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약 감평법인 14개 상대로 2347건 미지급
실비조차 지급하지 않은 사례 290건
대출 결과와 관계없이 수수료 지급해야 하지만
협약 통해 대출 실행 시에만 지급
심지어 은행 실행여부 통보조차 없어 기다리기도
'무료'자문만 받고 정식감정 하지 않는 비율 70%
감정평가법인을 상대로 한 은행의 불공정 관행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KB국민은행은 4년 6개월간 협약을 맺은 법인에 대해 35억원의 수수료를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사전서비스 성격인 탁상감정(탁상자문)을 받고 정식 감정을 의뢰하지 않는 비율도 높게 확인됐다.
26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한국감정평가사협회로부터 제출받은 'KB국민은행 감정평가 미지급액 현황 및 탁상자문 현황'을 보면, 국민은행은 2021년부터 올해 6월까지 협약을 맺은 감평법인 14곳에 총 34억7675만9000원의 수수료를 지급하지 않았다. 건수로는 2347건에 이른다. 감정평가 수수료는 담보물 가치 1억원당 30만원으로 알려졌다. 미지급액을 환산하면 약 1조1589억원 규모의 담보물 평가에 해당하는 수수료가 지급되지 않은 셈이다.
이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미지급 수수료'다. 지난 4년 6개월 동안 2084건에서 수수료와 실비가 지급되지 않아 총 34억4750만1000원이 미지급됐다. 이어 '발송 후 실비' 미지급 사례가 172건(1781만 원), '발송 전 실비' 미지급 사례가 118건(1144만8000원)으로 집계됐다.
은행이 감평법인에 지급하지 않는 수수료 유형은 크게 세 가지다. 은행은 대출 과정에서 담보물 평가를 외부 감평법인에 의뢰한다. 이때 정식 감정평가 이전에도 현장조사가 진행되며, 바로 이 과정에서 미지급 문제가 발생한다. 현장조사 이후 대출이 취소돼 실비를 받아야 하는데 받지 못한 경우가 '발송 전 실비'다. 감정평가서를 은행에 발송했음에도 대출 실행 여부와 관계없이 수수료가 지급되지 않거나, 은행의 통보가 없어 지급이 보류된 경우는 '미지급 수수료'다. 이 항목에는 순수 수수료와 실비가 모두 포함된다. 감정평가서 발송 이후 은행이 대출 취소를 통보했지만 실비조차 받지 못한 경우는 '발송 후 실비'에 해당한다.
은행과 감평법인이 체결하는 계약은 '위임계약'이다. 감평법인이 평가서를 은행에 송부하면 위임사무가 완료된 것으로 간주되며, 은행은 이에 대한 수수료를 지급해야 한다. 이는 결과물이 완성돼야 대가를 지급하는 '도급계약'과는 다르다. 따라서 대출 결과와 상관없이 업무가 수행됐다면 은행이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 그러나 은행들은 협약을 통해 대출이 실행된 경우에만 수수료를 지급하고 있으며, 실행이 지연되면 지급도 늦춘다. 은행이 실행 여부를 통보하지 않으면 감평법인은 이를 알 수 없어, 수수료 지급이 장기간 보류되는 상황도 발생한다.
사실상 무료 자문을 받고 정식 감정을 의뢰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2021년부터 올해까지 국민은행이 의뢰한 탁상자문 건수는 연평균 12만4813건이었지만, 이 가운데 정식 감정으로 이어진 건수는 3만4077건에 그쳤다. 비율로 따지면 평균 26.8%에 불과하다.
탁상자문은 정식 감정평가에 앞서 은행이 감정평가사나 법인에 대략적인 평가액을 확인하는 절차다. 그러나 은행은 이를 통해 필요한 정보를 얻고도 정식 감정을 의뢰하지 않아 수수료를 지급하지 않는 관행을 이어가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2020년 감정평가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개선방안을 발표했지만, 은행이 감평사나 법인에 탁상자문 수수료를 지급하는 사례는 지금도 거의 없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협약 중인 감정평가법인에 대한 보수 지급을 누락하지 않기 위해, 개별건에 대한 상시 지급뿐만 아니라 반기별 본부 일괄 지급을 통해 평가법인으로부터 미지급건에 대한 청구를 받아 상호간 대조해 정산을 완료하고 있다"면서 "35억원 수수료 미지급은 전산 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단순 오류사항으로 한국감정평가사협회 측과 소통 중"이라고 밝혔다.
오규민 기자 moh01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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