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15% 확보해도 수익 배분 불리
전문가들 "성급한 서명은 위험" 경고
정부가 미국과의 상호관세 협정 서명을 두고 신중한 계산에 들어갔다. 미국은 한국이 3500억달러(약 480조원) 규모의 미국 내 투자·보증에 참여하면 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추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겉으로는 관세 완화가 이득처럼 보이지만 투자 부담과 회수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단순히 수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정부 안팎에서는 차라리 당장의 관세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불리한 조건의 서명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25% 관세가 현실화될 경우 우리 산업계에 던져지는 충격은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자동차, 철강, 반도체 등 주력 산업은 수출 가격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다.
자동차의 경우 일본이 이미 15% 합의를 끌어낸 만큼 한국만 25%를 맞으면 현지 시장에서 판매량 감소가 불가피하다. 철강과 반도체 역시 원가 부담이 커져 수익성이 약화된다. 한국은행은 이로 인해 국내 경제에 연간 7조~9조원의 국내총생산(GDP)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25%는 사실상 시장 접근권을 제한하는 조치에 가깝다"며 우려를 드러냈다.
하지만 미국이 내건 조건도 결코 가볍지 않다. 현금 투자의 경우 국가 재정과 기업의 재무에 직접적인 압박을 준다. 어렵게 보증 구조로 합의를 마친다 해도 투자 회수가 실패할 경우 그 부담은 결국 국민 세금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투자 수익 배분에서 미국은 자국 우선 원칙을 고수하고 있어 한국 입장에서 불리한 구조가 고착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미국은 투자금 회수 전에는 한국과 미국이 수익을 절반씩 나누되, 회수 이후에는 수익의 90%를 미국이 가져가고 한국은 10%만 받는 구조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과 같은 조건이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조건이 "투자 이익의 대부분을 미국이 독식하는 불리한 구조"라며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우리 정부로서 베스트 시나리오는 15% 관세율을 확보하되 투자 조건을 최대한 축소하거나 보증 방식을 유연하게 설계하는 것이다. 그러나 협상이 쉽지 않은 만큼, 차선책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25% 관세를 감수하되 정부가 산업 지원책을 병행해 충격을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미국이 요구하는 3500억달러를 억지로 투입하기보다 차라리 같은 금액을 국내 기업 지원에 활용하는 것이 낫다는 주장이다.
보조금, 세제 혜택, 저리 융자 등을 통해 기업의 연구개발(R&D)과 설비투자를 뒷받침하면 중장기 경쟁력이 오히려 강화될 수 있다는 논리인데, 실제로 이 같은 논거가 힘을 얻으면서 정부 내부에서도 기존보다 유연한 접근을 검토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협상이 진행 중인 사안인 만큼 구체적 언급은 어렵다"면서도 "국익을 최우선에 두고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적 경제석학 진 그로스먼 미국 프린스턴대 국제경제학 교수도 이러한 주장에 힘을 더한다. 그는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달래기 위한 수사적 양보는 가능하지만 실제로 그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며 "외국인 투자를 그의 통제 아래 두는 것은 양국 모두에 위험하다. 무엇보다 지금의 미국은 우호적인 시장도,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도 아니다. 유럽, 일본, 캐나다 등 국제 규범을 존중하는 국가들과의 협력 강화가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싱크탱크 경제정책연구센터(CEPR)의 선임경제학자 딘 베이커도 연구센터 홈페이지에 미국이 15%로 낮춘 상호관세가 다시 25%로 증가하면 한국의 대미 수출은 한국 GDP의 0.7%인 125억달러 감소할 것으로 추산되는데, 왜 이를 지키고자 미국에 3500억달러를 주려고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25% 관세를 감수하는 선택에는 또 다른 위험이 존재한다. 미국이 불쾌감을 이유로 관세를 25% 이상으로 더 높이는 '괘씸죄'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다. 실제로 트럼프 정부는 캐나다·멕시코가 미국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자 예고 없이 수입품 대부분에 25%의 관세를 부과한 바 있고, 인도가 러시아산 석유를 계속 수입했다는 이유로 미국은 인도산 상품에 징벌성 관세를 포함해 총 50%의 관세를 부과해 시장 접근을 제약하기도 했다.
이 같은 조치가 단행될 경우 한국 경제가 맞을 충격은 지금보다 더 커질 수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당장 25%를 맞는 것보다 더 큰 위험은 불확실성"이라며 "협상 국면에서 정부가 얼마나 안전장치를 마련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세종=강나훔 기자 nahum@asiae.co.kr
꼭 봐야할 주요뉴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