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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의 '어쩔수가없다', 호불호가 지나칠 정도로 갈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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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된 상징과 설득력 부족한 서사가 만든 혼란
야심찬 시도 뒤에 숨은 구조적 한계들

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 컷

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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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될 만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블랙 코미디 영화는 관객의 호불호가 갈리기 쉽다. 웃음을 던지면서 불편함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사회의 모순과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정면으로 건드린다. 풍자와 해학을 즐긴다면 통렬한 카타르시스로 받아들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불필요한 잔혹성과 냉소로 치부한다. 금기나 비극적 사건을 웃음거리로 삼는다면 그 불편함은 증폭된다.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자, 그것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을 건드리는 장르인 셈이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도 예외가 아니다. 25년 근무한 제지회사에서 해고된 만수(이병헌)가 재취업을 위해 경쟁자들을 살해하는 이야기다. 실직에서 비롯한 처연한 감정을 유머로 풀어내고, 슬랩스틱으로 직관적 웃음을 유발한다. 살인을 시도하는 장면에서까지 엉뚱한 표정, 미끄러짐, 뜻밖의 사고 등을 보여준다. 범죄의 잔혹성이 완화되고 풍자성이 도드라져 여느 장르의 긴장감은 기대할 수 없다. 대신 캐릭터와 거리를 두고 부조리를 직시할 수 있다. 박 감독은 "노동자의 이야기라서 그런지 계속 '모던타임즈(1936)'가 생각났다. 배우들이 연기할 걸 생각하니 점점 더 웃기는 쪽으로 갔다"고 말했다. 이어 "우울한 기조로 묘사한다고 비극성이 더 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웃길수록 연민이 커지고 그 속에서 비극성이 드러난다"고 덧붙였다.


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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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과 무거움 사이의 애매한 지점

박 감독이 이병헌, 손예진, 이성민, 염혜란, 박희순, 차승원 등 유명 배우들을 섭외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사회 고발 영화나 리얼리즘 영화에 낯선 배우들이 출연하면, 배우가 곧 배역 자체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다큐멘터리 같은 사실감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부조리한 상황이 연출되는 블랙 코미디라면 달라진다. 감독의 의도(웃음)와 달리 분노나 동정심이 먼저 전달될 수 있다. 반면 친숙한 배우들이라면 극의 낯선 느낌을 배가해 웃음과 불편함을 동시에 자극할 수 있다. 이야기를 풍자로 받아들일 여지가 커지는 것이다.


주연 이병헌은 미묘한 톤으로 영화를 끌고 간다. 서민적이고 사실적인 얼굴로 관객을 설득하다, 과장된 제스처와 억양으로 허구성을 강조하는 연기를 반복한다. 실직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겨우 잡은 파피루스 면접에서 재미없는 농담을 던지거나, 찰리 채플린이나 로완 앳킨슨의 슬랩스틱을 보여주는 식이다. 이런 즉각적이고 표면적인 웃음은 도리어 블랙 코미디가 가진 사회적 비판 기능을 휘발시킬 수 있다. 예컨대 조용필의 '고추잠자리' 장면처럼 강렬한 웃음은 관객의 감정을 일시적으로 해소하지만, 노동자의 절망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방해한다. 웃음으로 긴장이 해소되면 그 이후의 사회적 메시지는 상대적으로 약하게 전달된다. 영화가 근본적으로 다루는 문제까지 희석할 위험성도 내포한다. 관객에게 지속적인 여운이나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기 어렵다.

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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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력 부족한 살인의 동기

이런 문제는 '어쩔 수가 없다'가 설정한 '사람은 넷, 자리는 하나'라는 기본 전제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현실에서는 일자리 창출, 직종 전환, 재교육 등 다양한 해결책이 존재하지만, 영화는 이를 배제하고 제로섬 게임을 강요한다. 만수의 살인 동기도 논리적 개연성이 부족하다. 특히 불행한 삶이 폭력적으로 변하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다. 힘든 가장이라는 설정만으로는 극단적 선택을 이해시키기 어렵다. 파피루스 입사를 위해 경쟁자인 범모(이성민)와 시조(차승원)를 제거한 이후의 행동이 대표적이다. 파피루스로부터 합격을 통보받지 못하자, 문제지에서 근무하는 선출(박희순)마저 살해 대상으로 삼는다. 선출이 자신이 만들어놓은 파피루스 자리에 지원할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막기 위한 예방적 살인이라는 극단적 논리는 블랙 코미디적 부조리를 넘어 단순한 서사적 억지로 치닫는다. 아무리 범모와 시조가 현재의 만수, 선출이 미래의 만수를 상징한다고 해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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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된 상징과 거리감

만수는 관객이 이입할 여지도 적은 편이다. 중산층으로 설정됐으나 넓은 저택에 살고 있고 딸에게 첼로를 가르친다. 아내가 치위생사 자격증을 갖고 있어 당장 길거리에 나앉을 처지도 아니다. 일반적인 노동자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박 감독은 "그렇게 본다면 제가 실패한 것"이라면서도 "세종시 인근 타운하우스 옆에 있는 50년 된 집이라면 그렇게 비싸지 않다"고 해명했다. 이어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취직해 열심히 살아온 만수가 이 정도 성취를 이뤘다면, 그걸 놓치기가 얼마나 싫겠냐는 안타까움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어쩔수가없다'는 상징과 은유도 넘쳐흐른다. 특히 '오발탄(1961)'에서 가져온 치통과 권총 모티브는 지나치다. 유현목 감독은 치통으로 치유되지 않는 현실과 찢어질 듯한 가난, 권총으로 폭력과 사회적 무력감을 가리켰다. 그 차용은 영화사적 레퍼런스로는 의미가 있지만, 파티까지 즐기는 영화 속 설정과는 괴리감이 있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은유로 제시하는 나무도 다르지 않다. 베트남전에 참전하고 돼지 농장을 운영하다 자살한 아버지와 핸드폰을 절도하는 아들에 이르는 3대 서사로 깊이를 더하려 하지만, 오히려 노동과 가족이라는 다층 구조를 복잡하게 만들어 핵심 메시지를 흐린다. 이를 제지업계와 만수의 수염까지 연결하는 것 또한 지나치게 작위적이다.


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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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는 장어·분재·뱀·고추·통나무(남성성)와 제지기계와 아내의 관계, 소등 시스템과 미래의 해고 예고 등 관객에게 특정한 해석을 유도하는 요소들도 많다. 장 피에르 주네의 '델리카트슨 사람들(1991)'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첼로 설정과 사운드 설계도 같은 맥락이다. 영화 마니아들에게는 흥미로울 수 있지만, 관객의 자율적 해석 여지를 제한하거나 혼란을 가중할 위험이 있다. 각 은유와 상징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파편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이런 요인들로 인해 '어쩔수가없다'는 현재 관객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지나칠 정도로 갈린다. 어쩌면 박찬욱이라는 이름에 대한 기대와 작품 자체의 모호함이 평가를 엇갈리게 만드는 핵심 요인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영화적 경험과 관람의 시각을 넓히는 차원에서는 충분히 관람할 가치가 있다. 몇몇 아쉬움과는 별개로, 박찬욱 감독 특유의 영상미와 독특한 서사 실험은 분명 한국 영화의 지평을 넓히는 의미 있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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