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1급 관료 → 외청장·산하 기관장 경로 균열
주요 국책은행장 인선 곧 시동
대부분 내부 출신 발탁 가능성
정부 인사 기조가 '모피아(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 출신 관료) 힘 빼기'로 뚜렷하게 옮겨가고 있다. 과거 기재부나 금융위 관료 출신이 차지하던 주요 외청장 자리를 최근 내부 출신 인사들이 꿰찬 데 이어 한국산업은행 회장까지 내부 출신 인사가 등용됐다. 기관장의 임기 만료로 곧 임명 예정인 수출입은행이나 신용보증기금 등에도 내부 출신이 등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9일 산업은행 회장에 이재명 대통령의 중앙대학교 법학대학 동문인 박상진 전 산업은행 준법감시인을 내정했다. 전직 금융 관료가 아닌 내부 출신이 발탁된 것은 1971년 산업은행이 출범한 이후 처음이다. 앞서 차관급인 3개 청(통계청·조달청·관세청)의 기관장 역시 모두 조직 2인자(차장)인 내부 출신이 꿰찬 데 이어 산하기관장까지 내부 인사가 발탁된 것이다. 기재부 1급 → 외청장 → 차관으로 이어지는 인사 경로에 균열이 난 것이다.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 역시 내부 출신인 윤창렬 전 국무조정실 1차장이 임명됐다. 역대 국무조정실장(국무총리실장 포함)들이 대부분 기재부(기획예산처·재정경제부 등 포함) 출신이었는데, 윤 실장이 첫 내부 출신 국무조정실장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러한 흐름은 향후 산하기관장 인사에도 그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을 키우고 있다. 금융당국 수장 인선이 마무리되면서 주요 국책은행을 비롯한 산하기관장 인선 작업도 곧 시동을 걸 예정이다. 대부분 내부 출신이 발탁될 가능성이 크다.
향후 산하기관장들 내부 출신 발탁 가능성 높아
기재부 산하기관으로 신임 행장 임명을 앞둔 수출입은행 역시 내부 출신이 중용될 가능성이 높다. 수출입은행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대학 시절에 가까웠던 윤희성 전 행장의 임기 만료로 현재는 안종혁 대행(현 수출입은행 전무) 체제에 있는데, 내부 인사인 안 대행이 그대로 행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조폐공사의 성창훈 사장, 한국투자공사(KIC)의 박일영 사장, 한국재정정보원의 윤석호 원장 등도 기재부 출신이어서 임기가 끝나면 내부 출신이 발탁될 수 있다. 다만 임기 만료는 성 사장이 2026년, 방 사장이 2027년, 윤 원장이 2028년으로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금융위 산하 기관으로는 산업은행에 이어 IBK기업은행, 신용보증기금, 예금보험공사 등이 신임 기관장 임명을 앞두고 있다. 기업은행장은 2023년 1월 임명돼 임기 만료를 앞둔 올해 연말 새 행장을 선임해야 한다. 2010년 이후 윤종원 전 행장을 제외한 4명이 모두 내부 출신이 발탁되어 왔던 만큼 새 행장도 내부 승진 가능성이 점쳐진다.
신용보증기금과 예금보험공사의 수장은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인사들인 만큼 교체 가능성이 높다. 신용보증기금은 전 기재부 기조실장을 거친 최원목 이사장이 지난달 임기가 만료되면서 새로운 수장을 임명해야 한다.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은 대부분 기획재정부 등 관료 출신이 맡아왔다. 예금보험공사는 2022년 11월 취임한 유재훈 사장의 임기가 오는 11월 만료된다. 그는 재무부, 재경부 출신으로 기재부 국고국장과 금융위 상임위원을 지낸 대표적 관료 출신 인사다. 10월 후임 절차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임기가 상당 기간 남은 주택금융공사도 리더 교체 가시권에 있다. 전임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만큼 교체 압박이 클 것으로 보인다. 김경환 주금공 사장은 지난해 9월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돼 임기를 이어가고 있다. 김 사장은 서강대학교 교수 출신으로 박근혜 정부에서 국토부 1차관을 지냈고 윤석열 대선 캠프에 합류해 부동산 공약 및 정책 입안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
자산관리공사의 경우에는 새 정부 출범 직전인 올해 5월 임명된 정정훈 사장이 기재부 관료(직전 세제실장) 출신이긴 하지만, 임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전 정권 색채가 옅은 만큼 사장직을 그대로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예탁결제원은 금융연구원 출신인 이순호 사장이 2023년 3월 임기를 시작해 2026년 3월까지 3년 임기를 마치는 만큼, 내년 초부터 후임 인선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서민금융진흥원장은 금융연구원 출신 이재연 원장이 2022년 1월부터 원장을 맡고 있는데 올해 1월 임기가 만료됐지만, 후임자가 정해지지 않아 직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기술보증기금은 김종호 이사장이 문재인 정부 시절 임명돼 지난해 11월 임기 만료 이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어 유임 가능성이 있다. 한국거래소는 재경부와 금융위를 거친 관료 출신 정은보 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해 2월 새로 취임해 2027년까지 임기를 지킬 것으로 보인다.
관료 출신이냐 내부 출신이냐 각각 장단점 있어
그동안 기재부와 금융위 산하 기관장에 관료 출신이 임명됐던 것은 어느 정도 특혜 성격이 있었다. 기재부와 금융위의 전신은 옛 경제기획원과 재무부, 그 뒤의 재정경제원, 재경부와 기획예산처 등으로 이들 부처는 경제 엘리트 관료들의 집합소였다. 행정고시 재경직의 최선호 부처이기도 했다. 이들 부처 출신들은 타 부처에 비해 승진이 늦기도 했고, 핵심 부처에서 일했다는 것에 대한 보상 성격으로 산하기관 기관장에 임명했던 것이다.
특히 금융 관련 공공기관들은 일반 공공기관과 달리 연봉이 높고 역할과 비중이 크다는 점에서 이들 기관장 자리는 알짜로 꼽혔다. 모피아(Mofia)라는 명칭도 금융을 담당했던 옛 재무부(MOF)와 마피아의 합성어다. 모피아는 좁게는 옛 재무부, 재경부의 금융 관련 부서를 언급하는 말이지만 넓게는 부처 전체로 인식됐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산하 기관장을 대부분 관료 출신이 독차지했지만 그 이후에는 '아주 좋은 자리'라는 게 알려지면서 정치권이나 대선 캠프 출신들이 낙하산으로 기관장에 내려오기 시작했다. 정권과 관련 있거나 정치권에 연줄이 있는 내부 출신이 기관장을 맡기도 했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관료 출신이 산하 기관을 옮겨가며 두 번 또는 세 번 기관장을 역임하기도 했는데 정치권과 대선 캠프 출신의 '자리 차지'가 많아지면서 관료 출신은 한 번 기관장 정도에 만족해야 하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민간 금융사에서 모피아의 능력을 높이 사서 이들을 최고경영자(CEO)로 등용하기도 했다.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 임종룡 현 우리금융지주 회장, 성대규 동양생명 사장(전 신한생명 사장) 등이 대표적이다.
산하 기관장을 관료 출신으로 하느냐, 내부 출신으로 하느냐는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능력과 역량이 뛰어난 관료 출신이 기관장으로 오면 소관 부처와 소통이 잘되고 내부 개혁 동력이 생겼다. 반면 업무에 익숙지 않아 임명되고 6개월, 임기 만료 직전 6개월은 허송세월이라는 비판도 있다. 내부 출신이 기관장이 되면 거의 모든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고 조직 단합과 사기 진작에도 긍정적이다. 반면 노조와 타협한다든지, 기존 관행을 답습한다든지 하는 '서로 좋은 게 좋다'는 식의 나눠 먹기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한다.
세종=이은주 기자 golde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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