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담긴 기록 나누며 우정 형성
교육 현장서도 활용된 전통적 방식
정보 홍수 속 초점행위 중요성 대두
마음챙김·자아성찰 심화할 기회
요즘 청년들 사이에선 '교환 독서'가 인기를 끌고 있다. 교환 독서는 책 한 권을 둘 또는 여러 사람이 차례로 돌려 읽으면서 자유롭게 밑줄도 긋고 행간이나 여백에 메모도 남기며 함께 감상을 나누는 독서 방법이다. 친한 친구 몇이 시작하거나, 소셜미디어로 사람을 모아서 책을 돌려 읽는 식으로 진행된다. 한때 사람들 입에서 흔히 오르내렸던 '취미는 독서'라는 말이 낯설어지고, 주변에 책 읽는 사람을 보기가 힘들어진 시대에 무척 반가운 일이다.
책을 읽으면서 무심코 긋는 밑줄과 끼적여 남기는 메모는 그 책의 내용과 의미를 이해하는 능동적 행위이자, 그 사람의 개성과 취향, 날것의 감각과 생각을 드러내는 내밀한 증거다. 이를 교환하는 일은 가장 깊은 차원에서 우정을 나누고 사랑을 맺는 행위에 속한다. 어릴 때 친구랑 한 일기장을 돌려쓰면서 우정을 북돋우던 경험과 무척 비슷하다.
교환 독서 자체가 새로운 건 아니다. 이는 학교 독서 교육에서 예전부터 활용해 온 방법으로, 시나 소설 같은 문학 작품을 읽고 이해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왜 학교에서 문학을 읽어야 하는가(노르웨이숲)'에서 문해력 연구의 권위자인 데니스 수마라 캐나다 캘거리대 교수는 "문학 읽기가 깊은 통찰을 가능하게 하는 초점 행위"라면서, 이를 촉진하는 방법으로 '교환 독서'를 권한다. 교환 독서가 학생들이 성적을 위해 억지로 작품을 읽고 정해진 해석을 받아들이는 수동적 독서에 머무르지 않고, 작품에 깊이 몰입해서 적극적으로 작품과 상호작용하고, 그 의미를 체화하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정보가 넘치는 디지털 사회에서 이런 능동적 의미 이해는 한 인간의 삶에 무척 중요하다. 정보나 지식이 가져다주지 못하는 상상력과 해석력, 통찰력과 창조력을 우리 안에서 자라나게 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물이나 사람, 경험이나 사건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에 대한 즉각적 이해나 직관적 판단을 버리고 다양한 맥락에서 이를 끈질기게 살피면서 집중하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초점 행위란, 어떤 것에 온전히 몰입해 그 의미를 거듭 성찰하는 걸 말한다. 그 사유의 결과가 쌓여 어느 순간 우리 안에서 불현듯 떠오르는 이해가 통찰이다. 거꾸로 말해, 통찰을 얻으려면 반드시 초점 행위를 거쳐야 한다. 사람은 대개 자기 직업이나 좋아하는 일에 대해 나름의 통찰을 품고 있는데, 이는 긴 세월에 걸쳐 그 일을 반복하면서, 그 가치와 의미를 성찰하는 초점 행위를 거듭해 온 결과다.
몇 가지 키워드만 입력하면 누구나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어떤 것이든 묻기만 하면 인공지능(AI)이 곧장 그럴듯한 답변을 내놓는 시대에 초점 행위는 더욱 중요하다. "정보에 대한 접근이 이해를 보장"하지도 않고, "깊은 통찰을 위한 조건을 창출"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해하려면 해석이 필요하고, 해석은 학습된 활동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오랜 시간 나의 몸, 나의 마음에 체화된 의식과 무의식 없이 어떤 해석도 존재할 수 없다.
자기 삶의 세부에서 생겨나는 온갖 일과 사건의 의미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반복적 성찰이 쌓여서 이해와 해석의 토대를 이룩한다. 일은 기계에 맡겨서 자동화할 수 있고, 지식은 AI에 의뢰할 수 있어도, 그 일을 왜 하는지 그 지식이 나에게 무얼 뜻하는지는 오로지 나만 알 수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의미와 가치에 대한 오랜 탐구가 층층이 겹쳐서 이루어지는 깊은 통찰은 쉽게 얻을 수 없다는 점이다. "깊은 통찰은 사람들과의 관계, 사람들이 만든 사물들과의 관계, 인간 너머 세계와의 관계"를 중층적으로 살피고 해석하는 고된 작업을 거쳐서만 비로소 생겨나는 까닭이다.
더욱이 인생은 한 차례뿐이므로, 일정한 거리를 두어 자기 삶의 맥락을 살피고, 그 의미와 가치를 돌이키는 일은 매우 어렵다. 온갖 종교에서 명상이나 묵상을 통해 자아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고 하는 건 자기 삶의 진정한 의미를 살피라고 권면하는 일과 똑같다. 문학을 읽는 것 역시 그런 방법의 하나다. 문학작품을 읽을 때 우리는 타인의 감각과 언어, 감정과 생각, 상황과 사건을 받아들여 다른 삶을 살아본다. 이렇듯 타인이 되어 보는 경험은 내 삶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일과 똑같다. 이런 반성적 경험이 쌓이면 자연스레 삶의 의미를 그 근원까지 살피는 깊은 통찰이 내 안에서 일어난다. 문학은 혼자 읽을 때도 자연스레 '초점 행위'로 이어진다.
하나의 문학작품을 같이 읽으면서 밑줄과 메모를 통해 다양한 생각을 함께 나누는 교환 독서는 이런 깊은 통찰을 가져오는 초점 행위를 더욱더 촉발한다. 나와 다른 문장에 그은 밑줄, 나와 다른 생각을 담은 메모, 책의 여백에 아무렇게나 그린 문양이나 그림은 내 머릿속에서 다채로운 상상을 불러일으키고, 다양한 각도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법을 알려준다. 이는 내 자아를 확장하는 것, 내 안에 갇혀 있는 상상력과 해석력을 해방하는 일이다.
교환 독서는 책을 여러 번 읽으면서 그 뜻을 거듭 숙고하는 일이고, 내가 몰랐던 생각을 일깨우고 내게 없던 감각을 자극하는 일이다. 이는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해석을 위한" 공간을 내 안에 만들어 낸다. 자기를 비추어 보는 성찰의 거울이 있는 사람만이 자기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법이다. 더욱이 문학 작품은 인생이나 사건의 전말을 담고 있다. 문학을 교환해 읽는 일은 삶의 가치를 여러 번 곱씹어 생각하고, 사건의 의미를 다양한 각도에서 되새기도록 만든다. 이런 행위를 통해서 사람들은 한 작품이 자기 삶에 온전히 통합되면서 생겨나는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고, 더 나아가 어떤 경험이나 사건을 이해하고 해석해서 통찰에 이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
수마라는 교환 독서를 통해 텍스트를 다시 읽는 일은 "명상과 유사한 형태의 마음 챙김 상태를 형성한다"고 말한다. "독자는 문학적 참여를 통해 생겨난 공통 공간에서 새로운 정보와 해석을 계속 수집"하고, 타인의 밑줄이나 메모를 통해 자기가 평소 눈여겨보거나 신경 쓰지 않았던 것들을 알아차리면서, 이를 바탕으로 자기 삶을 깊이 있게 살피게 된다. 교환 독서는 결국 나를 관조하는 눈을 내 안에 마련하는 것이다. 인간은 이처럼 자기를 성찰하는 눈 없이 좋은 삶을 살 수 없다.
장은수 출판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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