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연구원 정책 세미나 기조 연설
"특정 에너지 퇴출은 기후 변화 해법 아냐"
"NDC 기준에서 '역사적 배출'이 가장 중요"
"국가별 탄소 예산 정할 수 없어"
"특정 에너지원을 퇴출하자는 것은 기후 변화의 해법이 될 수 없습니다."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의장을 지냈던 이회성 CF연합 회장은 에너지경제연구원이 22일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개최한 '개원 39주년 연례 정책 세미나' 기조연설을 통해 "기후 관점에서 에너지를 바라보는 것과 에너지 관점에서 기후를 바라보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 회장은 환경 운동가들이 지속해서 화석연료 퇴출을 주장하지만 화석연료 비중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그동안 끈질긴 화석 에너지 퇴출 압력에도 불구하고 화석 에너지 소비는 계속 증가해 현재 전 세계 에너지 공급의 78%를 점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지난 13년간 전력 소비 증가분의 43%를 풍력과 태양광이 차지했지만 비슷한 수준인 44%를 석탄과 천연가스가 점했다"며 "그 기간 중국이 전 세계 재생에너지 생태계의 90%를 장악하게 됐다"고 말했다.
화석 연료 사용이 줄지 않는 것은 석유화학, 철강, 시멘트 등의 수요가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수요를 놔두고 공급원만 퇴출하자는 주장은 잘못됐다는 것이 이 회장의 주장이다. 그는 "기후 변화 문제를 퇴출의 시각에서 본다면 중화학 공업뿐 아니라 산업, 수송, 빌딩, 군사 무기 등이 모두 사라져야 하고 메탄을 배출하는 소도 퇴출 대상"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2015년 파리기후협정 이후 퇴출이냐 아니냐를 놓고 불필요하게 논쟁하면서 시간을 빼앗겼다며 앞으로는 에너지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면서 재생에너지를 추가하는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에너지 시스템의 고유 기능인 경제 성장과 에너지 안보에 온실가스 배출을 '제로(O)'로 하는 새로운 기능을 추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논의하고 있는 2035년 국가 온실가스감축목표(NDC)에 대해서도 이 회장은 '역사적 배출'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봤다. 지난 7월 국제사법재판소(ICJ)가 "각국은 가능한 한 가장 높은 수준의 NDC를 세워야 한다"고 권고한 이후 환경 단체들은 정부에 2035년 NDC 목표 상향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회장은 국제사법재판소는 NDC의 평가 요소로 역사적 배출, 경제 발전 수준, 국가적 상황 등 3가지를 제시했다고 소개하며 "한국은 2019년까지 온실가스 총 누적 배출량의 0.7%인데 비해 유럽은 우리보다 21배인 15%를 차지했다"고 설명했다. 즉, 한국이 온실가스 1t을 감축할 때 유럽은 21t을 감축해야 상대적으로 공평하다는 얘기다.
이 회장은 "최근 유럽은 방위비 늘리는 대신 기후 예산을 줄이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유럽의 그 어떤 나라도 우리나라에 기후 위기에 강하게 나서달라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제사법재판소에서 NDC의 평가 기준으로 제시한 경제발전 수준은 한국과 제조업 비중이 높은 국가와 비교해야 하며, 국가적 상황은 각국의 고유 판단에 따른 문제라고 이 회장은 덧붙였다.
최근 국회에서 입법화하려는 탄소 예산에 대해서도 이 회장은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 회장은 "탄소 예산은 지구 온난화 저지를 위해 지구 전체가 감당할 수 있는 총량을 말하는 것으로 그 어느 누구도 국가별 탄소 예산을 말하는 경우가 없다"고 지적했다. 만약 국가별로 탄소 예산을 정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 모든 국가가 모여서 협상을 해야 하는데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이 회장은 "그동안 당사국 총회에서도 탄소 예산이라는 말이 나온 적이 없다"며 "이것을 논의한다는 자체가 국가의 경제 주권과 에너지 주권에 개입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만약 한국이 지구를 위하는 마음으로 탄소 예산을 추진할 경우에는 유럽에 대해서도 우리보다 21배 많이 탄소를 줄이라고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도 했다.
이 회장은 인공지능(AI)이 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 회장은 "AI 확산은 탄소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게 할 것"이라며 "소비자들이 탄소 절약형 제품을 쓸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초대 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장을 역임한 이회성 CF연합 회장은 2015년 한국인 최초로 IPCC 의장에 당선돼 2022년까지 활동했다. 그의 재임 시기에 IPCC 6차 종합보고서가 나왔다.
한편, 이날 행사는 '디지털 혁명과 에너지 전환, 신산업의 미래와 지속가능한 탄소중립 이행'을 주제로 진행됐다. 김현제 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장의 개회사와 이회성 CF연합 회장의 기조 연설에 이어 ▲AI 시대 디지털 혁명과 에너지의 미래 ▲디지털 전환시대, 탄소중립 이행을 위한 청정에너지 생태계 조성 전략의 2가지 트랙으로 진행됐다.
강희종 에너지 스페셜리스트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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