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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사법부를 지켜달라"는 법관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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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사법부를 지켜달라"는 법관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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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가 흔들리지 않게 지켜주세요."


며칠 전 수도권 법원의 한 판사와 통화를 마무리하던 순간, 수화기 너머에서 뜻밖의 부탁이 들려왔다. "원래 기자들과 잘 통화하지 않는다"며 전화를 꺼리던 그가 굳이 이런 말을 남긴 것은 그만큼 절박하다는 방증이었다.

최근 사법부를 둘러싼 정치적 파장은 거세다.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여권의 '선출권력 우위론' 발언,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 요구까지 연이어 나왔다. 역대 대법원장 탄핵이 추진된 것은 전두환 정권 시절 단 한 차례였으나 국회에서 부결됐다. 군사정권 시절에도 실현되지 못했던 요구가 민주화 이후 정치권에서 다시 수면 위로 오른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현직 판사들이 "이제는 말을 아껴야 한다"며 한숨을 내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발언 한마디가 재판의 공정성 자체를 의심받을 수 있다는 불안이 법원 안에 퍼져 있다.


물론 외부의 거센 압박만 탓하기엔 사법부의 자화상도 떳떳하지 않다. 그동안 사법부는 자정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고, 독립성을 스스로 지켜왔다고 보기 어려운 사례들도 잇따랐다. 지난 5월에는 대법원이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로 처리하면서 '정치적 고려가 있었던 것 아니냐'라는 의혹이 나왔다.


이런 내부적 의혹들은 결국 정치권의 거친 공세를 정당화하는 빌미가 된다. 이 대통령을 지지하는 여권 강성지지자층들 사이에서 사법권력을 비판하다 못해 조롱하고 희화화하는 일은 이제 하나의 엔터테인먼트가 된 것 같다. 다만 현시점에 사법부가 그만한 공격을 받을 명분이 무엇인지는 의문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공직선거법 재판의 6·3·3 원칙을 제시하며 '재판 지연 해소'를 취임 일성으로 강조해왔고, 이 대통령 선거 재판 역시 그 일환으로 대선 전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밀어붙였다는 것이 법조계 일반론이다. 여당 의원실을 출처로 제기된 '비상계엄 전 회담' 의혹에 대해 한덕수 전 국무총리 등이 조 대법원장과의 만남 사실을 부인하면서 사실상 '증거 없는 의혹 제기'라는 뒷말이 무성하다.

선출권력이 합리적 근거 없이 사법부에 흠집을 내는 지금의 모습은 역설적으로 '삼권분립의 필요성'을 더욱 강조하는 모습 같기도 하다. 한 재경지법 부장판사는 "지금 여당은 대통령과 여당 중심의 1권을 제일 위에 두고 그 밑에 '재판사무'를 두는 조직을 그리는 것 같다"는 강한 비판 발언을 쏟아냈다. 과장된 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삼권분립은 권력의 오남용을 막기 위한 헌법적 장치다. 헌법 제103조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한 것도 바로 이 균형을 지키기 위해서다. 헌법학계도 사법부의 독립과 민주적 통제 사이 긴장관계를 인정하지만, 어느 한쪽의 힘으로 재판부를 길들이는 방식은 헌법이 의도한 균형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이라는 데 큰 이견이 없다. 지금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은 사법부가 아니라, 근거와 명분 없이 사법부를 흔드는 정당권력이며 선출권력이다.





염다연 기자 allsal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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