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 투자 펀드 방식 이견 속 트럼프 "선불" 발언
WSJ "러트닉, 韓에 투자 증액 요구…협상 불안정"
"10월1일부터 美에 공장건설 기업 외 의약품 100% 관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한국이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약 493조원) 규모의 펀드를 언급하며 "그것은 선불(up front)"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대미 투자 이행 방식을 둘러싸고 한미 간 이견으로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관세 인하의 전제 조건으로 돌연 '선불'을 거론하며 미국이 원하는 방식의 합의 타결을 압박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여기에 미국이 한국에 투자금 증액을 요구했다는 현지 보도까지 나오면서 양국의 무역 협상이 한층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중국계 동영상 플랫폼 틱톡의 미국 내 사업권 매각과 관련한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조 바이든 전 행정부 시절인) 지난 4년 동안 다른 국가들로부터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지만, 이제는 잘하고 있다. 이렇게 잘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을 포함해 여러 국가와의 무역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며 "관세 수입이 들어오고 있고 새로운 합의들이 체결되고 있다"며 "어떤 경우에는 9500억달러가 들어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과 일본을 언급하며 "알다시피 일본에서 5500억달러, 한국에서는 3500억달러가 들어온다"며 "이것은 선불"이라고 밝혔다. 그는 "관세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으며 전례 없는 규모"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9500억달러는 유럽연합(EU)의 사례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한일 양국과 무역 합의를 주도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은 해외 투자금을 활용해 미국 국가경제안보기금을 조성하고, 이를 자국 인프라 재건에 투입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최근 한미 무역 협상의 핵심 쟁점인 3500억 달러 투자 펀드를 둘러싼 양국 간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는 상황에서 나왔다. 특히 그의 '선불' 언급은 한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 대미 투자 이행과 관련해 미국이 원하는 방식의 합의 타결을 끌어내려는 포석이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앞서 지난 7월 말 양국은 미국이 한국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와 자동차 관세를 15%로 낮추는 대신, 한국이 3500억달러를 미국에 투자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투자 방식을 두고 미국은 직접 투자 확대를, 한국은 보증·대출 방식 투자를 선호하며 갈등을 빚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한국산 자동차에 여전히 25%의 초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일본, 유럽연합(EU)산 자동차에는 무역 합의에 따라 자동차 관세 15% 인하 조치를 발효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우리 정부는 대규모 현금 투자가 외환시장 충격을 초래할 수 있다며 미국 측에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을 요구하고 있다. 유엔(UN) 총회 고위급 회기를 계기로 미국 뉴욕을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도 전날 스콧 베선트 미 재무부 장관을 만나 통화 스와프 체결 필요성을 직접 설명했다. 하지만 미국은 아직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가운데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러트닉 장관이 한국의 대미 투자 금액을 기존에 합의한 3500억달러에서 소폭 증액하는 방안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양국의 의견 충돌을 전하며 "한국과의 무역 협상이 불안정한 상태(shaky ground)에 놓여 있다"고 전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서 "2025년 10월 1일부터 미국에 제약 공장을 건설 중(is building)인 기업을 제외하고, 모든 브랜드 또는 특허 의약품에 100% 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이어 "'건설 중'은 '착공 중(breaking ground)' 및 '공사 중(under construction)'으로 정의한다"며 "따라서 건설이 시작된 경우 해당 의약품에는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영국 국빈 방문길에 앞서 관세를 부과한 자동차와 반도체, 의약품을 비교하며 이익률 높은 품목에는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가구와 트럭 관세도 발표했다. 다음 달 1일부터 주방 캐비닛, 욕실 수납장 및 관련 제품에 50%, 소파 등 천이나 가죽으로 마감된 가구(Upholstered Furniture)에는 3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또 대형 트럭에도 25% 관세를 부과한다는 방침이다.
뉴욕=권해영 특파원 roguehy@asiae.co.kr
오수연 기자 sy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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