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상비약 시민네트워크 제도 개선 조사
응답자 85.4% "품목 확대 필요"
약사회 등 오남용·부작용 우려 논의 거부
"안전성 확대 전제" 소비자 응답↑
"약사단체, 품목 확대 논의 참여해야"
다음 달 초 추석을 포함해 최장 10일간 이어지는 연휴를 앞두고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안전상비약 품목을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가 재점화했다. 약국이 문을 닫는 공휴일이나 심야시간에 응급약이 필요한 소비자들이 가까운 편의점에서 구매할 수 있는 선택지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 건강과 밀접한 의약품을 전문가의 안내 없이 오남용할 우려가 있다는 약사 단체 등의 반대에 부딪혀 10년 넘게 진척되지 못하던 관련 논의가 재개될지 주목된다.
24일 안전상비약 시민네트워크가 전국에 거주하는 만14세~79세 국민 108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편의점 안전상비약 제도 개선을 위한 소비자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편의점 안전상비약의 품목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응답한 비중은 85.4%로 나타났다. 기존 판매하던 품목에서 생산 중단으로 제외된 2가지 상비약을 다른 제품으로 교체해야 한다고 응답한 이들까지 포함하면 동의율은 94.7%에 달했다.
안전상비약 시민네트워크는 안전상비의약품의 접근성 강화를 위해 2023년 출범한 단체다. 이번 조사는 지난달 18일부터 25일까지 진행됐다. 2년 전 같은 조사에서는 품목 확대가 필요하다고 응답한 비중이 62.1%였는데 2년 만에 동의한다는 의견이 20%포인트 이상 상승했다. 편의점 안전상비약 품목의 확대 필요성에 대한 조사는 2016년부터 2년 단위로 수행했는데, 90% 이상 지지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행 약사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국내 편의점에서는 최대 20개 품목 이내에서 지정된 상비약을 판매할 수 있다. 심야·공휴일에 국민의 의약품 구매 불편을 해소하자는 취지로 2012년 약사법을 개정하면서다. 이를 기준으로 감기·해열·진통제와 소화제, 소염제 등 13개 품목을 편의점에서 판매했다. 당초 3년 주기로 지정 품목을 재검토할 방침이었으나 지난 13년간 한 번도 품목 확대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마저도 기존 판매 제품 중 타이레놀 80㎎·160㎎의 생산이 중단되면서 현재 4813종에 달하는 국내 일반의약품 중 11개만 편의점에서 취급하고 있다. 반면 일본과 영국 등 해외에서는 약국 외 일반의약품 판매 품목이 최소 120종에서 많게는 30만종에 달한다.
편의점 업계는 약사법이 정한 20개 품목을 모두 채우지는 않더라도 제산제나 지사제, 화상연고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덜하고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일부 품목만이라도 추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약국이 문을 닫는 심야나 휴일에 긴급하게 상비약이 필요한 소비자들이 전국에서 5만여개 매장을 운영하는 인근 편의점을 찾아 이를 쉽게 구매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치권과 주무 부처에도 이를 명분으로 관련 요구를 꾸준히 전달해 왔다.
실제 이번 조사에서 편의점 안전상비약을 구매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중은 83.8%로, 2년 전 조사 당시 71.5%에서 12%포인트 이상 증가했다. 품목 확대가 필요하다고 응답한 이들의 소아용 전용약(22.3%)과 증상별 진통제(21.0%), 증상별 감기약(20.5%) 등을 우선해서 추가해야 한다는 의견을 많이 냈다.
반면 대한약사회 등 약사 단체는 오남용에 따른 국민건강 저해를 우려해 품목 확대를 반대하고 있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가 2019년 '경쟁제한적 규제 개선 과제'로 품목 조정 방안을 채택하고, 2023년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정했으나 현재까지 위원회조차 꾸리지 못했다.
김연화 안전상비약 시민네트워크 위원장은 "그동안 보건복지부와 국회에 안전상비약 품목 지정심의위원회 개최를 위한 민원을 수차례 제기하고, 대한약사회에 직접 대화도 시도했지만 어떠한 진전도 이룰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약사회가 '안전성 우려'를 이유로 품목 확대에 반대하고 있지만,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안전상비약은 국내 일반의약품 중 안전성 모니터링을 거쳐 엄격히 선별된 품목에서 선정된다"고 강조했다. 조사 응답자의 64.3%는 '부작용이 적고 안전성이 높은 품목', 51.7%는 '오남용 위험이 낮은 품목'을 확대를 위한 전제 조건으로 꼽았다.
이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공휴일과 심야 시간에 필요한 응급약을 구할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엄마들의 사례가 여전히 빈번하게 일어난다"면서 "약사회는 국민의 불편 해소를 위해 편의점 상비약 확대에 동의하고, 전문가로서 적극적으로 논의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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