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정 녹색광선 대표 인터뷰
"독자와 공감대 형성할 때 가장 기뻐"
"앞으로도 아름다움 지키는 일하고 싶어"
지난달 18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 골목의 한 건물 꼭대기 층에서 1인 출판사 '녹색광선'의 박소정 대표를 만났다. 하얀색으로 도배된 사무실에 햇빛이 통창을 통해 들어오자 따스함이 연출됐다. 사무실뿐만 아니라 곳곳에 놓여 있는 빨간색, 주황색, 초록색, 파란색 책에도 햇빛이 비치면서 공간에 색감을 더했다. 책들은 녹색광선이 2019년부터 내놓은 고전들이다. 공간이 보여주듯 박 대표는 말 그대로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는 1인 출판사 대표로서 사랑하는 것을 사람들이 공감하고 반응해줄 때마다 기쁨을 느낀다.
박 대표 경력의 시작은 책과 관련 없었다. 한 기업의 인사 업무 담당자였던 박 대표는 항상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재밌는 책을 읽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했던 일명 '책 덕후(마니아)'였다. 그의 취향이 1인 출판사의 성공까지 이어진 셈이다. 박 대표는 여성들에게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사업과 같은 영역을 도전했으면 좋겠다. 혹시 실패하더라도 그 경험은 자산이 되지, 독이 되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언제부터 책을 좋아했는가.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제 나이대인 사람들은 공감할 건데 부모님이 어릴 때 세계문학전집을 사주셨다. 대신 집이 여유가 있는 편이 아니라서 아버지께서 헌책방에 있던 1978년에 출간된 세계문학전집을 들고 오셨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그 책을 읽으면서 전 세계 방방곡곡을 다니는 기분을 느꼈다. 매일매일 그 책을 읽으면서 책이 사람을 다른 세계로 데려다줄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체감했다.
-첫 경력은 책과 관련된 곳이 아니다.
맞다. 입시 지원 플랫폼 업체의 인사 담당자로 근무했다. 회사에는 300여명이 있었는데 대부분 개발자였다. 인사라는 업무는 매력적이었다. 사람을 더 나은 상황으로 발전시켜준다는 건 보람찬 일이었다. 만약 그 회사를 계속 다녔다면 퇴직 후에 교육 관련 업체나 사람들 앞에서 리더십과 관련해 강의하는 강사 쪽으로 진로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회사를 그만두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30대에 들어서서 직업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경제적인 것, 지속성 등도 생각했지만 무엇보다 이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돌아봤다. 40살을 넘어설 때는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었으면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타인의 이야기를 오래 듣다 보니 나의 정체성이 희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생각해보니 결국 책이었다. 책을 읽고 다른 사람에게 추천했는데 그 사람이 재밌게 읽으면 행복했다. 회사에서도 제가 책을 설명하면 사람들이 사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처음엔 고민했던 건 서점이다. 마침 회사를 그만둘 때 작은 서점들이 유행이었다. 하지만 작은 서점이 인기를 끌려면 책과 서점 주인의 정체성이 일치해야 한다. 나의 정체성은 계속 서점에 머무는 것과 맞지 않았다. 인사팀에서도 계속 내근을 했는데 제2의 인생에서도 내근을 이어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또한 서점은 손님들에게 노출되는 공간이다 보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꾸밀 순 없다. 그래서 바깥에서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출판사를 택했다.
-1인 출판사를 한다고 했을 때 가족들은 걱정하지 않았나.
이제 가족과 상의해서 결정하기엔 너무 어른이지 않나. 남편도 별말 안 하고 "알아서 해. 대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라"고만 했다. 하지만 1인 출판사를 열고 첫 책으로 오노레 드 발자크의 '미지의 걸작'을 내기로 했을 때 남편은 속으로 완전히 망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남편만 이런 생각을 한 게 아니다. 주변에서도 다 미지의 걸작을 출판하는 것을 말렸다. 하지만 문제 될 게 없다고 생각했다. 1인 출판사를 준비하면서 들어가는 돈이라고 해봤자 퇴직금 정도였다. 퇴직금을 잃는 건 내 인생의 큰 타격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의 건강에 큰 타격을 줄 만한 게 아니라면 모든 경험은 인생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첫 출판 책으로 미지의 걸작을 고른 이유는 무엇인가.
첫 책을 통해 회사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무 책이나 출판할 수 없지만 1인 출판사에 좋은 원고를 줄 작가는 없다. 아울러 판권을 사 오는 방법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현 상태에서 접근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원고가 무엇일까 고민하고 내린 답이 고전이었다. 고전은 오랜 시간 동안 검증을 받아서 살아남은 책이다. 게다가 저작권이 소멸됐기 때문에 다른 원고에 비해 접근성이 높다.
대신 고전을 내놓는 대형 출판사와의 차별화가 필요했다. 나의 출판사는 어떤 정체성을 가져야 할지 고려했다. 그러면서 나는 어떤 책을 만들고 싶은지 생각했다.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은 사랑과 아름다움, 욕망이 다 섞인 책이었다. 그래서 고른 책이 미지의 걸작이다. 이 책은 앞서서 현대 미술을 예견한 책이다. 현대 미술이 본격화되기 전에 이런 소설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흥미를 끌었다. 아울러 당시의 독자보다 현대 미술을 자주 접한 현재의 독자들이 더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힘든 적은 없었나.
아직은 없다. 오히려 왜 늦게 시작했는지 후회스럽다. 회사원이라면 조직과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이 많이 생긴다. 그리고 그 변수에 끌려다니기에 십상이다. 하지만 창업을 하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 물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요소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가장 기뻤을 때는 언제인가.
독자와 같은 공감대를 형성할 때다. 신형철 작가의 저서 중에 '느낌의 공동체'라는 책이 있다. 문학은 이성보다는 주로 감정을 다룬다. 제 출판사의 책을 독자들이 사랑해준다는 건 하나의 감정 공동체를 경험하는 것과 같다. 이 공동체를 경험할 때마다 짜릿함을 느낀다. 그 짜릿함이 편집자들을 계속 일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혹시 본인이 직접 책을 쓸 생각은 없는가.
제 경험담을 전하는 정도를 쓸 수는 있겠지만 제가 책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책을 많이 읽다 보니 저의 글 쓰는 능력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아직은 책을 쓸 만한 수준에 한참 멀었다고 생각한다. 대신 편집자로서 좋은 원고를 골라 감정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행복하다. 앞으로도 이런 방향으로 계속 살아갈 것 같다.
-녹색광선에서 나온 책 중에 '위대한 개츠비'로 유명한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선 '행복의 나락'이 있다. 이 책에는 "삶의 후반전이란 삶에서 이것저것 잃어가는 기나긴 과정"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본인은 삶의 후반전에서 어떤 것을 잃고 어떤 것을 꼭 지키고 싶은가.
당연히 젊음을 잃을 것이다. 특히 문학은 젊음을 잃어가는 것에 대한 내용을 자주 다룬다. 노력은 하겠지만 젊음을 잃어가는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연습을 이 책을 읽으면서 하게 됐다.
하지만 아름다움은 꼭 지키고 싶다. 여기서 아름다움은 외적 아름다움만을 한정 짓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라는 영토가 있다. 이 영토에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취향도 있고 책을 꾸미는 문장도 있다. 앞으로도 아름다운 취향과 문장을 지키는 일을 하고 싶다.
-사업 또는 출판업을 생각하는 여성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는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사업을 도전했으면 좋겠다. 나의 확고한 취향과 감정의 공동체를 만들 자신이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혹시 실패하더라도 그 경험은 자산이 되지, 독이 되진 않는다. 당연히 책의 작가들이 출판업에서 중심이 되지만 이제는 어떻게 책을 기획하고, 책이 나오는 과정에도 주목하는 시대가 왔다. 지금이야말로 출판업에 도전하기 좋은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많은 돈을 거머쥐진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성공이라는 게 꼭 돈과 명예에만 한정되는 건 아니다. 나만의 영토를 굳건히 다져가겠다는 뜻을 가진 분이 도전한다면 출판업은 굉장히 매력적인 일이다.
▶박소정 녹색광선 대표는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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