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
변화한 세계무역질서, 우리의 해법은
양자택일서 벗어나 시너지 모색 필요
"할 말 하더라도 美 동맹은 긴밀하게"
中과는 끊긴 접촉점 회복해 교류해야
수출 다변화, 고부가 산업 육성 과제
APEC, G7 플러스 무대 활용도 방법
미국이 상호주의에 기반한 관세 정책을 내세우면서 세계 무역 질서가 혼돈기에 접어들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동맹 관계를 긴밀히 유지하면서 동시에 중국과 신산업 분업 등 경제 협력을 이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봤다. 다자 질서 구축 및 공조 체계를 이루면서 우리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제언도 했다. 수출시장 다변화와 함께 국내 산업을 고부가가치로 끌어올리는 작업 역시 과제로 꼽혔다.
미·중 양강 체제 대응해야…신흥국 등 수출 다변화 필요
최근 아시아경제가 만난 전문가들은 미국뿐 아니라 중국과 협력 관계를 조성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조언했다. 미국은 금융과 서비스, 중국은 제조업 등으로 각기 다른 영역에서 두 국가가 주도권을 나눠 쥐는 양강 체제가 들어서는 만큼 이에 대응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극단적인 양자택일에 우리 스스로 매몰되기보다는 각각의 협력 분야에서 시너지를 내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취지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어느 한쪽 비중이 낫다면 큰 쪽을 택하겠지만 양쪽 모두 비중이 크다"며 "중국은 직접 수출만 우리 전체 수출의 20%이고 홍콩 거쳐서 들어가는 것까지 하면 25% 이상이다. 미국은 수출 비중이 높은 데다 투자도 워낙 많이 엮여 있어 발을 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쪽을 선택하라는 건 미국이나 중국에서 요구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양쪽 모두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익명을 요청한 통상 분야 전직 고위 관료는 "미국이 볼썽사납게 해도 어떻게든 밉보이지 않으려 하는 곳들이 우리나라와 유럽연합(EU), 일본 등 동맹국"이라고 말했다. 이어 "동맹이라고 해서 항상 관계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며 "이번 조지아주 사태 때처럼 문제가 있을 때는 할 말을 하더라도 미국과는 동맹으로서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중국은 부족하지도, 과하지도 않게 흠잡을 데 없는 적절한(correct) 관계를 유지하면 된다"고 했다.
중국과 새로운 산업 분야에서 협력 모델을 구체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과거에 전통 제조업 가치사슬 안에서 한중 간에 이상적인 분업 관계가 있었다"며 "이제는 중국과 신산업 분업 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신산업 분업 구조를 조성하는 과정에서는 "서로 배우고 교류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한중 간에 끊긴 다양한 접촉점을 회복하는 게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동남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등 신흥 시장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해 리스크를 분산해야 한다는 평가도 나왔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지난 5월 '미·중 무역 분쟁과 통상정책 변화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정부 및 연구 기관이 신흥 시장의 경제, 정치, 법률, 소비자 성향 등의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 분석해 기업에 제공하는 서비스를 구축해야 한다"며 "수출 산업 다변화를 위해 제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했다.
APEC 등 다자 기구 활용 필요…"韓, G7 플러스에 들어가야"
국제 사회에서 목소리를 키우고 협력 체계를 공고화하기 위한 다자 질서 구축 노력도 빠질 수 없는 과제다. 이시욱 KIEP 원장은 "(우리나라가) EU뿐 아니라 일본 등 유사 입장국과 협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짚었다. 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을 포함해 "미국을 제외한 다자 무역 질서를 지키려는 국가들이 모이는 네트워크에는 무조건 많이 들어가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목소리를 내는 과정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를 활용하면 좋다. 10월 말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도 우리나라가 개최국인 만큼 중요한 모멘텀"이라고도 했다. 마침 이번 APEC 정상회의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참석할 예정이어서 6년 만에 직접 만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국정과제로 주요 7개국(G7)의 확장 구성원이 되는 'G7 플러스'를 내세운 만큼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지 연구위원은 "G7 플러스에 들어가야 한다"며 "매우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이어 "이를 위해선 우리의 목소리를 일관성 있게 내야 한다"며 "자유무역 질서 옹호와 중국 관련 불공정성 대응을 위해 공동 견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 국익에 맞을 뿐 아니라 국가 신뢰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했다.
세계무역기구(WTO) 임시 상소 중재 제도인 '다자간 임시상소중재약정(MPIA)' 가입은 고려 요소다. WTO는 1995년 설립 이후 여러 분쟁을 해결해왔지만 미국의 참여 거부로 2020년 들어 사실상 기능이 마비됐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EU와 캐나다, 일본, 중국, 영국 등 WTO 회원국 일부는 그해 MPIA를 출범했다. MPIA 가입국 간 중재 합의를 높이려는 취지다. MPIA 기능에 한계가 있다는 평가와 함께 우리나라도 가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함께 나오는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통상 정책 분야 전문가는 "(WTO 내) 분쟁 해결 제도가 안 돌아가니까 제소가 걸려도 판정이 안 나왔다"며 "MPIA가 필요하지만 거기에 가입하면 WTO 체제에 스스로 속박돼 국가 주도로 적극적인 산업 정책을 펼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와 WTO 무역 분쟁이 가장 많았던 나라는 미국, 인도, 튀르키예 등이고 이들은 MPIA 가입을 하지 않았다"며 "MPIA 가입이 우리에게 실익인지는 살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종=김평화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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