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 폐업 100만 시대'라는 사실은 창업이 곧 폐업의 대기표와도 같다는 의미로 읽힌다. 아울러 우리 경제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봉착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이다.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더 큰 문제는 이런 형국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을 계속해서 창업 전선으로 떠미는 현실 그 자체라고 하겠다.
울며 겨자 먹기 식의 비자발적 창업과 이에 따른 골목상권의 과당경쟁, 필연적인 폐업의 악순환을 완화할 수 있는 건 기업의 고용이라는 울타리 말고는 거의 없다. 질이 그런대로 괜찮거나 크게 나쁘지는 않은 임금 근로의 기회, 근로소득을 확보할 수 있는 시간의 연장, 여기에 바탕을 둔 은퇴 이후 가계 설계의 예측 가능성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사회적 안전망인 동시에 지속가능한 복지라고 하는 이유다. 기업과 골목상권, 기업자본과 가계는 이렇듯 생각보다 더 직접적이면서도 촘촘하게 얽히고설켜 있다.
사생결단의 혈투 비슷하게 변질된 정치가 모든 걸 집어삼키고 너무 오래되거나 이제는 폐기해야 할 이념을 둘러싼 쟁투가 활화산처럼 뜨겁게 펼쳐지는 가운데 일자리나 고용 창출 같은 단어는 구호 수준에서조차 거론하기가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결과가 어떠했든 일자리 상황판까지 만들어 내걸었던 문재인 정부 때와도 대조되는 현실은 낯설다.
현 정부는 끊임없이 단기적 묘책을 찾으려는 모습이다. 이를테면 소비쿠폰 같은 현금 살포와 이를 떠받치기 위한 대규모 재정 지출이 미래를 위한 산업 투자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진 선례가 있는지 모르겠다. 앞뒤와 맥락을 뛰어넘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을 보면 대개 국가 채무 비율이 100%를 넘는다"고 단언하는 이재명 대통령의 기세로 미뤄볼 때 이런 흐름이 쉽게 꺾이지는 않을 것 같다.
기업이 밉든 예쁘든 결국은 이들의 고용 여력과 의지가 관건인데, 한편으론 이와 같이 대중영합적인 미봉책을 밀어붙이고 다른 한 편으론 일각의 오래된 문제와 부조리를 일반화해 기업 전체를 응징과 교정의 대상인 것처럼 몰아붙이는 방식은 경제·산업 정책의 순리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다.
징벌과 형벌, 낙인찍기로 점철되고 타협이 배제된 입법의 압력은 고용 창출을 위한 기업의 의사결정을 최후순위로 밀어내는 효과를 내고 만다. 천문학적인 자금의 유출과 관세를 맞바꾸는 게 뼈대인 대미 협상은 산업계의 주축인 대기업들의 생산·영업 기반을 일정 부분 미국으로 넘겨주는 절차와 다르지 않다. 여기에 종속되는 수많은 중견·중소기업들, 연쇄적으로 타격을 입을 더 작은 기업들, 이들이 감당해온 고용의 일부가 통째로 공동화해버릴지도 모르는 급박한 상황이 바로 지금이다.
안 그래도 중소법인들 가운데 약 40만곳이 지난해 순손실을 냈을 만큼 최일선의 고용 시장은 얼어붙을 대로 얼어붙었다. 취업을 포기하고 그냥 놀았다는 사람이 통계작성 이후로 가장 많은 50만명을 넘어선 오늘이다. 가망 없는 창업, 속절없는 폐업의 무한반복은 이런 지점에서 시작된다. 산업과 시장, 기업의 원리를 존중하고 타협하는 동시에 미약하게나마 성장의 시그널을 담은 훈풍을 장기적인 안목으로 불어넣는 것 외에 이 얼음장을 녹여낼 묘책은 없다. 이런 와중에, 역동작에 걸려버린 정치와 정책이 뿜어내는 냉기가 너무 거세다.
김효진 바이오중기벤처부장 hjn2529@asiae.co.kr
꼭 봐야할 주요뉴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