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서 마지막 남은 바닷길이 열리고 있다. 23일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컨테이너선 '이스탄불 브리지'호가 중국 저장성 닝보·저우산항에서 화물 적재 작업을 마무리하고 북극항로를 이용해 영국 펠릭스토우, 네덜란드 로테르담 등 유럽 주요 항구로의 출항 준비를 마쳤다고 보도했다.
중국 하이제해운이 운영하는 'China's Arctic Express(중국 북극 특급)' 노선으로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북극항로가 상업적으로 개통되는 최초의 정기 노선이란 평가가 나온다. 닝보에서 펠릭스토우까지 운송 시간은 18일에 불과해 수에즈 운하를 통한 40일보다 12일이나 단축된다.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 구상의 북방 확장을 상징하는 '빙상 실크로드' 구축에 속도를 내는 중국의 행보가 거침없다.
희토류·원유 등 자원 확보와 북극항로 개척을 위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를 미국 영토에 편입하겠다고 공언한 것도 빈말이 아니었다. 덴마크 공영방송 DR은 지난달 27일 트럼프 대통령과 관련 있는 미국인 3명이 그린란드에 잠입해 분리 독립 여론을 부추기는 비밀작전 '영향력 공작(influence operation)'을 수행했다고 보도했다.
지구온난화로 북극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북극항로가 미·중 패권전의 새로운 무대가 되고 있다. 북극 연안 8개국으로 구성된 북극이사회 보고서는 2040년 여름철 북극해는 얼음이 거의 없는 상태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기후 위기는 전 세계 곳곳에 피해를 주고 있지만, 북극의 빙하를 녹여 역설적으로 새로운 바닷길을 열어 주고 있다.
북극항로가 열리면 대한민국에 기회의 문이 열릴 수 있다. 북극항로는 오래전부터 운항 거리 단축과 운송비 절감 효과를 가져올 '해상 물류 게임체인저'로 주목받아 왔다. 부산을 비롯한 동남권 해안은 북극으로 가는 최단 거리 길목이다. 부산에서 로테르담까지 1만5000㎞로 수에즈 운하를 거치는 2만2000㎞보다 거리가 7000㎞가량 짧다. 항해 기간도 10일 이상 줄어든다. 동북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가장 경제적인 바닷길이다.
'국가 미래 전략가'로 불리는 김태유 서울대 명예교수는 북극항로가 단순한 물류 혁신을 넘어 대한민국이 세계 패권 질서의 중심으로 나아갈 절호의 기회라고 주장한다. 김 교수는 북극항로 거점항구 확보는 우리 민족 역사에서 천 년에 한 번 오기 힘든 마지막 기회라고 역설한다. 그는 지난 5월 발간한 '대한민국 마지막 기회가 온다'에서 "북극항로 거점으로 글로벌 항만 인프라를 갖춘 부산항에 선택과 집중을 하면 관련 기업과 산업단지가 집적화된다"며 "한반도 남단에 믈라카 해협의 싱가포르 같은 물류 허브와 금융도시가 탄생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재명 정부도 대응 태세를 갖추고 있다. 북극항로 개척을 주요 국정과제로 선정하고 해양수산부를 연내 부산으로 이전, 내년부터 '코리안루트' 개척을 위한 시범 운항에 나서기로 했다.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이 큰 북극항로에 대한 지정학적 불안 등 넘어야 할 과제도 많다. 하지만 미국과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는 물론 러시아까지 쇄빙선과 친환경 선박 건조 등 세계적 조선 기술을 가진 한국과의 협력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길이 열리면 시대가 바뀐다. 지금 대한해협 길목에 인류 문명사를 바꿨던 실크로드, 향신료 루트, 대서양 항로에 견줄 만한 새로운 북극항로가 열리고 있다. 15세기 유럽인들은 두려움을 깨고 바다로 나가 대항해 시대를 열었다. 21세기 북극항로 시대, 대한민국에 기회가 오고 있다.
조영철 콘텐츠 편집1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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