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와 개인정보 이전 상호 인정
유럽진출 기업 경쟁력 강화 기회
철저한 관리·보호체계 구축 과제
자유롭고 안전한 항로는 무역에 필수적인 조건이다. 무역이 활발해지고, 물자가 원활하게 흐를 때 경제는 성장한다. 하지만 국제 무역에서는 높은 관세 장벽과 보호무역 조치라는 거친 파도가 이를 가로막기도 한다. 길이 막히면 시장은 위축되고, 기업들은 성장의 기회를 잃는다.
지금 디지털 경제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데이터가 곧 자산이 되는 시대, 기업들은 국경을 넘어 데이터를 주고받으며 가치를 창출하고 있지만, 각국의 개인정보 보호 규제 차이로 인해 데이터 흐름은 원활하지 못하다.
유럽연합(EU)은 유럽 개인정보보호법(GDPR)에 따라 EU에서 수집된 개인정보의 역외 이전을 원칙적으로 제한하나, 적정요건을 갖춘 경우에 한정해 개인정보 이전을 허용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알려진 요건은 GDPR에 준하는 적정한 보호 수준을 갖춘 국가로의 이전을 허용하는 적정성 결정이 있다.
2021년 EU는 한국의 개인정보보호 수준을 인정하며, EU에서 한국으로의 개인정보 이전을 허용했다. 당시 우리 법에는 이와 유사한 법적 근거가 없어, 양방향 이전이 아닌 EU에서 한국으로의 일방향 이전만 가능했다. 하지만 이런 구조로는 데이터 흐름을 통한 가치 창출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지난달 16일, 한국은 EU의 개인정보 보호 체계가 한국의 개인정보보호법과 동등한 수준임을 확인하고, EU에 대한 동등성 인정을 최종 승인했다. 이로써 양방향 데이터 이전이 가능해졌고, 한·EU 간 데이터 경제 시대를 여는 새로운 항로가 마련됐다.
개인정보 이전 상호 인정은 양국의 보호 체계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데이터 이동을 보장하는 제도다. 이를 통해 양측은 데이터 경제 활성화와 개인정보보호 강화라는 두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EU와의 개인정보 이전 상호 인정은 한국 기업에 큰 기회다. EU 시장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들은 별도의 인증 절차나 추가 계약 없이 GDPR 기준에 따라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어 비용을 줄이고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일례로 양측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활용해, 바이오 연구소는 질병 예측과 신약 개발이 용이해지고, AI 기업은 다국어 챗봇과 추천 알고리즘을 고도화할 수 있다. 가전제품 제조사는 소비자 취향 맞춤형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며, 자동차 제조사는 도로 환경과 운전 습관 데이터를 바탕으로 최적화된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해 성능을 강화할 수 있다. 이런 변화를 통해 기업들은 기술 고도화와 신규 서비스 영역을 개척하고 글로벌 시장 내 입지를 확대·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데이터 이동의 자유가 보장됐다고 해서 이를 무조건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업들은 데이터를 안전하게 관리하고 보호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하며, EU의 GDPR과 우리 개인정보보호법을 충분히 이해하고 적절한 보호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에 KISA는 벨기에에 위치한 'EU 개인정보보호 협력센터'를 통해 우리 기업이 유럽의 개인정보 처리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10월에는 'EU 개인정보 보호 규제 대응 세미나'를 개최해 동등성 인정 등 최신 EU 개인정보 정책 동향을 다룰 예정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새롭게 열린 데이터 항로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이다. 디지털 시대의 실크로드는 더 이상 낙타가 짐을 나르는 길이 아니다. 데이터가 자유롭게 흐르는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가 열렸다. 이제 한국이 글로벌 데이터 경제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열린 기회를 적극 활용해야 할 때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황보성 개인정보안전활용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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