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노사·고용, 혼돈의 3중 위기
유럽 규제실패 답습말고 美 속도·집중 배워야
경제 불안과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2025년 7월 한미 양국은 미국의 특정 관세 조치에 대응하기 위한 합의를 발표했지만 세부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외신은 이러한 세부 미확정이 곧 협상 장기화의 신호라고 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협상단의 지속적인 자동차 관세 인하 요구에도 불구하고 한국산·미국산 수입품 관세를 15%로 낮추지 않겠다는 점을 확인했고, 실제로 자동차 관세는 25%가 유지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협상 조기 타결 전망은 흐려졌고, 고관세와 외환시장 긴장은 한국 기업들로 하여금 비상경영 체제를 상수로 받아들이게 만들고 있다.
동시에 한국 기업이 감내해야 할 대내 리스크도 만만치 않다. 상법 개정 논의는 경영권 불안을,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논쟁은 노사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그럼에도 최근 삼성과 SK를 비롯한 대기업이 대규모 신입 채용을 발표했다. 미래 투자의 신호라면 반가운 일이지만 고관세와 불확실성 대응만으로도 벅찬 시기에 대규모 신입 채용이 총고용의 질적 전환이 아닌 단순 규모 확대라면 위험하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인공지능(AI)과 자동화를 통해 대체 가능한 직무를 과감히 재설계해 비용을 낮추는 동시에, 신사업·신기술에는 '10명분, 100명분의 보상'을 지불하는 선택과 집중을 하고 있다. 한국이 정반대의 총량 확장으로 간다면 생산성과 인재의 격차는 초격차로 벌어질 것이다.
미국은 중국의 AI 패권 도전을 위기로 인식하고 '기술-자본-인재'를 한 번에 당기는 풀스택 산업정책을 구사한다. 연방정부 및 주 조달과 국방 수요로 초기 매출을 보장하고, 데이터센터 전력 등 필수 자원은 규제를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하며, 국가가 지정한 전략 품목에는 막대한 세액공제를 붙인다. 동맹국 공급망을 우대하고, 중국 의존 축소분에는 가시적 인센티브를 제공해 거대한 AI 디지털 내수시장의 확장과 선순환을 만든다.
반대로 유럽은 분절된 시장, 경직된 노동규정, 세부적 규제 설계로 금지와 의무가 앞서면서 스타트업에 높은 비용을 전가해 왔다. 좋은 의도의 규제가 혁신의 속도와 규모를 제약해 경제적 성과 부진으로 이어진 것이다. 우리는 이미 한계를 드러낸 유럽식 모델을 답습하지 말고, 대외 리스크를 대내 지원으로 상쇄하는 전략으로 기업을 지원해야 한다.

15일 경기도 평택항에 수출용 자동차가 세워져 있다. 16일부터 미국에서 일본산 자동차에 관세 15%가 적용되지만 한국산 자동차 관세는 25%가 유지된다. 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혼돈 속에서도 한국 정부가 할 일은 명확하다. 첫째, 관세 장기화 시나리오에 대비해 기업이 사업 구조를 재편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고, 지원 규모와 방식을 미리 설계해야 한다. "수출 안 하면 된다"는 말은 현실을 모르는 소리다. 한국은 수출로 성장해 온 경제이며, 대체 수요 창출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둘째, 고용의 질적 전환이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질 높은 인재 양성을 유도하고, 보여주기식 대규모 채용 대신 인센티브를 AI 중심으로, 생산성 향상과 신사업 전환 교육에 연동해야 한다.
총량 중심의 얕은수는 이제 그만둘 때다. 몇 명을 고용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일자리가 창출되었는지를 봐야 한다. 셋째, 노사 관계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쟁의권은 보장하되 노사 간 정합성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이미 사쪽으로 기운 추를 정부가 맞춰줘야 한다. 대외 압박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대내 리스크까지 키워 '더블 디스카운트'로 가지 않도록 해야 기업도 살고, 그래야 나아가 노동자도 산다.
핵심은 속도와 일관성이다. 관세 등 대외 충격이 뉴노멀로 굳어지는 동안, 내부 불확실성을 낮추고 자원을 생산성으로 수렴시키면서, 가능한 범위 내에서 더 빠르게 대외 협상에 대응해 나가야 한다. 정부의 결단을, 오늘도 기다린다.
경나경 싱가포르국립대 컴퓨터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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