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의 막바지, 주연 배우가 컨테이너 왼쪽 끝 벽으로 붙어 엎드리는 순간 불안했다. 연극 초반 컨테이너 오른쪽 끝 벽이 안쪽으로 넘어지는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10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개막한 연극 '엔드 월(End Wall)-저 벽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는 2021년 4월 경기도 평택항에서 개방형 컨테이너(FRC)의 바닥 이물질을 제거하던 대학생이 컨테이너 한쪽 끝 벽이 무너지면서 그 밑에 깔려 숨진 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작품이다. 엔드 월은 당시 희생자인 대학생을 덮친 컨테이너의 끝 벽, 날개라고도 불리는 부분을 뜻한다.
극은 사고를 당한 대학생 '아성'의 영혼이 사고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배회하면서 시작된다. 쓰레기 처리물 공장에서 일하다 희생된 아성 또래 '무명'의 영혼도 등장해 아성과 함께 이야기를 끌어간다. 아성과 무명의 사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이주 노동자, 원청과 하청 그리고 재하청 등 한국 사회 노동 문제와 관련된 다양한 문제들이 노출된다. 엔드 월은 궁지의 의미가 담긴, 벽에 몰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다.
아성과 무명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자신들이 목숨을 잃어야만 했던 이유지만 둘이 나누는 대화는 노골적이거나 직설이지 않다. 오히려 시적이고 감상적이다.
하수민 연출은 지난 9일 시연회에서 연극을 제작한 계기와 관련해 컨테이너 벽에 가려 아성에게 보이지 않는 바다, 컨테이너 벽 너머로 꾸었을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왜 죽임을 당했는지 그 이유도 중요했지만 사고를 당한 대학생이 살아있을 때 무엇을 꿈꿨는지가 더 중요했다. 연극 속 아성과 무명은 허구의 인물이지만 그들의 꿈이 무엇인지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극에서는 아성이 일했던 공사 현장과 함께 수능을 끝낸 날 아성이 친구들과 함께 해방감을 만끽하며 함께 여행 가자고 약속하는 장면이 비중 있게 그려진다. 아성은 그저 소박한 꿈을 꾸었던,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대학생으로 그려진다.
하수민 연출이 직접 희곡도 썼다. 그는 여러 차례 평택항 현장 답사를 다녀왔다고 했다. "평택항에 직접 들어갈 수는 없어서 건너편 건물 5층에서 현장을 지켜보며 연극을 구상했다. 20대 때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을 투영했다."
지게차 등 공사 현장에 있을 여러 기계적 장치들을 배우들이 직접 몸으로 표현한다. 예를 들어 배우가 뒤돌려차기를 하면 '쿵'하는 효과음과 함께 거대한 물체가 옮겨지는 상황을 묘사하는 식이다. 배우들은 힘든 동작을 반복하면서 적지 않은 땀을 흘린다. 인간이 기계 취급을 받는 공사 현장에서의 비정한 현실을 은유적으로 고발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수민 연출은 "땀이 나는 연극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노동에 관한 연극이기 때문이다. 노동은 특별한 게 아니고 우리가 모두 하는 것이다. 특히 항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땀이 나는 모습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그게 살아있는 것이고 그것 자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배우들도 노동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땀이 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엔드 월은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제2회 서울희곡상을 받은 작품이다. 서울희곡상은 서울문화재단이 창작 희곡을 발굴하고 연극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2023년 제정했다. 엔드 월은 오는 28일까지 공연한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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