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삼성전자보다 먼저 2㎚ 양산 발표
GAA·후면전력공급 등 신기술도 대거 적용
반도체 패권 경쟁 본격화
투자 끌어당긴 인텔, 18A 공정 부활 분수령
경영난에 시달려온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이 세계 첫 2㎚(1㎚=10억분의 1m) 공정 양산을 깜짝 발표하며 반도체 패권 경쟁에 불을 붙였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에서 대만 TSMC를 추격해야 하는 삼성전자에 또 다른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인텔, 삼성까지 제치고 세계 최초 2㎚ 양산
인텔은 9일(현지시간) 18A 공정으로 차세대 노트북용 프로세서 '펜서 레이크' 양산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미국 애리조나주에 위치한 오코틸로 팹52에서 해당 공정을 완전 가동했으며, 프로세서의 핵심이 되는 중앙처리장치(CPU) 코어를 18A 기술로 만들었다는 게 인텔의 설명이다. 18A 공정은 반도체 회선폭을 1.8㎚로 제조하는 공정으로, 2㎚급 기술로 분류된다.
2㎚ 양산을 공식 발표한 건 전 세계 반도체 기업 가운데 인텔이 처음이다. 지금껏 5㎚ 이하 선단 공정의 파운드리 양산은 TSMC와 삼성전자만 가능했다. 인텔이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2㎚ 공정은 현행 최선단 공정인 3㎚보다 앞선 기술로, 두 기업도 연내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TSMC는 수율을 상당 부분 끌어올렸지만 대량 생산 발표는 아직이다.
인텔은 18A 공정에 첨단 기술을 대거 도입했다. 자체적으로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술을 처음 적용했다. GAA는 트랜지스터의 핵심 요소인 게이트와 채널 접합면을 4개로 구성한다. 기존의 핀펫은 접합면이 3개였는데, 이보다 성능 및 전력 효율을 강화한 게 특징이다. 삼성전자는 2022년 3㎚ 공정에 이 기술을 세계 최초로 도입했지만 수율 문제로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아울러 인텔은 업계 최초로 후면전력공급장치(BSPDN)를 적용했다. 회로가 그려진 웨이퍼 뒷면에 전력 공급선을 배치하는 기술이다. 이 또한 칩 성능과 전력 효율 등을 개선할 수 있다. 이번에 공개한 '펜서 레이크'에는 적용되지 않았지만 인텔은 내년 상반기 출시할 서버용 프로세서 '제온 6 플러스'를 18A 공정으로 만들면서 후면전력공급장치를 적용하겠다는 방침이다.
파운드리 경쟁 불붙인 인텔, 관건은 '진짜 수율'
반도체 업계에선 인텔의 파운드리 도전에 엇갈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인텔의 발표대로라면 TSMC와 삼성전자를 기술력으로 제쳤다는 것이지만 아직 신뢰하기 어렵다는 신중론이 교차한다.
당초 인텔은 지난 여름까지만 해도 2㎚ 수율 확보에 난항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현지 언론에선 인텔의 2㎚ 공정 수율을 10%로 평가했는데, 이는 양산과는 거리가 먼 수치다. 통상적으로 수익 분기점으로 꼽히는 70~80% 수율을 확보해야 안정적인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고 본다.
아직 양산에 나서지 못한 TSMC는 올해 상반기 수율 60%를 넘긴 것으로 알려졌으며, 삼성전자 역시 상당 부분 수율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양산 발표는 아직이다. 반도체 공정은 회로선 폭이 줄어들수록 성능과 효율을 높일 수 있지만, 제조 난도가 높아져 수율 확보가 중요하다.
업계에선 인텔이 우선 18A 공정을 자사 제품들을 중심으로 적용하되 차세대 공정인 14A(1.4㎚) 공정의 완성도를 끌어올려 고객사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으로 평가한다. 인텔의 파운드리 도전이 제대로 부활했다고 보려면 외부 수주를 비롯한 실적으로 '내실'이 확인돼야 한다는 것이다.
립부 탄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미국은 항상 인텔의 가장 진보된 연구개발(R&D), 제품 설계 및 제조의 본거지였다"며 "우리가 국내 사업을 확장하고 시장에 새로운 혁신을 가져오면서 이런 유산을 이어 나가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텔은 지난 7월 경영 정상화를 위한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도 새로운 18A 제조 공정이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최첨단 14A 제조 공정은 '확정된 고객 주문'을 기반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단서를 달았었다.
반도체 패권 경쟁 본격화…美, 인텔 지원사격
인텔은 최근 수년간 최첨단 칩 수요를 따라잡지 못해 어려움을 겪으면서 경영난에 시달렸다. 이번 발표는 경영 정상화를 위한 투자가 진척을 보는 가운데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미국이 첨단산업 제조 역량 강화를 노리고 있는 만큼 반도체 패권 경쟁이 본격화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국 정부는 지난 8월 미국의 제조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인텔의 지분 10%를 89억달러(약 13조원)에 매입했다. 일본 소프트뱅크 역시 20억달러(약 3조원) 규모의 인텔 주식을 취득하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여기에 지난달 초 엔비디아가 인텔에 50억달러(약 7조원)를 투자해 데이터센터용 칩을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18A 공정 제품들이 사업 재건을 가를 분수령인 셈이다.
삼성전자 역시 자사의 차세대 모바일 칩셋 '엑시노스 2600'의 양산 준비에 착수하며 2㎚ 시장에서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업계에선 이르면 이달 말, 늦어도 내달 중 엑시노스 2600 양산 발표가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엑시노스는 삼성전자의 시스템LSI 사업부가 설계하고 파운드리 사업부가 생산한다. 2㎚ 공정이 적용될 예정이고, 내년 초 출시될 갤럭시 S26 시리즈 탑재를 목표로 한다.
파운드리 시장의 규모가 계속 커지고 있지만 TSMC를 추격해야 하는 삼성전자의 입장에서 인텔의 참전은 우려 요인이다. 10일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순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TSMC 71%, 삼성전자 8%, 중국 SMIC 5% 등 순으로 나타났다. TSMC는 전년 동기(65%) 대비 6%포인트 증가했다. 삼성전자는 같은 기간 점유율이 2%포인트 감소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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