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토론회서 '해제' 촉구…정부, 안보 고려 신중 검토
허가 지연으로 인한 연(年) 1000억원가량의 손실 등 유무형의 산업적 손실을 막기 위해 '보툴리눔 톡신'의 핵심기술 지정을 해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국회 토론회에서 제기됐다. 정부는 이런 촉구를 경청하고 있다면서도, 국가 안보를 고려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강승규 국민의힘 의원, 허종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29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K-바이오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가핵심기술 보호제도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각계 전문가들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최태원 기자
제약바이오업계와 관련 학계, 정부 등은 강승규 국민의힘 의원, 허종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29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K-바이오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가핵심기술 보호제도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국가핵심기술은 해외 유출 시 국가안보와 경제, 공중보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술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다. 핵심기술에 해당하는 기술을 외국 기업에 수출하려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위반 시 처벌될 수 있다. 보툴리눔 톡신 기술은 2010년 생산기술이, 2016년에는 균주가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됐다.
이날 발제를 맡은 이승현 건국대 의대 미생물학교실 교수는 "수출 승인 절차에만 평균 74일, 길게는 1년 이상이 걸려 연간 900억~1000억원에 달하는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된다"며 "국내 관련 기업 18개 중 대다수가 해제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제기했고 한국제약바이오협회도 해제를 요청했다"고 했다.
보툴리눔 톡신 기술이 더는 핵심 기술이 아니란 주장도 제기됐다. 보툴리눔 톡신 제제는 미간 주름 개선 등 미용 시술과 편두통 등 치료에 사용하는 바이오 의약품이다. 흔히 '보톡스'라 불린다. 이 교수는 "미국 국방부 보고서에서 '로우테크(쉬운 기술)'로 평가할 만큼 기술적 진입장벽이 낮다"며 "보툴리눔 균주는 자연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고, 이미 전세계 15개국 30개 이상 기업에서 상업화에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무기화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과잉 규제로 이어졌다는 비판도 나왔다. 보툴리눔 톡신은 이미 생화학무기법과 대외무역법, 감염병예방법 등 6개 부처 7개 이상의 법령으로 관리되고 있어, 국가핵심기술 지정은 중복 규제라는 것이다.
외국의 사례를 살피더라도 보툴리눔 톡신에 대한 규제는 완화되고 있단 주장도 제기됐다. 이상수 한국시민교육연합 상임대표는 "미국과 영국, 중국 등도 보툴리눔 균주와 관련해 엄격한 통제를 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각국은 안전 규제와 산업 활성화의 균형점을 한국과 다르게 잡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보툴리눔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해 산업 활동을 규제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지적했다. 미국이나 유럽연합(EU), 중국 등은 생물 안보 차원에서 균주를 관리할 뿐, 산업 발전을 막는 방식의 규제는 시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약바이오업계 역시 압도적으로 규제 해제를 바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시민교육연합이 지난 12~24일 보툴리눔 톡신을 생산하는 국내 18개 제약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한 17개 업체 중 14곳(82.4%)이 지정 해제에 찬성했다. 해제에 찬성하는 가장 큰 이유로는 '기회 상실 비용이 규제로 인한 이익보다 훨씬 크다'(32.6%)가 꼽혔다.
다만 정부는 신중하게 검토하겠단 입장을 보였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최광준 산업통상자원부 바이오융합산업과 과장은 "국가핵심기술 해제 여부는 국가안보·국민경제적 관점에서 의견을 수렴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전문가 의견을 균형적으로 듣고 산업기술보호법상 절차와 기준에 따라 보툴리눔 독소 제제 생산기술 지정 및 해제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앞서 제약바이오업계는 2023년에도 보툴리눔 톡신의 국가핵심기술 해제를 요구했지만, 생명공학 분야 산업기술보호전문위원회 검토에서 유지가 필요하다는 결정이 나온 바 있다. 제약바이오업계는 지난해 9월 해제를 재요구한 상황으로 산업부에서 의견 청취 등을 진행 중이다.
최태원 기자 peaceful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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