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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타그램]백 년 전 여인의 사진과 떡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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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사진에는 과거 속 '지금'의 영롱함이 있다.
생생한 영상도 생명의 진중한 이야기를 넘기 어렵다.

아주 오래된 사진은 가끔 말하기 어렵고 조용한 격정을 불러일으킨다.

유명한 사람이거나 유명한 사진이 아닌, 그저 처음 보는 누군가의 오래전 모습도 마음을 흔들 때가 있다. 특히 시대를 아우르는 생명의 증거가 그렇다. 백 년 전 경성사진관에서 찍힌 스무 살 여인의 매화 같은 볼과 나비 같은 눈웃음도 그랬다. 모든 가능한 미래를 담고 있는 얼굴. 막 피려는 인간 꽃봉오리의 수줍고 막연한 두려움인지 기대인지 알 수 없는 하얗고 젊은 순간이었다. 영롱하다는 형용사를 넘어설 단어를 찾지 못했다. 세상에 없다는 아쉬움을 넘어 그저 반가움에 코끝이 시큰해질 정도였다. 시간의 간극과 대상의 부재(不在)는 차분하고 아련해서 마음이 오래 흔들렸다.


경성사진관 이홍경 촬영(1920), 한미사진미술관 소장

경성사진관 이홍경 촬영(1920), 한미사진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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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시간이 흐르면서 존재 증명과 동시에 부재 증명이 되어간다. 부재는 존재 이후의 사건으로, 과거 속 존재 사실을 더욱 견고히 해주는 역할을 한다. 낡고 오래된 사진이라도 그 실존의 증거에 대한 믿음도 부재의 회한도 크다. 사진은 현재를 기록하고 모든 순간을 과거로 편입시키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사진 속 과거는 사라진 시간 속에서 거스를 수 없는 존재와 사실 들의 집합이라는 표지석 역할도 한다.

이런 사진으로 요즘은 누구든 생생한 천연색 고화질 동영상을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 스무 살 여인이 학교 앞 분식집에서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으며 수다 떠는 장면 정도는 손쉽게 만들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생생하다 부르고 감동이라 불러도 흑백 사진 한 장의 감정선(線)을 넘어서기는 어렵다. 화려한 영상 기술은 그것대로 할 일이 있을 것이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주기도 하겠지만, 생명의 사실이 품은 진중한 이야기를 넘어설 수는 없다.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다. 기술이 인간의 감정과 생명의 가치를 좀먹는다는 등의 말로 한탄할 필요도 없다. 가치와 기술은 때로 만나기도 하고 침범할 수 없는 영역에서 별개의 서사로 존재하기도 한다. 기술적 이미지와 영상은 그 '불쾌한 골짜기'(로봇이나 인간의 형상을 모방한 기술적 이미지가 인간을 어색하게 닮아가는 과정의 불쾌한 감정 구간)를 넘어서고 있다. 기술은 부재의 깊이와 인간이 체감하는 시간의 가치를 메워버린다. 우리가 사진이라 부르는 '사진의 일부'는 이제 찍는 이와 찍히는 이가 몸을 움직여 그 자리에 함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나 내세울 정도다.


사진의 사실성은 우리가 믿고 싶은 신화의 힘을 빌어서 말해야 할지 몰라도 그것으로 충분하다. 논쟁은 늦었고, 그런 논쟁은 대개 일선에서 한 걸음 비켜선 사람들의 것이어서 언어들은 대부분 공허하다고 소설가 장강명이 '먼저 온 미래'에 썼다. 어디까지를 사진으로 불러야 할지 몇 마디 말로 규정하기 어렵게 됐지만, 사진의 역할과 정신은 바뀌지 않았다. 인간과 시간이라는 엄밀한 사실을 말하고 세상의 진실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아직은 그렇다.




허영한 사진팀장 youngh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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