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세상]
베스트셀러 상위권 장악한 소설
한강 노벨상 이후 韓 소설 약진
잠재력 증명한 한국문학 분기점
매년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탄식이 이어지던 출판계가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다. 특히 소설 판매가 두드러지게 증가하며 시집을 비롯한 문학 도서 전반이 상승세를 타고 있다. 판매 부진에 시달리던 문학 출판인들의 얼굴에도 오랜만에 웃음꽃이 피었다.
최근 베스트셀러 최상위권은 소설이 장악했다. 교보문고 상반기 종합 베스트셀러 10위권 중 절반이 소설이었고, 지난달 한국 소설 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약 48% 늘었다. 특히 7월 4주 차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순위에서는 상위 1~4위를 비롯해 10위권 안에 8종('가공범' '혼모노' '모순' '안녕이라 그랬어' '급류' '첫 여름, 완주' '궤도' '소년이 온다')이 소설이었다. 시대 흐름에 따라 소설의 인기가 소폭 상승 기류를 타고, 유명 작가의 특정 소설이 인기를 얻은 적은 있지만, 여러 소설이 이렇게 큰 주목을 받은 건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한때 실용서에 밀려 '무용(無用)'하다는 취급을 받던 문학은 어떻게 다시 주목받게 됐을까. 최근 몇 년간의 베스트셀러 흐름을 살펴보면 '갓생'을 앞세운 자기계발서가 인기를 끈 뒤에는 경쟁에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심리서가, 이어 삶의 본질을 돌아보게 하는 소설이 다시 자리매김했다. 실제로 2020년에는 더 많은 부의 성취를 다루는 '더 해빙'과 '돈의 속성'이 연간 베스트셀러 1~2위를 차지했지만, 이듬해에는 현실을 초월하거나, 따스한 감동을 전하는 '달러구트 꿈 백화점'(2021), '불편한 편의점'(2022) 같은 소설이 상위권에 올랐다. 2023년에는 다시 실용서('세이노의 가르침' '원씽')가 강세를 보였고, 2024년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소설의 전성기가 다시 열렸다. 갓생살이와 쉼이 반복되는 경향성이 엿보인다.
주목할 대목은 한국 소설의 강세다. 교보문고 8월 월간 베스트셀러 10위권에는 소설 5종이 올랐는데, 이 가운데 성해나의 '혼모노', 한로로의 '자몽살구클럽', 김애란의 '안녕이라 그랬어' 등 3종이 한국 소설이었다. 7월에도 10위권 소설 6종 중 5종('혼모노' '안녕이라 그랬어' '급류' '첫 여름, 완주' '소년이 온다')이 한국 작품이었다. 단순히 소설 장르의 부활이 아니라, 한국 소설 자체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예스24 기준, 올해 1월부터 8월까지의 한국 소설 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51.5% 상승했다.
이 같은 배경에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있다. 그의 수상은 문학 애호가에 국한되던 독자층을 일반 대중으로 확장하는 전환점이 됐다는 분석이다. 거대 담론에서 벗어나 일상과 개인의 서사에 집중하는 최근 경향에 피로감을 느끼던 독자들에게 한강 노벨상 수상은 소설을 다시 집어 드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세계 문학의 변방이 아니라 당당한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는 자부심 역시 독자들의 선택을 이끌었다. 아울러, 노벨상이란 기념비를 세운 한강 작가 뒤로 성해나와 같은 주목받는 젊은 작가들의 출현이 이어지면서 소설의 재미와 가치에 주목하는 사람들의 수가 점차 늘어나는 상황도 소설의 인기를 뒷받침하고 있다.
'갓생살이'에 지친 이들의 피난처로서 문학은 다시 기능하고 있다. 세계적 주목과 젊은 작가들의 약진이 맞물리며, 한국 문학은 결정적 분기점에 서 있다. 이 흐름이 반짝 인기에서 그칠 것인지, 아니면 지속적인 성장으로 이어질 것인가. 한국 문학은 이제 새로운 도전에 맞닥뜨렸다. 문학이 선사하는 큰 효용 중 하나는 경험해보지 못한 삶, 타인에 대한 이해다. 대립과 갈등이 첨예한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문학이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여유를 선사하길, 그래서 더 많은 이들이 그 쉼을 함께 나누길 기대한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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