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기 막으려 선배에 손 벌린 펀드매니저
거액 빌렸다 못 갚아…형사재판서 징역 7년
소속 운용사, 피해금 선지급 후 구상금 소송
국내 한 펀드매니저가 20년지기 대학 선배의 회사에서 100억원을 빌려 펀드 만기 자금을 메운 뒤 갚지 못해 시작된 사건이 7년째 법적 분쟁을 이어가고 있다. 사모펀드 운용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는 민·형사 소송으로 번졌고, 최근 법원은 운용사와 펀드매니저, 투자처 간의 구상금 책임을 가른 1심 판결을 냈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31부(재판장 남인수)는 지난 7월 현대인베스트먼트자산운용이 펀드 실무 팀장이던 조모씨와 주식회사 에너지세븐 및 경영진 등을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 소송에서 "에너지세븐이 약 92억원과 지연이자를 현대인베스트에 지급해야 하며, 여기서 약 30억원은 김모 전 에너지세븐 대표가, 약 36억원은 당시 펀드 운용을 담당한 조씨가 공동으로 부담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1심은 에너지세븐을 주된 채무자로 정해 현대인베스트가 피해자 측에 선지급한 배상금을 사실상 전액 회수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현대인베스트에도 펀드 운용역에 대한 감독 소홀 책임이 있다고 명시하면서, 조씨의 개인적인 책임도 업무 관련성 등을 이유로 일부 제한했다. 에너지세븐 측이 "운용사인 현대인베스트의 펀드 관리 부실로 사태가 발생했다"며 제기한 반소 청구는 모두 기각했다.
"한달 뒤 이자까지 붙여준다" 절친 약속 믿고 덜컥 100억 대여
이 사건의 시작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현대인베스트는 에너지세븐이 발행한 사모사채에 투자하는 사모펀드를 조성했다. 에너지세븐은 정유사에서 대규모로 기름을 구입해 도·소매상에 판매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운용했지만, 2018년 만기일을 앞두고 신탁계좌 잔고가 급감하면서 상환 자금이 바닥났다.
펀드 운용을 담당하던 조씨는 만기 상환을 위해 "한달 뒤 2억원의 이자를 붙여 갚겠다"는 약속과 함께 A사로부터 100억원을 빌렸다. A사는 대학 1년 선배가 사내이사로 있던 회사로, 두사람은 20년지기 우정을 자랑하던 사이였다. 부동산금융업에서 장기간 일한 선배는 펀드 현황이나 상환 능력 등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돈을 빌려줬다. 절친인 조씨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한 것이다.
하지만 A사는 거액을 돌려받지 못했고, 사건은 민·형사 사건으로 번졌다. 2021년 조씨는 특정경제범죄법상 사기 혐의로 징역 7년, 김 전 대표는 징역 3년을 각각 확정받았다.
A사 측은 현대인베스트까지 묶어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법원은 "김 전 대표와 조씨, 현대인베스트가 공동으로 70억원 및 지연이자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확정했다. 특히 법원은 현대인베스트의 사용자책임을 인정해 손해를 분담토록 했다. 그러면서 "조씨에 대한 지휘, 감독을 게을리한 영향도 일정 부분 존재한다"며 "내부 감독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결국 현대인베스트는 손해배상 판결에 따라 이자까지 총 92억여원을 A사 측에 우선 지급했다. 이후 현대인베스트는 에너지세븐과 김 전 대표, 조씨 등을 상대로 선지급한 금액 상당을 요구하는 구상금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法 "회사 업무 관련…개인적 이익 취득한 정황은 없어"
이번 1심은 현대인베스트가 92억여원과 이에 대한 이자까지 돌려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현대인베스트 역시 투자 구조 전반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취지로 조씨에 대한 구상권 청구를 일부 제한했다.
재판부는 "조씨의 업무에 대한 불법성 등을 조사하는 등 조치가 없었고, 그에 대한 지휘, 감독을 게을리한 영향도 일정 부분 존재한다"며 "현대인베스트에 손해 발생에 대한 위험창출 또는 방지조치 결여의 책임이 없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시했다. 또한 "조씨는 당시 펀드 운용을 총괄하는 지위에서 투자자 상환을 위한 자금 확보를 위해 A사로부터 자금을 차입한 것"이라며 "외형상 회사 업무와 관련이 있고, 개인적으로 이익을 취득한 정황도 없는 점 등을 종합했다"고 했다.
에너지세븐 측이 "운용사인 현대인베스트의 펀드 관리 부실로 사태가 발생했다"며 제기한 반소 청구에 대해선 "대여금 계약은 만기 자금 상환을 위한 경영상 판단 범위에 속하고, 운용사 측에 불법행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에너지세븐과 경영진의 책임은 인정하면서도 운용사의 관리 부실 주장에는 선을 그은 것이다.
한편 이번 소송은 1심 판결에 대한 쌍방 불복으로 항소심에서 장기화될 전망이다. 항소심에서도 구상금 범위와 부담 비율이 핵심 쟁점으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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