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엔솔, 美 출장 전면 중단
현대차, 신규 출장 보류 지침
단속 비켜간 기업도 대책 없어
"임시방편 대응, 더는 안 통해
산업전체 동시에 흔들릴 수도"
출국 전 적격비자 검증 등
협력사 포함한 매뉴얼 촉구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에서 불법체류 혐의로 구금된 한국인 근로자 300여명이 귀국길에 오르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산업계와 학계 전반에선 이번 일을 계기로 기업, 정부 모두 체계적인 비자 대응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는다.
현대자동차그룹 고위관계자는 12일 "그간 출장 인력 파견 과정에서 회사 역시 쉽지 않았다"며 "그때그때 상황마다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는 제대로 체계를 세워야 한다"며 "비자 문제는 정부 대 정부 차원에서 협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단기 조치만으로는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고 지적하며 제도적 협의 구조 마련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또 "대기업뿐 아니라 협력사까지 포함한 전방위적 준법 관리 없이는 비슷한 사태가 되풀이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민단속으로 체포됐던 현대차-LG엔솔 배터리공장 건설 현장 직원들이 애틀랜타 공항으로 향하기 위해 11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포크스턴의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시설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재계에서는 이번 일을 계기로 적격한 절차에 따라 비자를 취득하고, 향후 유사 사태에 대비한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대기업 계열사 대표는 "비자 발급과 취득 과정에서 원청 기업뿐만 아니라 협력사들도 동일하게 법규를 준수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법에 저촉되는 일을 해서는 안 되며 적격한 방식으로 비자를 취득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협력사가 인력 충원 과정에서 절차를 소홀히 하면 원청까지 리스크가 전가될 수 있다며 이번 사태를 대기업뿐 아니라 협력망 전반의 준법 관리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출장 전면 중단 방침을 내리고 이미 현지에 나가 있는 직원들에게는 즉시 귀국하거나 숙소에 머물도록 지시했다. 기존 고객사 미팅 등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면 모든 출장이 금지됐다. 현대차 역시 조속한 복귀를 권고하고 신규 출장은 불가피하지 않으면 보류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번 미 이민 당국의 단속을 비켜 간 기업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근본적인 대비책이 있었던 게 아니라 단속 시점과 공정 단계가 맞물려 피해를 피했을 뿐이라는 게 중론이다. 예컨대 삼성전자는 텍사스 테일러 반도체 공장을 건설 중이지만 현재는 시공사 중심으로 공정이 진행되고 있어 타격을 피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만약 장비 반입과 엔지니어 투입 시점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삼성도 타격이 불가피했을 것"이라며 "LG에너지솔루션 사례가 선례가 돼 다른 기업들이 대응할 시간을 번 셈"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임시방편으로 대응하는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동안 비자 문제는 개별 기업 사안으로 치부돼 왔지만, 이번 사태는 산업 전체가 동시에 흔들릴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는 것이다. 출국 전 적격비자 사전 검증, 협력사 포함 체크리스트, 현지 준법 교육, 위기 발생 시 정부·기업 비상 연락망 등 단계별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투자 규모가 큰 기업은 장기 체류와 취업이 가능한 E비자, L비자, H-1B비자를 활용하고 소규모 기업은 단기 출장 성격의 B-1비자를 활용하는 등 맞춤형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비자는 일정 규모 이상 투자나 무역 활동이 있는 기업이, L비자는 다국적 기업이 해외 법인으로 직원을 파견할 때 주로 사용된다. H-1B비자는 전문직 고용을 위한 대표적 취업비자이며, B-1비자는 단기 출장이나 회의 참석 등에 활용된다.
남지영 미국변호사는 "본사 직원을 채용해 L비자로 합법 파견하거나, 투자 규모에 맞춰 E-2비자 등 다양한 경로를 사전에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10월 예정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 주요 외교 이벤트를 계기로 "비자 문제를 정식 의제로 다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이번 일을 계기로 미국뿐 아니라 다른 진출국까지 리스크를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성필 기자 gatozz@asiae.co.kr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
심성아 기자 hea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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