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속도 앞세운 정부, LH 직접 시행 확대
공공성 강화 노력…품질 책임 더 무겁게
하자 구상권 미회수분 '국민 세금'으로
"물량보다 품질, 국민 체감해야 진짜 성과"
정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직접 시행 확대를 통해 공공주택 공급에 나서면서 주택 품질 문제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LH 아파트 품질이 떨어진다는 국민적 인식이 있다"며 "민간 건설사와 과감한 협력을 통해 양질의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민간 브랜드를 단다고 해서 주택 품질을 확보한다는 것은 오산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오히려 해외처럼 발주처인 LH가 주택 품질을 끌어 올릴 수 있게, 법적 책임을 지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LH 민간참여 공공주택 품질, 기준 미달 시 제재 권한은

경기 성남시 위례신도시 민간참여 공공주택사업단지 '위례 자이더시티'.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19일 이곳을 방문해 "민간 건설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민간참여사업은 LH의 책임 아래 신속하게 추진되어 건설경기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GS건설
LH가 지난 5월 공고한 '2025년 제5차 민간참여 공공주택건설사업 민간사업자 공모 지침서'에 따르면, 시공사는 건설기술진흥법 등에 따라 공사 전반에 걸쳐 LH 소속 또는 LH가 조달청을 통해 선정한 감리(건설사업관리기술인)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LH는 필요시 직접 시공 평가와 실태 점검을 실시하고, 기준 미달 시 '품질미흡통지서' 발부하는 등 제재 권한까지 갖고 있다. 실무적으로는 LH가 용역사업자를 통해 감리 업무를 맡기더라도, 해당 기술인은 LH의 이름과 권한으로 관리감독을 수행하는 위치에 놓이게 된다. 용역이라는 형식을 취하더라도 본질적으로는 LH의 역할을 대리하는 사람인 것이다.
감리가 배치된 LH 현장에는 LH 소속 공사관리관도 배치된다. 이는 발주자를 대표해 감리의 업무 수행을 확인하고 조정하는 임무를 맡는다. 공사관리관은 해당 감리 용역의 내용을 충분히 파악한 뒤 과업에 대한 감독 업무를 성실히 수행할 책임이 있다.
민참 사업에 참여 중인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민참사업에서 품질 관리 총괄은 LH에서 맡는다"며 "우리가 자체 가이드라인에 따라 품질을 관리하더라도, 최종적으로는 LH에서 투입한 감리의 지시를 따른다"고 말했다. 이어 "민참사업은 LH가 현장을 직접 통제한다는 점에서 일반 민간사업과 성격이 다르다"고 했다. 국토부 관계자도 "민참사업은 시공사와 LH가 품질을 이중으로 점검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래미안 건다고 같은 래미안?…1대 10대 100 법칙
그러나 발주처에 법적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 행정적·도덕적 책임에 그친다. 건설기술진흥법상 품질·시공의 직접적 책임은 시공사, 감리에게 있다. 발주자는 감리를 배치하고 관리·감독할 의무가 있지만 현장 안전·품질 하자가 발생했을 때 형사책임이나 법적 배상 책임이 직접 귀속되진 않는다.
정택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부동산국책사업팀장은 "우리나라 건설 산업의 책임 체계가 근본적으로 잘못돼 있다"며 "최종 의사결정자인 발주처가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함에도, 현재 제도는 그 책임을 하위 주체에 떠넘길 수 있게 구멍을 만들어 놓은 상태"라고 했다. 건설 선진국인 영국의 CDM(Construction Design and Management Regulations)은 발주자를 안전과 품질 확보의 최종 책임자로 명확히 규정한다. 설계와 시공 방향을 최종 결정하는 주체가 발주자이기에 사고 발생 시 책임 또한 발주자가 져야 한다는 원칙이다.
LH의 감독 부실은 곧 재정 부담으로 이어진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엄태영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LH는 지난 5년간(2020~2024년) 아파트 하자 소송 패소로 총 2629억원을 배상했다. 이 가운데 1036억원에 대해 시공사·설계사·감리사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행사했으나 실제로 돌려받은 금액은 587억원에 그쳤다. 결국 나머지 금액을 국민 세금으로 메운 것이다. 건설업계에서는 이를 '1대10대100 법칙'으로 설명한다. 시공 단계에서 잡으면 비용은 1에 불과하지만, 이를 놓치고 준공 직전에 손보면 10배, 입주자가 거주한 뒤 문제가 드러나면 그 비용은 100배 이상으로 늘어난다는 뜻이다.
김 장관의 말처럼 민간 브랜드 간판을 단다고 해서 주택 품질이 좋아진다고 볼 수도 없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올 2월까지 6개월간 공동주택 하자 상위 20개 건설사 명단에 현대건설 ·대우건설 등 10대 대형사가 포함됐다. 1위는 시공능력평가 11위 한화 건설부문이었다. 지난 5년간 누적하자 건수 1위는 GS건설 (1458건)로 나타났고, 대우건설 ·현대엔지니어링·롯데건설 등도 상위권에 올랐다. 정 팀장은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나 학동 철거건물 참사에서 보듯 대형사라고 해서 안전과 품질이 더 뛰어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민참 확대는 본질적으로 품질 확보보다 경기 침체기에 건설사들에 이윤을 보전해주기 위한 장치에 가깝다"고 강조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권영진 국민의힘 의원은 "정부의 9·7 대책으로 LH가 맡는 물량은 더 늘어날 전망"이라며 "LH 물량이 늘수록 하자도 함께 증가하는 만큼 이는 향후 더 큰 문제를 예고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최근 5년간 LH 공공주택 입주 물량이 늘면서 '가구당' 일반 하자 발생 평균 건수는 2021년 5.75건에서 올해 8월 9.78건으로 급증했다. 권 의원은 이어 "국민이 체감하는 주거 품질 향상이 양적 공급 못지않게 중요하다"며 "LH는 이제 숫자 경쟁보다 품질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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