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중국 가면 한국 기업에 아무도 관심이 없어요. 이제 한 수 아래로 봅니다."
최근 만난 한 중견기업 대표는 글로벌 경쟁 속에서 한국 기업들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음을 실감하게 하는 경험을 전했다. 농담처럼 들리지만 웃을 수 없는 상황이 그의 말에 담겨 있다. 씁쓸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중국 기업 관계자들 사이에선 '공장에 불도 끄지 않고, 집에도 가지 않으며, 잠도 자지 않는다'는 말이 통용된다. 실제로 그런 방식으로 운영되는 회사들도 적지 않다. 중국 대기업 라인은 아침 6~9시에 출근해 밤늦게까지 이어지고, 자정을 넘기는 경우도 흔하다. 주 6일 근무는 기본이며 계산하면 주 72시간 이상이다. 한국에서는 법으로 불가능한 수치다.
따라잡기 힘든 차이다. 이는 결국 구조적 격차로 굳어진다. 노동 시간과 강도에서 뒤지고 인력 규모에서 밀리며 속도 면에서도 따라잡기 어렵다. 상당 분야에서 기술도 이미 추월당한 단계다. 현장에선 "못 이긴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단순히 열심히 해서 될 수준이 아니라 경쟁의 규칙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중국이 걷고 있는 길을 선택할 수 없다. 그것은 되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나 가능했던 일이다.
그렇다면 이 경쟁에서 어떤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까. 한국이 인구와 노동시간에서 밀리는 것은 현실이지만 해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양질의 데이터와 독점 기술을 언급했다. 제조업 역사를 쌓아오며 축적한 방대한 데이터와 연구개발(R&D) 경험을 활용하면 길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공장의 센서와 장비에서 쏟아지는 데이터를 분석해 효율을 높이고, 설계 단계에서 오류를 줄여 공정을 단축하면 생산성이 배가된다. 특히 인공지능(AI)과 결합된 데이터 활용 능력은 한국이 이미 강점을 가진 분야로, 이를 체계적으로 산업 현장에 접목한다면 '작은 인구로 큰 성과를 내는 구조'를 현실화할 수 있다. 한국은 이미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데이터와 기술 자산을 확보하고 있다. 이 장점을 토대로 자동화된 공장을 24시간 가동하면서 인간은 설계와 검증에 집중하는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독점 기술을 가진 일본의 사례도 주목할 만한 모델이다. 특정 산업에서 '절대 지분'을 차지한 기업들이 일본에는 존재한다. 반도체 소재를 만드는 아지노모토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의 패키징 소재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반드시 써야 하는 핵심 소재다. 공급이 끊기면 세계적 대기업조차 제품을 만들 수 없다. 일본은 이처럼 글로벌 공급망에서 대체 불가능한 기업을 육성해 자리를 지켜왔다. 소재·부품·장비 각 분야에서 틈새를 파고들어 '없으면 안 되는 존재'가 되는 전략이다. 결국 규모로 맞설 수 없는 한국이 살아남을 길은 세계 시장에서 특정 공정을 지배하는 위치를 차지하는 데 있다.
한국의 선택지는 결국 좁혀진다. 중국처럼 노동 강도로 밀어붙일 수는 없다. 앞서 말했듯 그 길은 돌아갈 수도, 돌아가서도 안 되는 길이다. 남은 방법은 일본처럼 독점 기술을 확보하는 것뿐이다. AI 기반 자동화와 특정 분야의 독점적 기술, 이 두 축이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생존 전략이다. 데이터와 기술을 쌓아 '대체 불가능한 한국'을 만드는 것, 그것만이 한 수 아래 취급을 넘어설 마지막 해법이다.
박소연 산업IT부 차장 mus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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