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메프·발란 이어 브랜디까지 기업회생 절차
온라인 성장 둔화…해외 직구 증가도 위협 요인
패션 플랫폼 구조조정, 당분간 이어질 듯
한 때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스타트업)'을 꿈꿨던 패션 플랫폼들이 잇따라 백기를 들고 있다. 내수경기 둔화와 투자 위축, 해외직구 확산 등 복합 위기가 덮친 데다, 파죽지세였던 온라인 시장 성장률도 꺾이면서다. 이미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소규모 플랫폼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시작됐는데, 패션 플랫폼 시장에서 줄도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패션 플랫폼 '브랜디'와 '하이버'를 운영하는 뉴넥스는 이달 들어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뉴넥스는 판매자 공지를 통해 "이번 결정은 회사를 정리하거나 멈추려는 것이 아니라 법원의 관리와 감독 아래 재무 구조를 바로잡고 경영을 정상화하기 위한 조치"라며 "그간 비용 절감, 구조조정, 투자 유치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과거에 발생한 채권을 현재의 고정비 구조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뉴넥스, 작년 말 완전자본잠식…"존속능력 유의적 의문"
실제 뉴넥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이 회사의 자본총계(순자산)는 306억원 마이너스를 기록해 완전 자본잠식에 빠졌다. 자본잠식은 회사를 청산해도 원래 투자된 자본금보다 적은 돈이 남아 투자자들의 돈을 회수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적자가 지속돼 자본총계가 마이너스가 되면 완전 자본잠식이라고 한다.
뉴넥스의 매출액은 2020년 858억원에서 지난해 196억원으로 4.4배가량 크게 줄었고, 5년 넘게 영업손실을 내고 있다. 이로 인해 결손금은 2020년 324억원에서 지난해 2431억원으로 7배 넘게 불었다.
2014년 설립된 브랜디는 한때 에이블리, 지그재그와 함께 여성 패션 플랫폼 3대장으로 불렸다. 2022년에는 대규모 투자를 유치해 기업가치가 1조원이 넘는 '넥스트 유니콘'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실적 악화와 투자 실패로 자금난을 겪으면서 차입금에 의존한 경영을 이어왔다. 지난해 말 기준 뉴넥스의 부채는 418억원에 달하는데, 1년 안에 갚아야 할 유동부채(322억)가 대부분이다. 이 중 KDB산업은행과 IBK기업은행으로부터 빌린 210억원은 올해 안에 상환해야 하는 단기차입금이다.
삼덕회계법인은 감사보고서를 통해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능력에 유의적 의문을 제기할 만한 중요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며 "유동성 위험을 해소하기 위해 인원 감축을 통한 고정비 지출 축소, 자금 유동성 위험 자구 계획 수립에 나서고 있지만, 이러한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경우 정상적인 사업 활동을 통해 당사의 자산과 부채를 회수하거나 상환하지 못할 수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뉴넥스 측은 자구책을 통해 뚜렷한 개선 흐름이 보이지 않자, 결국 법원의 도움을 받는 선택을 하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같은 위기는 뉴넥스뿐만이 아니다. 앞서 패션 플랫폼 '발란'은 지난 3월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이 회사는 2023년 말 기준 자본총계가 77억원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자본잠식에 빠진 바 있다.
패션 플랫폼 이용자 수(MAU) 1~2위인 에이블리도 자본잠식이다. 지난해 매출액이 3342억원으로 전년 대비 28% 늘었지만, 영업손실 154억원을 기록하면서 1년 만에 다시 적자 전환했다. 이 기간 당기순손실은 179억원, 누적 결손금은 2023년 2042억원에서 2221억원으로 불어났다. 다만 에이블리 관계자는 "지난해 대규모 투자를 받아 이미 3조 기업가치의 유니콘 기업이 되었으며 이후 꾸준히 성장세를 이어가며 외형 성장과 내실 다지기에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성장세 둔화·해외 직구 증가…"구조조정 당분간 이어질 듯"
패션 플랫폼은 코로나19 대유행을 기점으로 온라인 쇼핑이 확산하며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온라인 시장 성장세가 꺾인 데다 경기 부진 여파로 소비자들이 패션 아이템부터 씀씀이를 줄이면서 패션 플랫폼 기업들의 경영난이 가중된 모습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온라인쇼핑 거래액의 전년 대비 증가폭은 2022년 10.3%, 2023년 8.3%, 지난해 5.8% 등 둔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패션 시장은 더욱 빠르게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온라인 부문에서의 패션·잡화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7% 감소했다. 화장품 매출이 8.6% 늘어난 것과 대조적이다.
갈수록 늘어나는 해외 직구도 국내 패션 플랫폼을 위협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온라인쇼핑을 통한 해외 구매액은 15억5000만달러로 전 분기 대비 15.2% 증가했다. 특히 중국에 대한 직구 규모는 전 분기 대비 24.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초저가 전략으로 전 세계를 사로잡은 중국 패션 플랫폼 '쉬인'이 우리나라에서도 빠르게 이용자가 늘어난 결과다.
아이지에이웍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쉬인의 MAU는 2023년 1월 11만명 수준에서 지난달 206만명으로 2년 새 19배 급증했다. 무신사와 에이블리는 500만명 초반, 지그재그 300만명가량을 오가는 것과 대조적이다. 브랜디의 경우 이 기간 MAU가 94만명에서 28만명으로 급감했다. 브랜디의 월간 신용·체크카드 추정 결제금액은 2023년 1월 107억4494만원에서 지난달 6억8861만원으로 2년 새 18배가량 줄었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플랫폼들이 모두 살아남는 시대를 지나 이제는 한계 기업들이 등장하는 시점"이라며 "개별 플랫폼 기업들의 경영상의 문제도 있지만, 시장 규모와 구조 자체가 점점 생존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패션 플랫폼 시장의 구조조정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난해 티메프 사태 이후 경기가 침체되고 투자도 위축되면서 적자가 나는 플랫폼 기업들이 살아남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며 "적자가 됐을 때 버티기 위해서는 차별성으로 투자자들을 설득해야 하는데 뚜렷한 경쟁력이 없는 기업들은 부도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박재현 기자 no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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