 움직이되 이상이 생기면 사람이 즉시 개입해 문제를 해결하는 지도카(Jidoka·인간의 손길이 닿는 자동화) △재고를 쌓아두지 않고 필요한 만큼만 부품을 공급하는 적기생산(Just in Time)이다. 생산성을 극대화한 TPS는 오늘날까지도 글로벌 제조 기업이 참고하는 교과서이자 지침서로 통한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도요타는 현대차의 벤치마크 대상이었다. 2000년대 초반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은 공공연히 "도요타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2004년 미국 시장조사기관 J.D.파워 초기품질조사 평가에서 현대차가 처음으로 도요타를 제쳤을 때, 현대차는 이를 대대적인 광고로 알리기도 했다.
'닮은 듯 다른' 거대 자동차 공룡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관점에서 보면 도요타와 현대차는 가장 비슷한 구조를 가진 회사다. 내연기관부터 하이브리드(HEV), 전기차, 수소차까지 모든 파워트레인 포트폴리오를 갖춘 회사는 전 세계에서 도요타와 현대차, 단 두 곳뿐이다. 이제 두 회사는 경쟁자이자 협력자 관계로 진화했다. 미국과 유럽, 중국, 인도 등 세계 주요 시장에서 점유율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도 수소경제 활성화와 글로벌 관세 대응, 중국 전기차 공세 대응 등 협력해야 할 부분도 많다.
기업 수익성 측면에서도 두 회사는 치열한 경쟁자다. 2024년 글로벌 판매 기준으로는 도요타가 약 1000만대로 1위, 현대차·기아가 720만대로 3위다. 2025년 상반기 기준 영업이익률은 도요타가 9.2%, 현대차·기아가 8.7%로 전통 완성차 중에서도 최상위 수준이다. 높은 수익성의 비결은 하이브리드다. 다른 경쟁자들은 내연기관과 전기차라는 두 가지 포트폴리오로 모빌리티 전쟁에 참여해야 한다면, 두 회사엔 하이브리드라는 강력한 무기가 하나 더 있다. 전기차 시장이 2023년 이후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에 접어들면서, 하이브리드는 시장 전환기의 버팀목이 됐다.
두 회사는 '위기에 강한 조직'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가장 최근 위기는 글로벌 시장을 강타한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었다. 2020년 도요타는 폭스바겐 그룹을 누르고 글로벌 판매 1위의 왕좌를 되찾았다. 현대차그룹은 2020년 5위에서 2021년 3위로 뛰어오르면서 코로나 기간 동안 가장 높은 순위 상승을 보인 업체다. 위기의 순간을 기회로 바꾸는 기업 철학과 조직 응집력은 두 회사를 글로벌 1·2위의 반열에 올린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외향적 카리스마 아키오 vs 절제된 전략가 정의선
회사를 이끄는 리더십도 닮은 듯 다르다.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그룹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거대 자동차 그룹을 이끄는 총수라는 공통점이 있다. 두 총수는 창업주의 손자로서 본인의 경영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공통 과제도 안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개인적인 성향은 물론 기업 운영 방식이 전혀 다르다.
개인적 성향을 살펴보면, 도요다 회장은 전형적인 외향형 리더다. 그는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며 대중과 적극 소통한다. 지역 라디오 프로그램이나 사내 라이브 방송에 출연하기도 하고, '모리조'라는 또 다른 캐릭터를 만들어 모터스포츠 선수로 활동하거나 본인의 이름을 딴 녹차를 출시하는 등 전통적 경영자의 틀을 깨는 소통 방식을 보여준다. 2024년 일본에서 열린 월드랠리챔피언십(WRC) 현장에서 만난 도요다 회장은 경호원 없이 행사장을 활보하며 팬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지난해 한국에서 현대차와 공동 개최한 모터스포츠 친선 행사에서는 직접 드라이빙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일본 시모야마 도요타 테크니컬센터 로비에는 도요다 회장이 시험 주행 중 전복시킨 랠리카가 전시돼 있다. 도요타는 이 사고 장면을 공식 유튜브에 공개하며 차량 개발 과정과 총수의 실수까지 가감 없이 드러냈다. 도요다 회장은 소통과 현장 중심 경영, 진솔함을 무기로 자신만의 리더십을 구축해왔다.
정 회장은 내향적이고 절제된 리더에 가깝다. 전면에 나서기보다 필요할 때 정제된 메시지를 던지는 스타일이다. 개인적인 캐릭터나 사적 일상을 드러내는 일은 거의 없고, 기업의 전략과 방향을 전달하는 공식 무대에서만 모습을 드러낸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3월 미국 백악관에서 이뤄진 투자 계획 발표였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현대차그룹의 대미 투자 계획과 미국 시장의 중요성을 차분하면서도 힘 있는 어조로 설명했다. 이를 통해 국익과 기업 이익을 동시에 고려하는 '책임 있는 리더'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정 회장의 경영 철학과 비전에 대한 이야기는 추후 연재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사진 왼쪽)과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그룹 회장이 지난해 10월 한국에서 공동 개최한 모터스포츠 행사장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원본보기 아이콘전기차 지각생 도요타? 전동화 전략은
흥미롭게도 두 사람의 경영 스타일은 개인적인 성향과는 정반대다. 도요타는 신중함과 철저한 현실 감각으로 완성도를 추구하고, 현대차는 속도와 도전으로 돌파구를 찾는다. 경영 스타일로만 보면 도요타가 내향형, 현대차가 외향형에 가깝다. 글로벌 1위를 지켜야 하는 도요타와 후발주자로서 퀀텀점프를 노리는 현대차의 위상 차이가 경영 전략에도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도요타는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혁신보다는 안전성과 내구성이라는 전통적 가치를 우선한다. 이 같은 보수적인 접근은 기술적 완성도와 품질을 지키기 위한 전략이었지만, 전기차 전환에서는 경쟁사보다 '속도가 느리다'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2020년 당시만 해도 '전기차 중심의 전동화 전환'은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공통 과제였다. EU는 2035년부터 내연기관 신차 판매 금지를 공식화했고, 폭스바겐과 현대차, 중국 전기차 업체들은 앞다퉈 전기차 라인업 확대에 나섰다.
반면 도요타는 2020년까지도 이렇다 할 순수전기차 모델을 내놓지 못했다. 시장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쏟아졌고 '시대에 뒤처졌다'는 혹독한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도요다 회장은 다른 길을 택했다. 그는 "순수전기차의 점유율은 30%를 넘기기 어렵다"며 "하이브리드와 수소차, 내연기관차가 함께 공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탄소 배출 감축 그 자체가 목표이며, 특정 기술이 목적이 되어선 안 된다는 논리였다. 소비자 취향과 인프라 환경이 지역마다 다른 현실에서 단일 기술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이었다.
당시에는 이 같은 발언이 전기차 전환에 늦은 '지각생' 도요타의 변명처럼 들렸다. 하지만 불과 3년 뒤, 그의 예견은 현실이 됐다. 2023년부터 수요가 정체되며 전기차 캐즘이 도래했다. 유럽 각국에서는 정부의 탄소 감축 목표가 비현실적이라는 불만이 커졌고, 소비 둔화와 공급망 혼란 등 급격한 전환의 부작용도 드러났다. 도요타는 소비자의 취향과 시장의 현실을 반영해 하이브리드, 수소, 내연기관 등 모든 친환경 기술을 병행하는 '멀티 패스 웨이(Multi-Pathway)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도요타의 또 다른 특징은 기술 중심의 기업 문화다. 창업주 사키치 도요다는 발명가이자 엔지니어였다. 기술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그의 정신은 시대를 넘어 오늘날 도요타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도요타는 새로운 기술을 먼저 개발해 특허를 확보한 뒤, 시장 상황이 무르익었다고 판단될 때 상용화하는 방식을 택한다. 도요타는 1997년 세계 최초의 하이브리드 모델을 선보이며 '친환경차 시대'의 문을 열었다. 이제는 전고체 배터리 기술 선점을 통해 차세대 전기차 시장의 주도권을 노리고 있다.
세계지식재산기구(WIPO)가 올해 발표한 '기술 트렌드: 운송의 미래(2024)' 보고서에 따르면, 도요타는 2000년부터 2023년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래 운송 기술 관련 특허를 보유했다. 육상 운송 관련 특허만 3만7000건, 항공·해상 등 미래 운송 기술 전체로 범위를 넓히면 약 5만5000건에 이른다. 도요타는 인공지능(AI)과 로보틱스 등 미래 모빌리티 핵심 기술도 대부분 자체 연구소에서 직접 개발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술 내재화를 고수한다.
반면 현대차는 인수합병(M&A)을 통해 보다 공세적인 기술 확보 전략을 펼치고 있다. 글로벌 로보틱스 기업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했고, 자율주행 분야에서는 미국의 앱티브와 합작해 모셔널을 설립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중국 자율주행 스타트업 인수도 검토하는 등 기술 외연을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미래도시 프로젝트 '우븐 시티'
일본에 도요타는 단순한 제조기업이 아니다. 국가 정체성과 산업 정신의 상징이다. 정밀함과 신뢰로 대표되는 '메이드 인 재팬' 이미지를 세계에 각인시킨 도요타는 일본 GDP의 2~3%, 수출의 10% 이상을 차지하며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한다.
최근에는 미래 도시 프로젝트 '우븐시티(Woven City)'를 통해 하드웨어 중심의 제조 강국을 넘어 데이터·모빌리티·AI 중심의 새로운 일본식 혁신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 도요타가 쏟아부은 투자금만 100억달러(14조원) 이상이다. 단일 기업이 미래 도시 건설에 이처럼 대규모 자금을 투입한 사례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우븐시티는 도요타가 자동차 제조사를 넘어 모빌리티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후지산 기슭의 노후 내연기관 공장 부지를 미래 스마트도시로 재탄생시킨다는 콘셉트만으로도 상징성이 있다. 도요타는 이곳에서 자율주행, 로봇, AI, 수소 인프라를 실제 도시 환경에 적용해, 기술이 사람의 일상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검증한다. 실험의 주제는 자율주행 로봇을 이용한 공유 모빌리티 서비스부터 커피가 사람의 창의성과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까지 매우 다양하다. 2020년 CES에서 처음 공개된 이 프로젝트는 5년간 공사를 거쳐 지난달 공식 출범했다. 1단계로 지원자 300명이 입주했으며, 향후 인원은 2000명 규모로 확대될 예정이다.
국가 차원에서 보면 우븐시티는 '일본식 혁신 모델의 재정의'라는 의미를 지닌다. 일본은 오랫동안 정교한 제조 기술과 높은 품질 신뢰도로 대표됐지만, 디지털 전환 흐름에서는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우븐시티는 일본이 안전하고 완벽해야 한다는 보수적 틀에서 벗어나, 실패를 감수하며 실험하는 혁신 문화로 나아가려는 전환점으로 해석된다. 결국 우븐시티는 도요타의 미래 비전이자, 일본식 혁신의 새로운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우수연 기자 yes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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