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행정 전환 외치지만 제도 미비
기술발전 걸맞은 제도·철학 갖춰야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이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인공지능(AI) 민주 정부에 대해 고민하겠다고 밝힌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대한민국이 글로벌 전자정부의 선두 주자로서 축적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AI를 활용한 정부 혁신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그러나 미국, 중국 등 AI 산업 생태계를 주도하는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처진 한국의 현실을 고려할 때, AI 정부 구상은 여전히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점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정부가 어느 수준까지 AI를 통한 행정 혁신을 추진할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단순히 전자정부의 연장선상에서 AI 기술을 부가하는 수준이라면, 이는 혁신이라기보다 행정고도화에 불과하다. 국세청의 AI 기반 세무조사 대상자 선정 시스템이나 국민 비서 '구삐'와 같은 일부 사례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개별 사업을 과도하게 부각하며 마치 AI 정부가 본격적으로 구현된 것처럼 인식되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진정한 AI 정부는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업무의 자동화를 넘어, 행정 체계 전반의 패러다임을 AI 중심으로 재구성하는 과감한 전환을 요구한다. 이를 위해서는 중장기적 전략, 지속적 실행 노력, 그리고 창의적 상상력을 갖춘 유능한 공무원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무엇보다도 AI 정부로의 이행 과정에서 정부가 반드시 짚어야 할 몇 가지 시급한 핵심 과제가 있다.
첫째, 부처 간 데이터 사일로(silo·담을 쌓고 소통하지 않는 부서)화와 단절 문제다. 부처별로 서로 다른 기준과 포맷으로 데이터가 관리되고 있어 AI가 제대로 통합 분석할 수 있는 환경이 부족하다. 이는 실시간 의사결정과 정책 반응 속도를 저하시킨다.
둘째, 설명되지 않는 행정의 위험이다. AI가 내리는 결정에 대한 기준과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면, 시민들은 그 판단과 결과에 대해 의구심이 앞서고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오류 발생 시 시민이 검증할 수 있는 투명한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셋째, 디지털 격차로 인한 시민 소외다. 고령자나 저소득층은 디지털 기기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AI 정부가 이들을 배려하지 않으면 실질적으로 기술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AI 윤리와 법·제도의 미비 역시 심각한 문제다. AI가 행정에 개입할 경우, 그 판단의 법적 효력과 오류 발생 시 책임 문제를 어떻게 규명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법적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이는 향후 정부와 시민 간의 신뢰를 쌓는 데 중요한 기초가 된다.
AI 정부는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본질적으로 '정부가 데이터를 통해 시민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라는 철학적 질문과 맞닿아 있다. 한국의 AI 정부는 지금 실험대 위에 올라와 있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제도와 철학은 여전히 더딘 상황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정부라는 유산에 얽매여 외형만 화려한 AI 정부가 아니라, 국민이 만족하고 믿을 수 있는 제대로 된 국민 모두의 정부에 초점을 두고 추진하길 바란다.
오철호 숭실대 행정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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