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증가액 1.8조 크게 웃돌아
중기대출 평균 금리도 연 5% 아래로
기술신용대출도 바닥 찍고 증가세 전환
시중은행이 정부의 '생산적 금융' 기조에 적극 보조를 맞추면서 올해 하반기 중소기업 대출이 급증하고 있다. 최근 3개월 사이에만 총 7조원가량이 풀렸다. 위축된 수요에 소극적인 대출 행태까지 맞물리며 실적이 부진했던 상반기와 대조되는 모습이다. 금융권 수장까지 직접 나서서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에 호응하면서 중소기업 대출은 향후 더 늘어날 전망이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 671조877억원으로, 한 달 새 2조1255억원 증가했다.
중소기업 대출은 하반기 들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올 7월부터 증가세로 돌아선 후 3개월 연속 대출잔액이 늘었다. 7~9월까지 증가한 규모는 총 7조9억원으로, 상반기 증가액(1조8578억원)을 크게 웃돈다. 8월에는 3조2762억원이 늘어 올해 들어 월별 기준 증가 폭이 가장 컸다.
5대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이 빠르게 늘고 있는 것은 최근 금융권 최대 화두로 떠오른 '생산적 금융'과 무관하지 않다. 금융당국은 은행권의 사업 모델을 부동산담보 대출 중심에서 기업금융과 모험자본, 즉 '생산적 금융'으로 전환하도록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상반기에는 대출해달라는 기업 수요도 많지 않았고, 건전성 관리를 위해 은행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라며 "가계대출 규제 강화에 생산적 금융이 강조되면서 중소기업 대출을 대하는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 여파로 은행권의 중소기업 대출 금리도 빠르게 내려가고 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5대 은행이 중소기업에 내준 신용대출 평균 금리는 9월 말 기준 연 4.95%로 5% 아래로 떨어졌다. 전월(5.03%)보다 0.08%포인트 내렸고, 올 1월(5.8%)과 비교해도 0.85%포인트나 낮아졌다. 이는 금리 인하기에 접어들며 지표금리가 하락한 것도 있지만 은행 자체적으로 우대금리를 늘리고 가산금리를 낮춘 영향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생산적 금융 상품으로 인식되는 '기술신용대출' 공급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5대 은행의 기술신용대출 잔액은 올 8월 말 기준 156조6646억원으로 전월 대비 1조3053억원 늘었다. 같은 기간 전체 은행권의 기술신용대출 잔액은 2조1589억원 늘어 5대 은행 비중이 60%에 달했다. 기술신용대출은 기업의 매출이나 보유자산 등 담보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기술력과 사업화 가능성을 평가해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2014년 첫 도입 이후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의 대표적인 자금줄로 여겨왔으나, 2023년 평가 기준이 높아지고 은행권의 건전성 관리가 중요해지면서 점차 잔액이 감소 추세였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6월 309조원 규모였던 기술신용대출 잔액은 올해 1월 302조원까지 줄었다. 기술신용대출 건수도 지난해 7월 70만건이 붕괴된 이후 회복되지 못했다.
하지만 기술신용대출은 올 8월 월별 기준 최대폭으로 증가하며 반등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은행이 정부의 생산적 금융 기조에 맞춰 본격적으로 혁신산업 투자에 나서면서다.
신한금융그룹은 '초혁신경제 15대 선도 프로젝트'를 지원하기 위해 시중은행 중 가장 먼저 전담 애자일(Agile) 조직을 신설했고, 별도 전문인력 채용에도 나섰다. KB금융그룹은 지난달 30일부터 주요 계열사 경영진이 참여하는 '생산적 금융협의회'를 가동했고 부동산 중심의 대출 포트폴리오 재조정을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우리금융그룹은 임종룡 회장이 직접 나서 향후 5년간 73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고, 우리은행의 기업대출 비중을 60%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하나금융그룹도 정책 전환에 발맞춰 생산적 자금 공급과 벤처투자 확대, 국민성장펀드 참여 등을 3대 핵심 추진사항으로 꼽은 상태다. NH농협금융은 전날 금융지주 회장이 주관하는 전사 차원의 '생산적금융 활성화 태스크포스(TF)'를 신설했다.
이런 행보는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 강화로 주택담보대출 영업에 제동이 걸리자 기업금융을 강화하려는 의지가 커진 것과도 연관이 있다. 실제 은행이 적극적으로 기업대출 영업을 강화하면서 대기업대출 잔액도 9월 말 기준 170조원을 넘어섰다. 지난 8월 증가세로 전환한 이후 지난달에도 2조1415억원이 늘며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여러 여건이 중소기업 대출 확대를 유도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다만 모험자본 확대는 부실 대출이나 연체율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 건전성 관리를 잘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김혜민 기자 hm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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