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분식회계 사건 이후 민·형사 소송 대응
보험사 "법률이슈 알고서도 모른척 보험가입"
2014년 분식회계 사건으로 민·형사 법률비용 수억원을 지출한 대한전선 과거 경영진이 "임원배상책임보험(D&O) 계약에 따라 보험금을 달라"며 보험사에 민사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31부(재판장 남인수)는 최근 대한전선 창업주 일가인 A씨 등 3명이 B 보험사를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2014년 A씨와 당시 대표 2명은 대한전선을 통해 B 보험사와 약 6700만원짜리 D&O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이후 임원을 상대로 누군가가 배상금을 청구하면, 보험사가 최대 300억원 한도로 보상해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대한전선이 보험 계약을 맺은 그해 말, 증권선물위원회는 "대한전선이 2011~2012년 회계처리 기준을 위반해 재무제표를 작성·공시함으로써 분식회계를 저질렀다"며 2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대한전선의 주가는 2012년∼2014년 2000원 전후를 유지했지만, 분식회계 사건이 불거지자 1200원대에서 거래가 정지됐다. 주식 거래 재개 이후엔 400원대로 급락했다.
일부 소액주주들은 A씨 등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냈고, 증선위 등의 고발에 일부 경영진은 형사 재판까지 받게 됐다. 직접적인 혐의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A씨와 두 대표는 민·형사 사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변호사 선임비 및 성공보수 등으로 각각 약 2억~6억원의 법률비용을 부담하게 됐다.
이들은 법률비용에 대한 보험금을 요구했지만, 보험사는 "경영진이 D&O 계약 체결 과정에서 우리를 속였기 때문에, 보험계약 자체가 취소돼야 한다"며 이를 거부했다. 특히 보험 가입 서류에서 '귀사와 자회사의 어느 한 임원이라도 보험 대상이 될 손해배상 청구에 미칠지도 모를 행위, 과실에 관한 지식·정보를 알고 있는 경우가 있느냐'고 물었는데도, A씨 등이 '없다'고 답한 점을 지적했다. 결국 A씨 등은 B 보험사에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A씨 등이 보험사를 속인 점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민·형사 사건에서 A씨 등의 주의의무 위반이 인정됐지만, 허위 재무제표 작성·공시에 대한 고의까지 인정됐는지에 대해선 직접적인 판단이 없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도 "이 사건의 쟁점은 소송 제기 가능성을 인식했는데도 관련 사정을 답변하지 않았는지 여부"라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A씨 등이 회계 전문가가 아니어서 회계적 판단은 정확히 할 수 없었을 수 있다. 하지만 계약 당시 이들은 각각 대한전선의 대표들, 또는 사내이사이자 실질적 지배자였다"며 "2013년 주주들로부터 고발당한 뒤 혐의없음 결정을 받았다고 해도, 향후 회계처리에 관해 추가적인 민·형사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A씨 등은 1심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했다.
한편 대한전선은 분식회계 사건 이후 최대주주가 A씨 일가에서 사모펀드 측으로 바뀌었고, 2021년엔 호반그룹이 지분 40%를 인수하며 대한전선의 최대주주가 됐다. 대한전선 법인도 분식회계 사건 대응과 관련해 A 보험사를 상대로 약 134억 규모의 보험금 청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대한전선도 1심에서 고지의무 위반 및 착오 등을 이유로 패소했으며, 서울고법에서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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