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규제 횡행해도 끊임없이 규제 만들어져
민간주도로 규제개혁해야…성장 단초 될 것
'혼인을 할 때는 신랑이 먼저 입장하고, 다음 신부 입장을 한 뒤 신랑과 신부가 맞절한다.'
'상주는 배우자나 장자가 된다. 장삿날은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망한 날부터 3일이 되는 날로 한다.'
대한민국에 이렇게 하라고 정해놓은 법령이 있을까. 실제 있다. 법령에는 결혼식을 할 때 신랑이 먼저 입장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혼수는 검소하고 실용적인 것으로 하되, 예단은 혼인 당사자의 부모에게만 보내야 한다. 장례식에서 누가 상주가 되는지도 정해뒀다. 상복은 한복일 경우에는 흰색, 양복일 경우에는 검은색으로 해야 한다. 이를 지키지 않았다면 당신은 법령을 위반한 것이다.
대통령령으로 정해진 '건전가정의례준칙' 이야기다. 이 준칙은 '건전가정의례의 정착 및 지원에 관한 법률' 5조 4항에 따라 건전가정의례준칙의 내용과 그 보급 및 실천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마지막으로 개정된 것은 2021년 1월5일이다. 이 법에서 '가정의례'란 가정의 의례로서 행하는 성년례, 혼례, 상례, 제례, 회갑연 등을 포함한다.
"가정의례준칙을 아느냐?"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다. 돌아온 답은 대동소이했다. 중장년층은 "그게 아직 남아 있어?"라고, 젊은이들은 "그게 뭐냐?"라고 했다. 의아해하는 표정은 모두 같았다.
가정의례준칙은 1969년 1월 '가정의례준칙에 관한 법률'이 공포되면서 시행됐다. 이를 위반한다고 규제하거나 강제하지 않는 권고적, 훈시적 법률이었다. 그러나 1973년 6월 '가정의례준칙'과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벌칙조항을 신설해 법적으로 가정의례를 강제하려고 했다. 가난했던 시절 유교적 전통에 남아있던 허례허식을 없애려던 조치였다. 이 법령은 1999년 벌칙이 없는 '건전가정의례준칙'으로 다시 바뀌었다.
가정의례준칙은 이미 법령으로서의 생명을 다했다. 56년 전 만들어놓은 규제가 아직 유령처럼 남아있는 것이다. 우리 법령에는 이런 규제들이 차고 넘친다. 규제는 한 번 만들어지면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다. 다른 한편에서는 규제가 쉴 새 없이 생산되고 있다. 국회와 정부가 만들어내는 법령 상당수가 그렇다.
지난 8월 마지막 주에 국회에 발의된 법안만 205건이었다. 이 가운데 32.7%에 달하는 67건이 규제 법안으로 분류된다. 좋은규제시민포럼이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22대 국회가 개원한 후 65주 동안 총 1만1532건의 법안이 발의됐는데, 이 중 규제 법안은 3626건이었다. 매주 평균 177건의 법안이 발의됐고, 56건이 새로운 규제인 셈이다.
역대 정부는 대통령이 나서서 규제를 뿌리 뽑겠다고 공언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 시작된 규제 개혁은 이후 정부에서 '전봇대 뽑기' '손톱 밑 가시 제거' '규제샌드박스' 등의 슬로건으로 추진됐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제는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규제 체제를 바꾸는 것이다. 해서는 안 되는 것을 지정하고, 나머지는 모두 허용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매번 규제 개혁은 대통령 눈치 보고 시늉만 내다 조용히 잊혔다.
규제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민간 주도의 독립적 규제 개혁 기구가 필요하다. 규제 전문가들이 나쁜 규제를 하나하나 찾아 없애도록 해야 한다. 매일 생산되는 규제를 점검해 국민 생활과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평가해야 한다. 부정적 영향이 큰 규제는 대통령과 국회의장에게 전달해 법령으로 명문화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그래야 규제 개혁에 한발 다가설 수 있다. 규제 개혁이야말로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결정적 단초가 될 것이라는 점을 이재명 대통령에게 말해주고 싶다.
조영주 정치사회 매니징에디터 겸 사회부장 yjc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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