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 스위치처럼 유전자를 켜고 끄는 것이 가능한 유전자 가위가 개발됐다. 유전자를 켜는 것은 단백질 또는 물질 생산을 활발하게, 끄는 것은 생산을 억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간 국내에서는 유전자를 '끄는' 기능에 초점을 맞춰 연구가 진행됐다. 이와 달리 이번 연구에서는 유전자를 자유롭게 켜고 끌 수 있는 기술이 개발돼 합성생물학 기반의 바이오산업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게 됐다.
KAIST는 공학생물학대학원(생명과학과 겸임) 이주영 교수와 한국화학연구원 노명현 박사 공동연구팀이 대장균에서 원하는 유전자를 동시에 켜고 끄는 것이 가능한 '이중모드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21일 밝혔다.

(왼쪽부터) KAIST 생명과학연구소 문수영 박사, 공학생물학대학원(생명과학과 겸임) 이주영 교수, 한국화학연구원 노명현 박사, 생명과학과 안난영 연구원. KAIST 제공
유전자 가위 기술은 21세기 생명공학의 가장 혁신적인 도구로 평가받는다. 다만 기존 유전자 가위는 주로 '끄기(억제)' 기능에 특화돼 유전자 발현을 막는 데는 효과적인 반면 유전자를 켜는 기능에서는 제약이 컸다.
또 유전자 가위가 작동하려면 특정 DNA 인식 서열(protospacer adjacent motif·PAM)이 필요한데 기존 시스템은 PAM 인식 범위가 좁아 조절할 수 있는 유전자의 폭이 좁은 한계를 드러냈다.
합성생물학의 핵심은 생명체의 유전자 회로를 프로그래밍 하듯 설계해 원하는 기능을 수행하게 하는 데 있다.
이 과정에서 합성생물학의 기반이 되는 박테리아는 구조가 단순하고 증식 속도가 빨라 다양한 유용 물질을 생산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특성을 활용해 박테리아 안에서 유전자를 활성화하는 것은 '미생물 공장'을 설계하는 핵심 기술로 여겨지며 산업적 가치 역시 큰 것으로 평가받는다.
다만 사람·식물·동물 등 진핵세포에서는 유전자 가위 기반의 활성화(켜기)가 진전을 이뤘지만, 박테리아에서는 내부 전사조절 메커니즘의 차이로 유전자 '켜기'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던 실정이다.
스위치로 전등을 켜고 끄는 것처럼 특정 유전자를 활성화하고 다른 유전자는 억제해 대사경로를 최적화하는 기술이 필요했던 이유도 다름 아니다.
공동연구팀이 개발한 이중모드 유전자 가위는 기존 한계를 극복해 유전자 조절을 정밀하게 할 수 있는 핵심 도구로 개발됐다. '끄는' 것에 기능이 맞춰졌던 기존 유전자 가위를 켜기와 끄기가 동시에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발전시킨 것이다.
특히 이중모드 유전자 가위의 성능을 검증했을 때는 유전자를 켰을 때 발현량이 기존보다 4.9배 증가했고, 껐을 때는 발현량이 83%까지 억제되는 성능을 보였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유전자를 동시에 조절(켜고, 끄기)할 수 있다는 점은 공동연구팀이 개발한 유전자 가위의 최대 장점으로 꼽힌다.
공동연구팀은 이중모드 유전자 가위의 실용성을 입증하기 위해 항암효과가 있는 보라색 색소 '바이올라세인' 생산량 늘리기에도 도전했다. 이 결과 대장균의 모든 유전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대규모 실험에서 이중모드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바이올라세인 생산에 효과적인 유전자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실례로 단백질 생산을 도와주는 'rluC' 유전자를 켜면 생산량이 2.9배, 세포를 분열하고 나누는 'ftsA' 유전자를 끄면 생산량이 3.0배 각각 늘어나는 것을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또 두 유전자를 동시에 조절했을(켜고 껐을) 때는 보다 큰 시너지효과를 보여 생산량이 3.7배가량 증가했다고 공동연구팀은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이번 연구는 유전자 가위와 합성생물학을 결합해 미생물 생산 플랫폼의 효율성을 높였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하나의 시스템으로 복잡한 유전자 네트워크를 제어할 수 있도록 한 성과는 새로운 연구 패러다임을 제시한 결과물"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공동연구팀이 개발한 기술은 다른 박테리아 종에서도 작동이 확인돼 바이오 의약품과 화학물질, 연료 생산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활용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연구는 KAIST 생명과학연구소 문수영 박사후연구원이 제1 저자로 참여해 수행했다. 연구 결과는 최근 분자생물학 분야의 'Nucleic Acids Research'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대전=정일웅 기자 jiw30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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