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목상 공정거래법 요건 의식한 지주사 전환
실제로는 지배구조 재편 출발점이라는 해석 많아
계열 분리하려면 지분 정리·겸직 해소 등 과제 산적
장남의 호반건설, IPO 재추진 가능성 '쑥'
호반그룹이 차남 김민성 전무가 이끄는 호반산업을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기로 하면서 그룹의 향후 진로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공정거래법상 요건 충족 차원의 조치다. 그러나 실제로는 장남 김대헌 사장의 호반건설과 차남의 호반산업을 축으로 한 계열분리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27일 호반그룹에 따르면 호반산업은 오는 10월 31일을 기점으로 존속법인 HB호반지주와 신설법인 호반산업으로 물적분할한다. 기존 호반산업을 HB호반지주로 바꾸고 지주사로 전환하는 것이다. 물적분할로 신설되는 호반산업은 기존 사명을 승계하고 HB호반지주의 자회사가 된다.
이는 공정거래법상 자회사 지분가치 합계가 50%를 넘으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규정을 의식한 선제적인 조치다. 대한전선 등 호반산업 자회사들의 지분가치는 지난해 기준으로 40%를 약간 웃돈다.
창업주 김상열 전 회장은 장남 김대헌 사장에게 호반건설, 차남 김민성 전무에게 호반산업, 장녀 김윤혜 사장에게 호반프라퍼티를 각각 맡기며 승계 구도를 마무리한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를 단순한 제도 정비에 그치지 않고, 그룹 전반의 지배구조 재편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지주사 전환 이후 그룹 전반의 지배구조 개편이 예상되며, 2021년 대한전선 에 이어 추가적인 기업 인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계열분리를 현실화하려면 호반건설·호반프라퍼티가 보유한 호반산업 지분(16%)과 김민성 전무가 보유한 호반프라퍼티 지분(20.6%)이 핵심 변수다. 공정거래법상 계열분리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상호 지분 매각·조정이 불가피하다. 또한 지분 구조 조정 외에도 임원 겸직 관계 해소, 자금 대차·보증 관계 단절 등 여러 과제가 남아 있다.
계열분리 시나리오가 거론되는 가운데 그룹 내 투트랙 전략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차남이 이끄는 HB호반지주는 대한전선을 앞세워 '탈(脫)건설' 행보를 강화할 전망이다. 지난해 HB호반지주 매출(약 4조1000억 원) 가운데 대한전선 비중은 42.8%로, 건설 부문(24.6%)을 크게 웃돌았다. 대한전선은 최근 회사채 수요예측 흥행에 힘입어 발행 규모를 기존 목표의 1550억원으로 증액하는 등 그룹 내 자금 조달 창구 역할도 맡고 있다.
반면 장남의 호반건설은 주택 본업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올해 들어 자양1-4구역, 신월동 가로주택정비 등 소규모 정비사업을 잇따라 수주하는 등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최근 서울에 정비사업 전담 사무소도 신설했다. 또한 한동안 미뤄졌던 '호반써밋' 분양도 다음달 재개하며 현금 창출력 회복에 나서고 있다. 호반건설은 주택·정비사업, 호반산업은 제조·인프라로 주력 사업영역이 달라지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는 셈이다.
호반그룹의 숙원 사업이었던 호반건설 기업공개(IPO) 가능성도 다시 거론되고 있다. 호반건설은 2018년 상장을 추진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중단됐다. 당시 계열사 합병을 통해 2019년 시공능력평가 10위권에 오르며 기업가치 3조~4조 원을 평가받은 바 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호반산업과의 지분 고리가 정리되면 IPO 재추진 동력이 확보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에 대해 호반그룹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아직 없다"고 했다.
오유교 기자 562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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