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 속 양국서 불신…귀국 후 취업도 난관
한때 미국 대학 학위는 중국 학생들에게 '황금 티켓'으로 여겨졌다. 고국에서 더 나은 직장과 안정된 미래를 보장하는 통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중 갈등이 격화되면서 그 '티켓'은 오히려 진퇴양난의 굴레로 변하고 있다. 중국인 유학생들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반(反)이민 정책과 방첩조사의 표적이 된 데다 자국에서도 '잠재적 간첩'으로 여겨지며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CNN은 14일(현지시간) "미국 학위를 가진 중국 유학생들이 양국 어디에서도 설 자리를 찾기 힘들어졌다"고 분석했다. 중국 동남부 출신으로 미국에서 3년간 공부하며 석사학위를 취득한 롄씨(24)는 대학원 졸업 후 뉴욕 월가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었지만 작년 7월 중국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던 중 학생비자가 갑자기 취소됐다. 중국 대학에서 경제통계학을 전공한 뒤 미국으로 간 롄씨는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인 2020년 중국군과 연계된 중국 대학 출신 학생과 연구원들의 비자 발급을 사실상 금지한 조치를 적용받게 되면서 미국 입국을 거부당했다.
그는 중국에서 취업하기로 하고 국유 은행과 금융회사에 70곳 넘게 지원서를 보냈지만 모두 떨어졌고 대부분은 서류심사도 통과하지 못했다. 지난 3월에야 상하이의 한 민간 회사에 취업한 롄씨는 미국 유학 경험이 공공부문 취업에 걸림돌이 된 것 같다며 "(미중) 양국의 분쟁에 휩쓸리면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고 CNN에 말했다.
美도 中도 '스파이' 취급…美유학 중국학생들 '진퇴양난'
CNN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집권 후 중국으로 돌아온 해외 유학생 수는 꾸준히 증가해 2013년 35만명에서 2021년 100만명으로 크게 늘었지만 같은 기간 민족주의와 애국주의가 강조되고 국가 안보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지면서 고용주들이 미국은 물론 외국 대학 출신 지원자 전반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알프레드 우 싱가포르 국립대 리콴유 공공정책대학원 부교수는 중국 방첩기관인 국가안전부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캠페인으로 스파이 활동에 대한 편집증이 중국에서 일종의 "사회적 규범"이 되면서 기업들이 해외졸업생을 이전보다 덜 환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안전부는 SNS 등을 통해 외국 스파이가 어디에나 있으며 박사과정 유학 중이던 중국인이 외국 정보기관에 포섭돼 국가기밀 유출에 가담하게 됐다는 식의 사례를 주기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공공 부문 진출 막힌 유학생들…"국내 인재가 더 효율적" 인식도
이런 가운데 2023년부터 여러 지방정부가 고위급 공무원 육성을 위해 상위권 대학 졸업생을 따로 선발하는 '선조생' 제도 선발 대상에서 해외 대학을 제외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에서 가장 개방적인 지역으로 꼽히는 광둥성도 여기에 가세했다. 지난 4월에는 중국 최대 에어컨 제조사 거리의 둥밍주 회장이 주주총회에서 "(외국에 살다가) 귀국한 사람은 절대 고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 사이에 스파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 발언은 국유기업에서 주로 나오던 '간첩 의심' 관련 내용을 저명한 민간 기업 수장이 언급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줬다고 CNN은 짚었다.
중국 기업들 사이에서는 해외 유학생보다 국내 졸업생이 더 '효율적'이라는 인식도 강하다.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낮고 현지 시장에 더 잘 적응한다는 이유에서다. 상하이의 경력 컨설턴트 위안신은 "중국 기업들은 더 강한 직업 윤리와 현지 시장 이해도를 가진 국내 인재를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서구 문화에 익숙한 유학생들이 중국식 '996 근무제(오전 9시 출근, 오후 9시 퇴근, 주 6일 근무)'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불신도 있다. 이는 '해외 유학생은 덜 헌신적이다'라는 고정관념으로 이어지며 취업 시장에서 장벽이 되고 있다.
서지영 기자 zo2zo2zo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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