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경 전 국가교육회의 의장 인터뷰
"지뢰밭처럼 얽혀버린 우리 교육
해결 위해 사회적 공감대 먼저"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는 지뢰밭처럼 얽혀 버린 교육 문제를 풀기 위해 이를 공론화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김진경 전 국가교육회의 의장은 최근 서울 관악구 한 사무실에서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처럼 말했다. 국가교육회의는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를 준비하기 위해 존속했던 대통령 직속 기구로, 국교위가 만들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해체했다. 김 전 의장은 2018년부터 임기 마지막까지 국가교육회의 의장을 맡으며 산파 역할을 했다.
국가교육회의가 당초 구상했던 국교위 역할은 10년 단위 등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주요 교육 정책 결정 과정에서 국민 의견 수렴을 거치는 등 미래 교육의 틀을 짜는 것이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 제도가 바뀌는 폐해를 막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2022년 9월 출범한 국교위는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 등을 논의하기는커녕 위원 구성부터 난항을 겪었고, 최근엔 위원장의 청탁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사실상 기능을 상실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교육 개혁의 주체로 국교위를 지목하면서 국교위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김 전 의장에게 차기 국교위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관해 물었다. 다음은 김 전 의장과 일문일답.
-출범 이후부터 국교위 활동을 어떻게 봤나.
△정치권이 양극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교육 쪽만 합의한다는 것은 환상이란 지적이 있었다. 굉장히 비현실적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이미 입증이 된 것 같다. 근본적인 지점에서 고민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한국 교육 제도나 정책이 미국 모델을 계속해서 받아들이는 식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왔는데, 더 이상 서구 모델을 적용할 수 없는 변화된 세상이 와버렸다. 애초부터 미국 모델은 우리와는 환경이 전혀 다른 시스템인데 자꾸 이를 적용하면서 제도가 꼬였고, 이제는 교육 문제를 풀기가 굉장히 어렵게 돼 버렸다.
-구체적으로 지적하자면.
△고교학점제는 미국 교육 시스템에서 차용했다. 그런데 미국은 교육 시스템이 카운티 학교에서 시작된다. 카운티 주민들이 이사회를 구성하고, 이사회가 전권을 갖고 교장을 초빙한다. 교장은 주민들로 구성된 이사회와 카운티 의회에 책임을 지면서 역할을 해나가는데, 이처럼 단위 학교에서 인사권을 갖고 있다는 점은 실질적인 교육 과정에 대한 권한도 학교가 갖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면 고교학점제가 가능해진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중앙에서 다 결정하는 구조다. 시골 학교의 임명장도 대통령이 주지 않나. 교원 양성도 국가가 결정하는데 갑자기 고교학점제를 하라는 것은 맞지 않는다.
-결국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가는 것 아닌가.
△기본적으로 학교 상 자체가 어그러지면서 풀 수 없는 갈등이 생겨 버렸다. 예를 들면 1970~1980년대 산업화 시대 학교는 국가가 독점하는 '지식 마트'였다. 당시엔 국가가 가장 많은 정보를 갖고 국가 직영 지식 마트를 운영해왔다. 그런데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지식 정보의 유통이 자유로워졌다. 물건도 다양하고 화려한 사교육 마트가 생겨났다. 국가 직영 지식 마트로는 학부모가 충족하지 못하면서 사교육이 팽창했다. 하지만 여전히 교육 관계자들은 과거의 상을 갖고 있다. 학부모들이 생각하는 학교의 상과 교육 관계자들이 가진 상이 완전히 달라져 버리면서 상황이 어려워졌다.
-국교위가 시급하게 해야 할 역할은.
△당장은 꼬여 있는 현안에 대해 큰 가닥에서 사회적 협의를 위해 공론화하는 역할부터 해야 한다. 벌써 공론화해야 할 내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불만이 많고 충돌이 많을 수밖에 없는 교육 문제가 지뢰밭처럼 형성돼 있다. 나중에 가면 곪아서 터진다. 이를 공론화하는 역할을 국교위가 해내야 한다. 정치권에서 풀리지 않는 갈등이 많은 정책들을 국교위가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교육의 공론화 기구가 정말 필요하다는 생각을 국민들이 가질 수 있도록 역할을 다해야 한다.
-국교위가 대학 문제도 풀 수 있을까.
△우리나라 대학의 출발은 독일형 대학 모델에서부터였다. 독일은 일찍부터 엘리트들만 대학을 가는 체제였다. 그러다가 1980년대부터는 미국의 대중 대학 체제가 들어오면서 두 개 상이 얽히게 됐다. 한국도 이제는 대학 교육이 대중화됐는데 대중 교육 입장에서 풀어야 할 대목에서는 학문적인 엘리트, 상아탑의 개념으로 논의를 하면서 엄청나게 꼬이게 됐다. 여러 집단 간 상이한 이해관계까지 이미 형성되면서 교육당국이 일방적으로 풀 수 없는 문제가 돼 버렸다. 이런 문제를 국교위가 논의해야 한다. 국교위가 방향만 잘 잡으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김진경 전 의장은...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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