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AI 메모리 시장 주도권 선점
샘플 공급 6개월 만에 대량생산 준비 완료
삼성전자, 한발 앞선 공정으로 성능 승부
SK하이닉스가 세계 최초로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 양산에 착수했다. 아직 샘플 공급 단계인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을 앞서가며 차세대 인공지능(AI) 메모리 시장에서도 선도적 입지를 강화하게 된 것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로직·코어 다이에서 앞선 공정을 적용하고 있는 만큼 수율 안정화와 양산 시점, 엔비디아 퀄테스트 결과 등에 따라 판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SK하이닉스는 HBM4 개발을 최종 완료하고 세계 최초로 양산 체제를 구축했다고 12일 밝혔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처리 속도를 끌어올린 고성능·고부가 제품이다. SK하이닉스는 올해 3월 HBM4 12단 샘플을 고객사에 공급했고 6개월 만에 양산 준비를 마쳤다. 경쟁사에 앞서 가장 먼저 상용화를 시작하며 차세대 메모리 시장 주도권을 선점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AI 산업과 인프라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데이터 연산 처리 수요까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보다 빠른 시스템 속도를 구현하기 위해 HBM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는 배경이다. 막대한 전력을 소모하는 데이터센터 운영 부담 역시 메모리 전력 효율 확보를 기업들의 핵심 과제로 만들었다.
SK하이닉스가 양산에 나설 HBM4는 데이터 전송 통로(I/O)를 2048개 적용했다. 이전 세대보다 갑절 늘어난 것으로, 대역폭을 2배로 확대하면서 전력 효율을 40% 이상 끌어올렸다. SK하이닉스는 이 제품을 고객 시스템에 도입할 경우 AI 서비스 성능을 최대 69% 향상시킬 수 있다면서, 데이터 병목 현상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동시에 데이터센터 전력 비용까지 크게 줄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새로운 HBM4는 10Gbps(초당 10기가비트) 이상의 동작 속도를 구현해 미국전자산업표준협의회(JEDEC) 표준 동작 속도인 8Gbps를 크게 앞질렀다. 개발 과정에서 SK하이닉스 고유의 접착·몰딩 공정(MR-MUF), 10㎚(1㎚=10억분의 1m)급 5세대 1b D램을 적용해 안정성까지 확보했다.
가장 빠르게 양산에 돌입하는 만큼 SK하이닉스가 강조해온 '신속한 시장 진입(Time to Market)' 원칙을 통해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사 공급에서도 경쟁 우위를 가져갈 것으로 예상된다. 경쟁사인 삼성전자는 빠르면 올해 4분기, 미국 마이크론은 내년 대량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어 격차가 크다.
김주선 SK하이닉스 AI 인프라 사장(최고마케팅책임자·CMO)은 "세계 최초로 양산 체제 구축을 발표한 HBM4는 AI 인프라의 한계를 넘어서는 상징적인 전환점"이라며 "AI 시대에 필요한 최고 품질의 메모리를 적시에 공급해 '풀 스택 AI 메모리 프로바이더'로 성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가 빠르게 양산 체제를 갖추면서 경쟁도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열릴 HBM4 시장에서 반전을 노리고 있다. 이를 위해 기술적으로 한층 진보된 공정을 적용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HBM의 두뇌 역할을 하는 '로직 다이'에는 삼성 파운드리 4㎚ 공정을 활용하고, 코어 다이(D램) 역시 한 세대 앞선 1c D램을 쓰기로 했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은 대만 TSMC의 5㎚ 또는 12㎚ 공정에서 로직 다이를 만들고 1b D램을 코어 다이로 활용한다.
반도체 업계에선 삼성전자의 승부수가 어떻게 작용할지 주시하고 있다. 최대 고객사인 엔비디아는 내년 AI 가속기 블랙웰 시리즈의 후속작인 '루빈'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 메모리 업체들을 상대로 'HBM4 데이터 처리 속도를 높여달라'라는 요청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의 관건은 HBM4 코어 다이로 쓰일 1c D램의 성능과 수율을 빠르게 확보하는 데 달려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6월 말 1c D램 개발에 성공해 양산 승인(PRA)을 마친 바 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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