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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美 투자기업 간담회, 소통 대신 벽만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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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美 투자기업 간담회, 소통 대신 벽만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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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진출한 기업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대체로 언론에서 나온 정도로 논의가 오갔습니다."


전날인 8일 박종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차관보 주재로 열린 대미 투자기업 간담회에 참석한 기업 관계자는 덤덤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자국민 300여명이 미국 이민국에 구금된 비상 상황에서 산업부가 처음 만든 간담회였다. 그러나 현장의 분위기는 긴급 대책 논의보다는 형식적 자리에 더 가까워 보였다는 게 참석자들의 평가다.

회의는 3시간 가까이 이어졌지만 결과는 원론적이었다. 박 차관보는 "기업들이 부당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관계 부처와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작 구금된 직원에 대한 대처나 특별 비자 쿼터 신설과 같은 핵심 현안에 대해선 "외교부에 문의하시는 게 더 낫다"는 말만 반복했다. 외교부와 산업부는 모두 그간 언론의 물음에 서로의 소관이 아니라며 책임을 떠밀어왔는데, 한국인 직원들이 구금되고도 같은 입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이 자리가 형식적이었다는 건 산업부 관계자의 발언에서도 확인됐다. 그는 긴급회의 개최 배경에 대해 "대통령실에서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언급해 급히 열었다"고 밝혔다. 자국민 구금 사태의 심각성보다 대통령실 지시가 먼저였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이날 간담회장에 도착한 관계자들은 "무슨 얘기를 할지도 모르고 급하게 왔다"고 털어놨다. 간담회 시작 전까지도 구체적인 의제를 공유받지 못한 채 허겁지겁 참석했다는 얘기다.


간담회 전 외교부 관계자도 참석한다는 소식에 두 부처 간 긴밀한 논의가 이뤄질 것이란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배석자는 4급 서기관이었다. 수백 명이 구금된 사건의 중심에서 특별 비자 논의가 시급한 상황인 점을 고려하면 더욱더 책임 있는 실무자가 나왔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날 박 차관보는 이번 만남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비슷한 형태의 소통을 이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기업들이 이미 수년 전부터 미국 비자 문제 해결을 호소해 온 점을 감안하면 차관보 발언은 그동안 기업 목소리에 귀를 닫았다는 의미와 다를 게 없다. LG에너지솔루션 등 여러 제조기업은 그간 미국 출장자들에 대한 보호 조치를 강하게 요구해왔다.


자국민 수백 명이 구금된 지금 필요한 것은 '소통 약속' 같은 선언이 아니다. 부처 간 장벽을 깨고 산업부와 외교부의 책임 있는 실무자들이 직접 머리를 맞대 근본적인 해법을 내놓는 것이다. 책임 회피와 보여주기식 간담회로는 더 이상의 피해를 막을 수 없다.





심성아 기자 hea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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