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업계 미래차 전환 거북이 걸음
미래차 전용 부품 사업체 3.5% 불과
"정부, 중장기적 지원 늘려가야"
국내 자동차 부품업계를 둘러싼 위기감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내연차에서 친환경차로의 전환이라는 거대한 흐름이 업계 곳곳에 이미 커다란 충격을 가하고 있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발(發) 관세 쓰나미가 본격적으로 몰아닥치고 생산비용의 증가 등에 따라 경영 환경이 빠르게 악화하면서다. 특히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현상)이 점차 해소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미래차 시대'로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업체들이 대거 고사 위기로 내몰릴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2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등 미래차 중심으로의 사업 전환에 속도를 붙이면서 내연차 부품 중심의 생산 체계를 운용하는 업체들을 둘러싼 우려가 증폭된다. 최근에 열린 해외 투자 관련 행사에서 '2030년까지 연간 판매량을 555만대로 늘리고 이 중 60%를 친환경차로 채우겠다'는 계획을 밝힌 현대자동차의 행보가 일례다.
지난해 현대차는 전체 판매량(414만대) 가운데 24%를 전기차로 채웠는데, 향후 5년 안에 전기차 판매량을 현재의 2배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것이다. 현대차의 이 같은 구상은 국내 완성차 업계를 넘어 자동차 산업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다.
이런 흐름은 당장 중소 자동차 부품업계를 직격할 것으로 관측된다. 내연기관차가 전기차로 전환되면서 사라지는 부품은 약 1만여개에 달한다는 것이 산업계와 관련 학계 등의 공통된 전망이다. 엔진·변속기·연료·배기 계통의 부품이 없어진 자리는 배터리·모터 계통의 새로운 부품이 대체하게 된다. 완성차 생산 설비와 공정이 집약적으로 변화하고 자동화가 전면화되는 경우 부품 업계의 설 자리가 점점 더 비좁아질 것이란 전망도 어렵지 않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 같은 흐름이 예견됐음에도 변화에 발맞춰 사업의 체질을 성공적으로 전환하고 있는 중소 부품업체는 매우 드문 형편이다. 지난해 한국자동차연구원 조사 결과, 내연차 전용 부품에 종사하는 사업체 수는 전체 14.5%, 종사자 수는 전체 20.7%로 집계됐다. 반면 미래차 전용 부품군에 종사하는 사업체 수는 전체 3.5%에 불과했다. 향후 계획을 묻는 질문엔 전체 기업의 97.9%가 '사업전환 계획이 전혀 없다'고 응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미래차 전환은 중소 부품업체들의 생존을 결정짓는 매우 중대한 이슈"라며 "그럼에도 많은 부품업체가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채 여전히 엔진·변속기 같은 내연기관차 전용 부품에 '올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 부품업체가 사업 리스크를 딛고 전환을 시도할 수 있도록 정부가 중장기적인 지원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때라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정부는 지난해 1월 '미래차부품산업특별법'을 제정하고 부품업계의 미래차 맞춤 전환을 유도하기로 했으나, 전환 자금·연구개발(R&D) 예산 등의 지원이 주로 초기 수준에 머물러 있어 한계가 극명하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미래차 부품은 내연기관에 비해 첨단 소프트웨어·전자 비중이 높아 설비와 기술 확보에 훨씬 큰 비용이 든다"며 "기업 규모가 영세할수록 새로운 판로 확보 어려움 등 사업 전환에 따른 리스크가 부담돼 선뜻 시도하기 어려울 수 있다. 정부가 지자체 등과 협업해 부품업계의 미래차 전환을 위한 중장기적인 지원을 늘려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서희 기자 daw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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