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롯데콘서트홀. 평소 공연장에서 보기 힘든 고악기 '비올라 다 감바'가 무대에 등장했다. 비올라 다 감바는 첼로와 크기와 형태가 비슷하지만 현의 개수가 6~7개로 4개인 첼로보다 많다. 다른 현악기보다 소리가 작아 서서히 공연 무대에서 밀려났지만 명상적이고 부드러운 특유의 매력적인 음색을 지닌 악기이기도 하다.
이날 비올라 다 감바로 연주한 곡은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6번. 롯데문화재단이 매년 여름 선보이는 클래식 음악축제 '클래식 레볼루션'의 이틀째 무대로 보기 드문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6곡 전곡 연주 공연이 마련됐다.
2020년 시작된 클래식 레볼루션에서 고음악을 연주하기는 올해가 처음이다. 고음악은 일반적으로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음악, 넓은 의미에서는 바흐와 헨델이 활약했던 바로크 시대의 음악까지 포함한다. 현대적 악기와 연주법이 등장하기 전의 음악을 뜻한다. 클래식 레볼루션은 올해 축제에서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와 쇼스타코비치보다 300년 이상 앞선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의 음악을 조명한다. 바흐의 음악을 조명하면서 비올라 다 감바의 음색을 감상할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된 셈이다.

고음악 연주단체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과 아폴론 앙상블 단원들이 지난달 29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연주를 마친 뒤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6곡은 비올라 다 감바를 비롯해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그래서 구하기가 쉽지 않은 여러 고악기가 사용돼 전곡 연주 무대를 보기 쉽지 않다.
이날 연주를 맡은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 관계자에 따르면 바흐가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에 사용한 클라리노 트럼펫과 비올리노 피콜로는 우리나라에 보유한 이가 없을 정도로 희귀하다. 그래서 이날 연주에서 클라리노 트럼펫은 '트럼펫 피콜로'로, 비올리노 피콜로는 그냥 '바이올린'으로 대체됐고 바흐가 사용한 사냥호른도 일반 호른으로 연주됐다. 대신 또 다른 고악기인 하프시코드, 비올라 다 감바, 리코더 등이 무대에서 매력을 뽐냈다.
올가을 유독 많은 고음악 무대가 예정돼 있어 눈길을 끈다.
클래식 레볼루션에 참여한 고음악 연주단체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은 오는 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세계적인 지휘자이자 하프시코드 연주자인 리처드 이가와 공연한다. 헨델의 수상음악 모음곡 2번 등을 포함해 헨델의 음악 세 곡을 연주하고, 바로크 시대 작곡가 아르칸젤로 코렐리(1653~1713) 요한 아돌프 하세(1699~1783)의 작품도 연주한다.
또 다른 국내 고음악 연주단체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은 3일 반포심산아트홀에서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로 유명하고, 바흐와 헨델보다 앞선 시대를 살았던 이탈리아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1678~1741)의 작품을 연주한다.
벨기에 출신의 세계적 지휘자 필리프 헤레베허는 직접 창단한 세계적인 바로크 음악 연주단체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를 이끌고 내한할 예정이다. 오는 1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마태수난곡'과 함께 바흐 종교음악의 양대 걸작으로 꼽히는 'b단조 미사'를 연주한다. 헤레베허는 서울에 이어 19일 대전예술의전당, 20일 아트센터인천에서도 공연한다.
마포문화재단도 지난달 22일 개막해 오는 12월6일까지 이어가는 'M 클래식 축제'에서 두 차례 바로크 음악 무대를 선보인다. 오는 26일 첼리스트 양성원 연세대 교수가 비올라 다 감바로 바흐 음악의 진수를 들려줄 예정이다. 양성원 교수는 피아니스트 엔리코 파체와 함께 바흐의 '첼로 모음곡 2번' 등을 연주한다. 10월2일 두 번째 무대는 벨기에의 바로크 음악 연주단체 일 가르델리노의 초청 공연으로 꾸며진다. 일 가르델리노도 '음악의 헌정' 등 평소 듣기 힘든 바흐의 작품을 들려줄 예정이다.
류태형 클래식음악 평론가는 고음악 연주가 많아진 배경에 대해 "극소수였던 원전 연주의 저변이 확대됐고 고음악을 공부하고 연주하는 사람도 늘고 연주단체도 많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또 "고음악 음반들을 많이 접한 팬들의 인식 변화도 중요했다"며 "고음악이 작곡가 당대의 원래 모습과 가까울 것이라는 생각이 영향을 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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