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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tage]하이힐 신은 뺑덕·향락에 눈뜬 심봉사…누아르로 재해석한 '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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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극단 신작 '심청'
원작 파격적으로 해석

국립창극단의 신작 '심청'은 누아르 특유의 분위기를 진하게 풍긴다.


극은 심청의 어머니 곽씨 부인의 장례식 장면으로 막을 시작한다. 요나 김 연출은 2022년 대구국제오페라축제 '니벨룽의 반지', 지난해 국립오페라단 '탄호이저'에서처럼 라이브 카메라를 활용해 무대의 세밀한 부분을 영상으로 관객에게 보여준다.

곽씨 부인의 장례식 장면에서 카메라 렌즈는 아기 심청을 안고 있는 심 봉사를 향한다. 심 봉사는 검은 안경을 쓴 채 꾸벅꾸벅 졸고 있다. 상주임에도 슬픔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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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심 봉사에게 뺑덕어멈이 다가온다. 세련된 치마 정장에 하이힐을 신고 선글라스까지 꼈다. 장례식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복장. 뺑덕어멈이 심 봉사, 조문객들과 장례식이라는 현실 공간에 같이 존재하는 인물인지조차 의심스럽다. 무대 상단을 채운 스크린에 흑백 화면으로 처리된 심 봉사와 뺑덕어멈의 모습은 누아르 영화의 한 장면과 다름없다.


누아르는 사회 윤리에 반하는 소재를 다룬다. 요나 김은 원작 속 비윤리적일 수 있는 면모들을 부각하며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다. 뺑덕어멈은 대표적인 예다. 그는 심청을 장 승상댁 부인에게 수양딸로 보내며 돈을 챙긴다. 물에 빠진 심 봉사를 구하는 화주승 또한 그의 딱한 사정보다는 공양미 삼백 석에 더 관심을 두는 태도를 보인다. 쌀 삼백 석을 공양하지 않으면 앉은뱅이가 될 것이라고 숫제 협박조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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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봉사와 심청의 관계에서도 비정함이 엿보인다. 심 봉사는 딸이라면 공양미 삼백 석쯤은 당연히 마련해야 한다는 투로 심청에게 말한다. 심청은 어떻게 그런 식으로 말을 할 수 있냐는 듯 그대로 고꾸라진다. 그런 심청이 아버지를 위해 결국 자신을 희생하는 이유는 죄책감이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사무친 심청은 잠든 심 봉사의 목을 조르려는 듯한 행동을 보인다. 이 모습을 뺑덕어멈이 아무 소리 없이 지켜보고, 심청은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선다. 한순간이나마 불온한 마음을 품은 점에 가책을 느낀 듯 인당수에 빠지는 심청의 모습이 이어진다.


원작에서 심청이 즐기는 용궁 생활은 심 봉사의 향락으로 대체된다. 심청이 아니라 심 봉사가 용궁 생활을 하는 셈이다. 심청이 인당수에 빠진 뒤 심 봉사와 뺑덕어멈은 큰돈을 벌어 호화로운 생활을 즐긴다. 뺑덕어멈은 침대 위에서 돈다발을 흩뿌리며 기뻐하고, 심 봉사는 여색에 취해 흥청망청한다. 극은 심 봉사에 대한 처절한 응징으로 막을 내린다. 눈을 뜬 심 봉사가 결코 보고 싶지 않았던 장면을 보면서 극한의 고통을 느낀다. 요나 김 연출은 지난 6일 공연 뒤 관객과의 대화에서 심 봉사가 다시 세상을 보고 싶지 않다며 스스로 눈을 찌르는 오이디푸스적인 결론도 고민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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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tage]하이힐 신은 뺑덕·향락에 눈뜬 심봉사…누아르로 재해석한 '심청' 원본보기 아이콘

흔히 누아르라 하면 인간의 인간에 대한 폭력이 연상된다. 창극 심청에서 폭력적인 활극은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심청이 거래의 대상이 되는 상황을 노골적으로 묘사해 돈이 마치 칼처럼 사람을 찌르고 베는 비정한 현실을 보여준다.

요나 김 연출이 오페라를 주로 연출하다 보니 판소리를 활용하지만 창극보다 오페라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국악기뿐 아니라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등 서양 악기를 함께 사용되며, 특히 극의 비정한 분위기를 고조시킬 때마다 첼로 선율이 부각돼 이질적인 느낌도 없지 않다. 하지만 심청이 국립극장이 새롭게 기획한 '창극 중심 세계 음악극 축제'의 개막작이자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둔 작품임을 고려하면 영리한 선택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원작의 비정한 면을 부각해 새로운 극적 긴장감을 만들어낸 점은 흥미롭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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