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쌀값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이달 들어 쌀 소매가격은 20㎏당 6만원을 웃돌았다. 80㎏으로 환산하면 24만원을 훌쩍 넘었다. 정부는 쌀값 상승 원인으로 '산지 유통업체의 재고 부족', 즉 시중에 유통되는 쌀이 적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쌀 산업은 '만성적 공급과잉' 상태임에도 시중에선 쌀이 부족해 가격이 뛰는 모순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3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7월 말 기준 정부창고에 보관 중인 쌀은 111만5000t 규모다. 국내산 73만2000t, 수입산 38만3000t이 창고에 쌓여 있다.
정부 창고에 막대한 규모의 쌀이 쌓여 있지만 시중에선 쌀이 부족한 상황이다. 민간 농업연구기관인 GS&J 인스티튜트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시장재고량은 21만6000t으로 전년 동기보다 46.2%(18만5000t) 감소했다. 강형준 GS&J 인스티튜트 연구원은 "이는 전월에 비해서 20만8000t 줄어든 것으로, 시장재고가 9월 상순에 소진될 것"이라며 "수확기(10월)까지 쌀값은 상승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분석했다.
공급 부족에 따른 쌀값 상승은 이미 예상됐었다. 정부는 지난달부터 홈플러스와 롯데마트, 이마트, 하나로마트 등 4개 대형마트에서 20㎏당 3000원을 할인하는 행사를 추진하는 한편 지난달 12일에는 정부양곡(벼) 3만t을 대여 방식으로 산지유통업체 등에 공급하고 있다.
이 같은 조치에도 쌀값 상승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통계를 보면 이달 1일 기준 20㎏ 쌀(상품) 소매가격은 6만256원으로 전월 대비 2.8%, 전년 동기보다 17.2% 뛰었다. 평년과 비교해도 13.9% 오른 가격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정부양곡 3만t 중 지난주까지 80%가 산지유통업체 등에 공급됐는데 지난주 비가 오면서 유통이 늦어지고 있다"며 "이번 주부터는 해당 물량이 본격적으로 시중에 공급돼 가격 부담이 완화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시중이 쌀이 부족한 근본적인 원인은 정부가 초과생산량의 4배가 넘는 물량을 지난해 이미 격리한 탓도 있다. 농식품부는 산지쌀값 안정을 위해 매년 쌀 수확기인 10월께 양곡수급안정위원회를 통해 시장격리(매입) 물량을 정한다. 2024년산 쌀 5만6000t이 초과생산될 것으로 예상하고 26만2000t을 격리했다. 농식품부는 "지난해 9~10월 산지쌀값이 4만3000~4만7000원 수준으로 낮아 쌀값 안정을 위해 초과생산량보다 많은 물량을 격리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과도한 시장격리가 쌀 공급량을 부족하게 만들었고, 3만t 추가 공급에 나섰지만, 시차 탓에 여전히 쌀값은 오르고 있다.
쌀가공식품의 소비 확대에 쌀 수요가 증가한 것도 이번 쌀값 상승의 배경 중 하나다. 한국쌀가공식품협회에 따르면 쌀가공식품산업 매출액은 2017년 4조9000억원에서 2023년 8조2000억원으로 67.3% 성장했다. 수출액도 같은 기간 7200만달러에서 3억100만달러로 318.1% 늘었다. 관련 산업 급성장에 가공용쌀 소비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국내 가공용쌀 소비량은 64만4000t으로 전년(62만t)보다 3.9%(2만4000t) 늘었다. 2020년(49만2000t)과 비교해서는 30.9%(15만2000t) 증가했다.
쌀가공식품산업이 성장세를 보이면서 가공용쌀도 부족한 상황이다. 여기에 정부가 식품기업의 민간 신곡 쌀 활용을 확대하기 위해 정부양곡 공급을 줄이면서 쌀 부족 상황이 심화하고 있다. 올해 정부관리양곡 가공용 공급량은 34만t으로, 지난해(35만8000t)보다 5.0% 감소했다.
쌀가공식품업계는 정부양곡 5만t 추가 공급을 정부에 요구한 상태다. 정부양곡의 국산 공급단가는 1㎏당 1000원, 수입은 600원이다. 민간 신곡 가격은 2300~2500원 수준으로 수입쌀 대비 4배가량 비싸다. 업계에서는 가격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조상현 쌀가공식품협회 사업운영본부장은 "정부가 2029년까지 가공용쌀 정부양곡 공급 규모를 31만t까지 단계적으로 감축하려고 해 쌀가공업계의 원료 확보 차질과 경쟁력 악화 위험이 크다"며 "게다가 시중에 민간신곡 부족·가격 급등 탓에 이를 가공용원료로 사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당장 부족한 물량을 정부가 추가 공급해 생산 연속성과 수출·납품계약 이행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농식품부도 추가 공급을 검토하고는 있다. 다만 즉석밥 등이 밥쌀과 경쟁하는 품목이라는 점에서 가공용쌀 추가 공급이 밥쌀 소비를 축소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밥쌀 소비가 줄어 공급초과가 되면 가격 하락이 불가피하고 이 경우 가격 안정을 위해 정부가 추가 매입에 나서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어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가공용쌀 정부양곡 공급 축소와 최근 시중에 쌀이 부족해 신곡 가격이 오르면서 쌀가공업체의 어려움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다만 가공용쌀이 필요한 업체의 규모와 내수·수출 여부, 품목 등을 파악하고 있는데 이를 고려해 이르면 이달 중 정부양곡 추가 공급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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