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플리바게닝’ 설계… "수사기관에 범죄 대응 무기 제공해야"
금융·경제, 가상자산 등 자본시장은 날로 고도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정부는 각종 규제와 제재 장치를 마련해 불공정거래를 방지하고 있다. 또한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도 수사를 통해 관련 범죄를 단죄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정부와 수사기관이 자본시장의 불공정거래에 대해 강력한 제재 의지를 보이면서 수사선상에 오르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사법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 기업 등이 대형 로펌의 문을 두드리고 있지만, 이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자본시장과 관련된 금융경제 범죄를 수사하면서 노하우를 축적한 이들이 드물기 때문이다.
조재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는 이 분야의 전문가로 불린다. 검찰 내 대표적인 '특수통'이었던 조 변호사는 2004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검사로 발탁된 후 삼성그룹 비자금 특별수사본부, BBK사건 특별검사팀 파견 등을 거쳐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 부부장, 특수4부장을 거쳤다. 2016년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장 때는 롯데그룹 경영진의 배임 혐의 등을 수사했다.
조 변호사는 이른바 '한국형 플리바게닝'으로 불리는 사법협조자 형벌감면제도가 지난해 1월부터 자본시장법 위반 범죄만 시행될 수 있게 만든 1등 공신이다. 2020년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에 파견된 검사였던 조 변호사는 금융위 관계자들과 의기투합해 사법협조자 형벌감면제도 설계를 이끌었다.
다음은 조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금융경제 범죄 대응 및 금융규제 팀장, 가상자산 형사대응팀장, 상장폐지 대응 TF팀장을 맡고 있다. 주로 어떤 업무를 하고 있는가?
=금융당국의 금융기관에 대한 제재 대응과 기업들과 금융기관 관련 특경법 위반(배임) 등 형사사건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수임한 사건을 거의 모두 성공시키고 있다.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원에서 제재하거나 인허가에 대해서 자문하는 게 금융규제팀의 업무다. 상장 폐지 대응 TF팀은 상장 기업들이 폐지되지 않도록 자문하는 것인데, 구체적으로 코스닥 기업들이 상장 기준에 미달하게 되면 실질·형식적 상장 폐지를 받게 되는데 감사 의견을 거절당했다든지, 매출액이 기본에 미달했다든지 이런 일들이 몇 년째 지속되면 상장 폐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이때 로펌이 선임돼서 재무·경영적인 상황을 전반적으로 검토해 상장을 유지해야 한다는 논리로 위원들을 설득하고 상장 폐지를 막기 위한 절차를 진행한다.
-검찰 수사 단계에서 구속영장을 기각시키거나, 애초에 형사입건이 되지 않도록 한 사례가 많은 것 같은데 전략이 있는가?
=현재까지 진실을 밝히면서 도움을 요청한 의뢰인의 구속영장을 대부분 기각시키고 있다. 비결은 사실관계를 철저히 파악하고 법리 검토를 치밀하게 하기 때문이다. 영장 법관을 설득할 구속 전 심문의견서 작성에도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 의견서를 작성하면 통상 몸무게가 2~3kg이 빠질 정도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의뢰인들이 참고인 단계에서 신속하게 법률전문가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형사사건의 대처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수사 초기에는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들이 많다. 검찰 반부패 수사 업무를 오랫동안 수행한 저 같은 변호사는 사건과 의뢰인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이에 따른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다.
-가상자산시장이 커지면서 관련 범죄도 늘어나고, 이에 따른 로펌의 수요도 증가하는 추세다. 어떻게 대응하고 계시는가?
=우리 법인은 저를 비롯해 2017년부터 디지털자산, 가상자산사업자(VASP), 스테이블코인 분야에 특화된 전문가인 한서희 변호사 등 10여명의 변호사로 '가상자산 형사대응팀'을 발족했다. 저는 현재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의 자문위원으로 있고 가상자산업계에 대한 당국의 제재 업무를 담당하는 금융정보분석원(FIU)의 제재심 위원, 금융위 디지털금융정책관실 업무를 담당하는 금융발전심의회(금융산업·혁신분과)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 가상자산거래소인 코인원과 위믹스 발행업체인 위메이드 고문변호사를 역임하는 등 전문성을 배가시켜 왔습니다.
-정부·여당에서 추진 중인 검찰개혁안이 통과되면, 향후 금융경제 범죄는 어떻게 될 것으로 예상하는가?
=수사 자체가 어렵고 안 된다. 사실 경찰 등은 경험도 부족하고 해본 적도 없어서 수사를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검찰이 금융경제 범죄를 직접 수사하지 않고 속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에서 이를 담당하게 된다면 상당 기간 수사가 이뤄지지 않고 처벌도 쉽지 않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경제 범죄는 금융당국에서 고발하거나 수사의뢰하는 복잡하고 전문적인 사건이 대부분이다. 이런 사건은 변호사들도 해당 분야 전문성이 있어야 사건을 수행할 수가 있다. 그런데 이런 사건을 수사해 오지 않던 경찰이나 신설 조직인 중수청의 수사관들이 제대로 된 수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복잡하고 전문적인 사건을 맡아본 적도 없는 수사관이 오랜 시간에 걸쳐 수사해서 공소청에 넘기고 공소청 검사가 기소하고 공소유지를 제대로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인다. 결과는 대부분 무죄가 선고되고 범죄자들을 처벌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금융경제 분야에서 무죄가 쏟아지고 범죄자들이 처벌되지 않게 되면 국민들이 특단의 대책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사법협조자 형벌감면제도(플리바게닝)가 도입되는데 공헌한 바가 크다고 들었다. 금융·자본시장에서 이 제도가 도입됨으로써 얻게 된 효과는 무엇인가?
=2020년경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기획관으로 근무하면서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불공정거래를 척결하기 위해 사법협조자 형벌감면제도를 설계했다. 자본시장법상 불공정거래행위와 관련해 자수하거나 범인 검거에 대한 제보를 하거나 수사 및 재판 절차에서 본인 및 타인의 범죄사실과 관련해 진술 또는 증언을 하거나 범죄사실을 입증하는 자료를 제출하는 경우에는 형사처벌을 면제받거나 감경받을 수 있다. 이 제도는 인간의 본성을 활용한 매우 효율적인 범죄억지 수단이다. 범죄를 저지른 분들이 스스로 범죄를 털어놓게 만드는 제도다. 또한 이 제도는 범죄자 간에 언제든지 배신할 수 있다는 불신을 심어서 조직을 내부로부터 무너뜨리는 효과가 있다. 이 제도는 최소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거양할 수 있기 때문에 선진국들이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정확한 내부 제보를 받아 신속히 검증하고 기소하는 한편 범죄수익도 적기에 환수하는 방식으로 제도가 정착되기를 희망한다.
허경준 기자 kjun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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