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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구 집 가는 길 나오는 노랫소리…오후 5시 '귀갓길 멜로디' [日요일日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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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질 녘 방송 뜻하는 '유우야케 차임'
재해 잦은 日에서 방송 점검용으로 사용

우리나라에서 마을 안내방송은 동네 이장님이 하는 것이라는 정도의 인식인데요. 동네에서 안내방송이나 노래가 흘러나온다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죠. 하지만 일본에서는 동네마다 방송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해 질 녘 퇴근길, 장보고 집에 돌아가는 길, 친구와 이야기하고 귀갓길에 깔리는 익숙한 멜로디가 있는데요. 오후 5시 저물녘마다 틀어주는 동네 방송, '유우야케 차임'에 대한 내용을 들려드립니다.


유우야케 차임은 해 질 녘과 차임의 합성어입니다. 말 그대로 해 질 녘에 들려오는 차임이라는 뜻입니다. 일본에서는 오후 5시 정도에 동네마다 노래가 흘러나오는데요. 이 때문에 아이들이 놀러 간다고 나갈 때 부모님이 귀가 시간을 정하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차임 울리면 집에 돌아와야 한다" 이런 식으로요. 여기에 "어린이 여러분 이제 집에 갈 시간입니다"라고 내레이션을 넣어 방송하는 곳도 있습니다. 일몰이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보통 3월부터 9월까지는 오후 5시에서 5시 30분에 방송하고요. 해가 짧아지는 동절기에는 시간을 앞당겨 보통 오후 4시 30분 정도에 멜로디를 내보냅니다.

유우야케차임이 울리는 확성기. 네토라보.

유우야케차임이 울리는 확성기. 네토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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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는데요. 2021년에는 도쿄 이이다바시의 초등학생들이 "동절기라고 지자체에서 차임 시간을 당겼는데, 실제 일몰 시각과 차이가 있다"면서 지역 의회에 진정서를 낸 적이 있습니다. 공놀이하고 있는데 집에 가야 할 시간을 알리는 멜로디가 들린 것인데요. 아쉬운 학생들은 "아직 해가 떠 있고 한참 밝은데 벌써 멜로디가 울리니 귀가 멜로디라는 취지랑 맞지 않는다"며 종소리를 30분 늦춰달라는 제안을 지역 의회에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무려 학교에서 60명의 학생의 서명을 모아 냈다고 하죠.


이렇게 아이들의 아쉬움과 부모님의 편리함을 만들어내는 이 방송은 '방재행정무선시스템'의 일환입니다. 지진, 쓰나미 등 재해가 잦은 일본에서는 재해 시에 정보를 전하기 위해 방재무선망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기초지방자치단체를 포함해 일본의 각 지자체는 '지역방재계획'에 따라 각 지역의 방재나 응급구조, 재해 복구와 관련된 업무에 사용할 수 있는 무선망을 둬야 합니다.


평상시에는 안내방송이나 이런 귀가 차임으로 사용하고, 재해가 발생 했을 때는 가장 큰 단위인 현에서 일제히 이 무선망을 통제하게 됩니다. 가령 지진이 발생했으면 현청에서 하위 지자체로 긴급통보를 일제히 전달할 수 있죠. 진도 5 이상의 지진이 발생하면 자동으로 '대지진이 발생했다'는 방송이 확성기를 통해 나가게 됩니다. 이렇기 때문에 방송이 들리지 않는 사각지대가 생기면 큰일이죠. 이런 곳에 기지국을 설치해 어떤 곳에서도 방송을 들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지자체 방재 담당자들이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유우야케차임은 어떤 목적일지 대충 감이 오시죠. 이 방재 시스템이 고장 나면 큰일이기 때문에, 매일 이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귀갓길 음악을 트는 것입니다.

유우야케차임이 울리는 확성기 캡슐토이 포스터. 확성기에서 추억의 동요가 재생되게 만들었다. 소타 홈페이지.

유우야케차임이 울리는 확성기 캡슐토이 포스터. 확성기에서 추억의 동요가 재생되게 만들었다. 소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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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활용해 일본에서는 정말 다양한 내용으로 방송을 많이 하는데요, 스모그 주의보가 발령됐을 때도 창문을 닫아달라는 방송을 하기도 하고 코로나19 팬데믹 때는 마스크를 쓰고 외출을 삼가라는 방송을 하는 곳도 많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재난 문자로 실종자를 찾는 것처럼, 실종자가 생겼을 때도 사람을 찾는다며 방송을 할 때도 있죠.


유우야케차임은 지자체별로 흘러나오는 멜로디도 다른데요. 가장 많이 쓰는 멜로디는 '유우야케코야케(夕?け小?け)'라는 동요입니다. 희미해지는 저녁노을이라는 제목인데요. 일본에서 이 노래는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는 노래로도 유명하다고 해요. 특이한 멜로디를 쓰는 곳이 있는데, 바로 지바현 다테야마시입니다. 일본 유명 밴드 액스재팬의 리더 요시키의 고향으로, 이곳은 전철 역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도 액스재팬의 'Forever love'인데요. 오후 5시에 울리는 차임도 같은 곡이라고 합니다. 다테야마시 사람들은 온종일 이 노래를 듣는 셈이겠네요.


또 후쿠시마현 스카가와시는 오전 7시, 오후 5시 30분에 방송하는데요. 스카가와시가 만화 '울트라맨'의 성지로 불리기 때문입니다. 스카가와시는 울트라맨의 고향 M78 성운과 자매도시를 맺었습니다. 2014년 2월부터 오전 7시 '울트라 세븐'을, 오후 5시 30분 '돌아온 울트라맨'을 틀어준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문화이긴 한데, 무엇보다 방재시스템을 일상으로 가져왔다는 점은 주목할 만 합니다. 2023년에 북한 미사일 발사로 서울에 사이렌이 울렸을 때도, 도대체 갑자기 어디서 흘러나오는 것인가 당황했던 기억이 큰데요. 제대로 들리지 않는 곳도 많아서 언론에서 지적하기도 했죠. 일본은 워낙 재해가 잦은 나라지만 이렇게 일상에서 대비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참고할 만 한 것 같습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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