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정유공장 공습에 휘발유 부족
국제유가 반등세…국제정세에도 영향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
■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 출연 : 이현우 기자
러시아가 세계 3위의 산유국임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휘발유 부족 사태를 겪으며 휘발유 배급을 시작했다.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습으로 정유공장과 송유관 시설이 큰 피해를 입으면서 휘발유 공급에 차질이 빚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러시아 정부가 연말까지 휘발유 및 경유 수출을 금지하면서 그동안 하락세를 보이면 국제유가도 반등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휘발유 공급 사태가 장기화 될 경우 우크라이나 전쟁은 물론 국제정세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러, 연말까지 휘발유 금수조치…배급제까지 실시
러시아 내 휘발유 부족 문제는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알려졌다. 현재 휘발유 가격이 매주 30%씩 급등하고 있으며, 전국의 주유소마다 미리 기름을 넣으려는 차량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우크라이나 군이 전방과 후방을 가리지 않고 러시아 전국의 정유공장과 송유관을 드론으로 집중 공격하면서 휘발유와 경유 공급량이 급격히 감소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특히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의 주요 타깃이 된 크림반도 지역은 전체 주유소의 절반 이상이 문을 닫은 것으로 전해졌다. 기름 자체가 없어진 상황에서 지역 정부는 1인당 휘발유 판매량을 제한하기 시작했고, 일부 지역에서 배급제까지 실시하면서 지역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러시아 정부가 공식적으로 밝힌 휘발유 부족 사태는 지난달 초부터 시작됐다. 거의 두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수급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점점 더 심화되면서 주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러시아 정부는 휘발유 수급 부족 문제를 9월 안에 해결하겠다며 국민들에게 조금만 참아달라고 발표했지만, 상황이 오히려 더 악화되자 국민들은 정부의 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 상황이 됐다.
러시아 정부는 처음에 한두 개 지역에서 수급 문제가 발생했다가 전국으로 확대되자 당황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례적으로 휘발유와 경유 수출 금지를 연말까지 이어가겠다고 밝히면서, 4개월 이상 수출이 금지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러시아는 석유 생산량이 미국, 사우디에 이어 세계 3위이며, 정유량도 중국, 미국 다음으로 세계 3위를 차지하고 있다. 휘발유와 경유 수출은 대러 제재 상황에서도 비교적 느슨했던 분야로, 여러 나라로 지속적으로 수출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정유공장들이 대거 공격을 받으면서 전쟁 재정 대부분을 지탱하던 정유 수출이 어려워진 상황이다. 연말까지 수출 금지령이 내려진 만큼 앞으로 전쟁 재원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군의 파상 공세가 주춤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러 정부, "휘발유 부족은 수급문제"…조만간 해결한다고만 답변
러시아 당국은 이번 휘발유 수급 사태의 주요 원인을 일시적인 공급 문제라고만 밝히고 있다.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 때문이 아니라 유통 과정에서 중간 상인들이 농간을 부리거나 일시적인 공급 문제가 누적됐다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러시아 국민들은 점차 이를 믿지 않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정유공장과 휘발유 공급 업체 대부분은 국영 기업이다. 유통 과정에서 중간 상인들이 농간을 부렸다는 설명은 결국 정부가 기름을 빼돌렸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오히려 정부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는 셈이 됐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 드론 때문이라고 발표하기 어려운 이유는 푸틴 대통령의 입장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알래스카에서 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후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났으며 러시아가 승리했다고 선언했다. 대내적으로는 전쟁이 곧 끝날 것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됐고, 러시아 정부는 점령지를 모두 차지했으며 러시아가 엄청난 이득을 볼 것이라고 광고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드론이 러시아 전국을 여전히 공격하고 있으며, 특히 정유공장과 송유관이 계속 파괴돼 휘발유 대란이 발생했다고 발표하기는 매우 어려운 처지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솔직한 발표를 하지 않고 대응책도 제대로 내놓지 않자, 러시아 국민들은 정부가 계속 속이려 한다며 불만을 키우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큰소리를 쳤지만 현실은 다르게 돌아가면서 이를 공개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다시 올라가는 국제유가…국제정세에도 영향 예상
러시아에서 발생한 휘발유 대란은 국제 유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산유와 정유 모두 3위 대국인 러시아의 휘발유 대란으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있다. 지난달 중순까지 60달러 초반까지 내려갔던 서부 텍사스산 원유 가격이 다시 65달러선으로 뛰어올랐고, 앞으로 70달러 선으로 상승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정유 면에서 1, 2위이지만 이들 국가의 정유공장에서 나오는 기름은 대부분 내부에서 소비된다. 반면 러시아는 자국에서 쓰는 것보다 수출을 더 많이 하고 있어, 러시아 정유 수출이 금지되면 다른 나라에도 큰 타격을 준다. 러시아의 휘발유 부족 상황이 장기화돼 정유 수출 금지 기간이 더 길어지면 석유 시장에 더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한동안 우크라이나 전쟁도 휴전 분위기가 조성되고 중동 지역에서도 평화적 합의가 기대되면서 국제유가가 하락세를 보였지만, 이번 사태를 맞이하며 부담이 커지고 다시 반등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러시아의 휘발유 사태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러시아를 종이 호랑이라고 표현하며 그동안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강경 발언을 내놨다. 이 발언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와 지지부진해진 휴전 협상을 더 강하게 이끌어내기 위해 압박성 발언을 했다는 해석과 함께, 전쟁이 더 장기화될 것을 염두에 두고 우크라이나 지원을 강화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발언 이후 미국 정부는 중거리 순항 미사일인 토마호크 미사일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할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토마호크 미사일은 사거리가 2000km가 넘어 러시아 전방과 후방 지역 전체를 타격할 수 있어 러시아에게는 큰 위협이 될 수 있는 무기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발언과 정책을 자주 바꾸는 만큼 이 기조가 얼마나 갈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 휴전은 거의 엎어진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유럽 전선에서 정체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동북아시아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10월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있어 이 영향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이 만날 예정인 이 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중요한 주제 중 하나로 언급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여전히 러시아의 경제적 배후 역할을 하고 있으며, 특히 러시아 석유 수입과 대러 제재로 막힌 전략 자원을 러시아에 계속 수출하는 주요 전쟁 지원 국가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기존보다 더 강력한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중국에 대해 양보하거나 압박하는 등 여러 회유책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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